소설방/강안남자

798. 중개자 (12)

오늘의 쉼터 2014. 10. 9. 13:20

798. 중개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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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미인 보좌관을 두셨군.”

통전부장 양성택은 민유미를 소개했을 때 그렇게만 말했다.

베이징 국제호텔 지하 1층의 한식당 ‘평양옥’ 안이다.

방 안에는 양성택과 통전부 부부장 김남철 그리고 조철봉과 민유미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한식 방에서 한정식 요리를 시킨 것이다.

요리가 나올 때까지 경제 이야기에다 지난주 중국에서 추락한 비행기 사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상이 들어오고 나서 양성택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합의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는 얼마나 낼 것 같소?”

“예?”

젓가락으로 굴전을 집던 조철봉이 외마디 소리처럼 묻더니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예상을 하고 예행 연습까지 했어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조철봉이 양성택을 보았다. 북한의 실력자, 위원장의 최측근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건 제가 가서 물어봐야 됩니다. 부장님.”

가장 공손한 표정을 짓고 조철봉이 말했을 때 양성택은 짧게 웃는다.

“투입된 개발비에다가 향후 핵 대신 국방비로 지급될 비용까지 계산해야겠지.”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런데.”

정색한 양성택이 조철봉을 똑바로 본다.

“한국 혼자서 부담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클 것 같은데.”

“그럼 미국까지.”

“미국과 일본 3국이 모아서 핵 폐기에 대한 보상금을 내주는 것이 낫지 않겠소?”

“지, 지난번 경수로비는…….”

“한국이 뒤집어썼지?”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서요.”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이 길게 숨까지 뱉는다.

“한국이 보상금 대부분을 낸다면 아마 여론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전쟁하잔 말인가?”

양성택이 불쑥 그렇게 물었을 때 조철봉은 쓴웃움을 지었다.

“요즘은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 소리를 하면 미친놈 취급을 당합니다.”

“정신 못차렸군. 우린 지금이야말로 진심인데.”

정색한 양성택이 말하자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북한측에서 3국이 균등하게 3분의 1씩 내라고 제의하시지요.

금액부터 정하고 나서 3국이 합의하라고 하면 우리가 또 다 뒤집어쓰게…….”

“에이, 그것까지 우리가 해줘야 돼요?”

“같은 민족으로…….”

그때 양성택이 머리를 돌려 민유미를 보았다.

“미국 시민권자라고 하셨지요?”

갑자기 묻자 민유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지만 대답은 했다.

“예에.”

“저기, 민유미씨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조철봉이 나서서 설명을 한다.

“한국어는 한국계 미국인인 전 남편한테 배웠다고 합니다.”

“허, 이분이 바로 한·미·일 3국의 대표자로 나서도 되겠구먼.”

웃음 띤 얼굴로 말한 양성택이 민유미에게 다시 묻는다.

“어떻습니까? 우리 제안이. 현실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때 민유미가 똑바로 양성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북한이 핵 폐기 조건으로 한·미·일 3국에 각각 얼마씩 내라고까지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금액을 정해놓고 3국이 협의해서 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 아닐까요?”

그렇다. 또한 이 일은 한국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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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폐기에 대한 보상금 액수는 아직 정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조철봉으로서는

마침내 정상회담의 실마리를 잡은 셈이 되었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회담이 될 것이었고 그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조철봉의 얼굴에 가득 웃음이 덮였다. 핵 폐기의 대가라면 몇억달러 단위겠는가?

10억달러는 거뜬히 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북한은 장사를 잘 한 셈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자금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말이 맞다면 제 돈 한푼 안 들이고

몇십억달러 장사를 한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핵을 내놓고 대가를 받아야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쟁취하는 것이 역사에도 떳떳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상대방을 만들어준 국가가 바보일 뿐이다.

그때 조철봉이 들고온 서류봉투를 양성택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부부장 김남철이 봉투를 받는다.

“이건 미국산 제품 목록입니다.

비행기에서 수출 가능한 군수품까지 다 포함되어 있지요.”

조철봉이 말하자 옆에 앉은 민유미가 와락 긴장했다.

지난번에 조철봉의 제안을 받고 건네준 제품 목록이다.

그것을 여기까지 조철봉이 가져왔을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북한과 사이가 좋은 국가에 소개시켜 주시면 남은 이익을 반분해 드리지요.

가격표는 안에 있습니다.”

“흐음, 우리가 미국 상품의 판매상이 되란 말인가?”

했지만 양성택은 웃는 얼굴이다.

양성택의 시선이 민유미에게로 옮겨졌다.

“우리가 테러리스트한테 팔아도 되겠소?”

“금지 품목이 아니면 상관없지요.”

따라웃은 민유미가 말을 잇는다.

“테러리스트도 사서 쓸 자격이 있죠.”

“흥미가 있어.”

이제는 양성택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사업이 잘 될 것 같군.”

술병을 든 양성택이 민유미의 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다. 한국산 소주다.

“국제 변호사라고 하셨지?”

양성택이 묻자 술잔을 쥔 민유미가 눈웃음을 친다.

“예. 부장님.”

“미국에 계실 때 우리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어떻게 생각하셨소? 악의 축이라고 믿으셨나?”

“솔직히 전 관심 없었습니다.”

“우리가 괴물같이 보이지 않았소?”

“천만에요.”

다시 웃은 민유미가 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장님.”

“당신은 민주당이오? 아니면 공화당?”

“둘 다 아닙니다.”

“좋아.”

술잔을 든 양성택이 건배하자는 듯이 치켜올렸다.

“새 사업을 위하여.”

“위하여.”

하고 조철봉이 한모금에 소주를 삼켰고 김남철과 민유미도 따라 마신다.

 

저녁 겸 술자리가 끝났을 때는 오후 10시쯤이었다.

양성택과 김남철을 먼저 보낸 둘이 대기시킨 차에 올랐을 때 민유미가 물었다.

“그냥 들어가실 건가요?”

조철봉이 머리를 들어 민유미를 보았다.

 

차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고 그 순간 민유미가 희미하게 웃는다.

 

호텔에서 김경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꼭 만날 일은 없다.

 

민유미가 그냥 들어갈 것이냐고 ‘그냥’이란 말을 넣은 것은 의미가 있다.

 

그것을 조철봉이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한다.

“그럼 내 방에서 다시 한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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