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 중개자 (10)
(2169)중개자-19
“그런 돈은 나눠줘야 돼.”
민유미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로비자금도 정도를 넘으면 더러운 돈이 된다구.”
문득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지만 민유미는 내색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한테 교육을 시키는 거야? 속으로만 그렇게 말했다.
만일에 한국 광고를 좀 봤으면 네가 로비를 알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북한 사람을 불러다 시키는 조철봉의 능력은 보고할 가치가 있다.
또 빼앗은 돈을 반으로 나눠 북한측에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별 괴상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술병을 든 민유미가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묻는다.
“조금 전에 온 사람은 어디 소속일까요?”
“통전부 소속이겠지.”
바로 대답했던 조철봉이 민유미의 이해를 도와주려는 듯 준말을 설명했다.
“통일전선부 말야.”
“아아.”
“한국사람인지도 몰라.”
“그런가요?”
“내가 그런 건 알 필요가 없고.”
술잔을 든 조철봉이 한입에 술을 삼키더니 민유미를 보았다.
“내일 한국에 팔 계획으로 있는 무기나 항공기 등 모든 자료를 나한테 가져다 줘.
내가 검토해서 해당 기관이나 업체와 접촉해볼 테니까.”
그 순간 와락 긴장한 민유미가 몸을 굳힌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조철봉이 선수를 쳤다.
그렇다. 조철봉에게 접근한 공식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알겠습니다.”
선수를 빼앗긴 느낌을 받은 민유미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바로 보고드리지요.”
“그리고.”
정색한 조철봉이 민유미를 보았다.
“우리 상품을 미국은 물론 그 영향력을 받는 국가에 팔 수도 있겠지?
물론 민유미씨의 인맥을 이용해서 말야.”
“네? 네.”
눈을 크게 뜬 민유미가 곧 머리를 끄덕인다.
그것까지는 예상했다.
미국 상품을 들여오는 조건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 상품의 수출을 원한다.
그러나 품질이나 기타 조건이 맞지 않아서 꿈만 꾸고 끝난다.
조철봉은 한국산 제품을 팔고 싶겠지만 가능성이 적다.
그때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또 있어.”
이제 시선만 든 민유미를 향해 조철봉은 웃어보였다.
“북한을 통해서도 거래가 이뤄질 수 있을 거야.
그 방법도 오늘밤 민유미씨가 본 것처럼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다시 숨을 멈춘 민유미가 조철봉의 시선을 받는다.
그렇다. 가능하다. 북한과 관계가 좋은 국가에 미국 상품을 팔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밤에 조철봉이 했던 것처럼 수수료를 나눠 먹을 수도 있겠다.
이마에 땀이 밴 느낌이 들었으므로 민유미는 손끝으로 이마를 눌렀다가 떼었다.
과연 습기가 묻어나왔다.
땀이다. 그렇다면 이 사기꾼은 북한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려고
오늘 이곳으로 나를 불러낸 것일까?
갑자기 등이 서늘해진 느낌을 받은 민유미가 가늘고 긴 숨을 뱉는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조센진을 얕보면 안되겠다.
사기로 단련된 놈인 것 같다.
그때 조철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오늘밤 즐겨볼까?”
머리를 든 민유미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문다.
조철봉이 웃고 있었다.
오늘밤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
(2170)중개자-20
최문식은 미남이다.
그리고 한일대학 정치학과를 나온 수재다.
40대 중반, 이른바 운동권의 386세대로 지난 정권 때는 청와대의 드러나지 않는 실세였다.
권력을 쥔 실세도 여러 종류가 있다. 명성과 힘이 같은 실세가 있는 반면에 명성에 비해
힘이 떨어지는 실세, 명성은 없지만 막후에서 엄청난 힘을 행사하는 실세로 나누어지는데
최문식은 맨 후자의 경우가 될 것이다.
언론에는 거의 이름 석 자가 보도되지 않았지만 각종 대형 정부 사업에는 최문식을 통해야
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 소문도 정권 말기에야 돌기 시작했으니 최문식의 자기관리도 꽤 엄중한 편이 될 것이다.
오전 10시, 거처로 삼고 있는 청담동의 ‘그린’오피스텔에서 나온 최문식이 택시를 잡는다.
‘그린’오피스텔은 주거, 사무실 겸용인 신축 건물로 최문식은 50평형 1212호실을
보증금 없이 월세 200만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지금도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후배 홍창수도 최문식의 거처를 모른다.
한번도 오피스텔 안에 데려온 적도 없고 집 앞까지 오게 하지도 않았다.
최문식이 택시에서 내린 곳은 논현동의 ‘파크’호텔 앞이다.
호텔 1층의 로비로 들어선 최문식은 기둥 뒤쪽 으슥한 자리에 숨듯이 앉아있는 안영범을 보았다.
10시15분, 약속 시간에서 15분 늦었다.
“미안합니다. 차가 막혀서.”
앞쪽에 앉으면서 최문식이 전혀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고 말한다.
“아닙니다.”
대답하는 안영범도 건성이다. 안영범은 딴전을 피우고 있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40대 후반이다.
우창건설의 자금담당 전무이사로 회장 강우창의 처남이다.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킨 최문식이 안영범에게 묻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글쎄, 그것이.”
외면한 채 안영범이 긴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잇는다.
“300억을 더 내시라는데, 잘 아시겠지만 우린 3억을 드릴 형편도 안됩니다.”
“허어, 참.”
쓴웃음을 지은 최문식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정말 똥 쌀 때하고 싼 후하고 다르다더니 이렇게 변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럼 못 내겠단 말입니까?”
“제가 지금도 적자 공사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사 시작 전에는 700억도 가능하다고 하셨지요?”
“그땐 단가가 오르기 전이었지요. 공사가 중단된 것만 8개월입니다.
8개월간 앉아서 500억 손해를 봤습니다.”
“그건 우창 사정이고.”
그랬다가 최문식이 와락 눈을 치켜뜨더니 안영범을 노려보았다.
“좋습니다. 그럼 못 내겠다는 말씀인데, 제가 잠시 후에 퀵으로 선물을 보내드리지.”
그러고는 최문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를 가져오던 종업원이 놀란 듯 시선을 주었지만 최문식은 곧장 호텔 현관을 나온다.
현관 앞에서 택시를 탄 최문식이 행선지를 말해주고는 핸드폰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곧 연결이 되었다.
비서 홍창수다.
“이야기 끝났어.”
홍창수가 응답하자 최문식이 대뜸 말했다.
의자에 등을 붙인 최문식이 말을 잇는다.
“3억도 없다지만 거짓말이야.
내가 말한 대로 우창이 써준 각서 카피를 안영범한테 퀵으로 보내.
언론에 터뜨리겠다고 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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