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95. 중개자 (9)

오늘의 쉼터 2014. 10. 9. 13:18

795. 중개자 (9)

 

(2167)중개자-17

 

 

민씨 성을 가진 한국인과 2년 같이 살았다는 과거도 다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민 아무개는 실제 인물이고 이혼도 했다.

CIA의 서류 조작을 최갑중이 부탁한 에이전시가 알아챌 수 있겠는가?

민유미의 본명은 나오코, 한국어는 한국어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국제변호사는 맞다.

지금도 군수산업체, 항공기 회사의 로비스트로 등록되어 있는 것도 확실하다.

진짜와 가짜가 절묘하게 섞이면 더 진짜처럼 보인다.

조철봉의 방에서 4자회담을 한 사흘 후가 되는 날 오후 8시,

민유미는 청담동에 위치한 클럽 ‘오리온’으로 들어선다.

‘오리온’은 고급 클럽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터라 현관에서 웨이터가 민유미에게 물었다.

“기다리는 분 계십니까?”

“네, 조 사장님.”

“아, 예.”

조철봉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어도 웨이터는 앞장서서 안으로 안내했다.

웨이터가 멈춰선 곳은 복도 안쪽의 방 앞이다.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는 조용했으며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옆쪽 홀에는

테이블에 손님이 반쯤 차 있다.

웨이터가 노크하더니 문을 열고 물러섰으므로 민유미는 안으로 들어섰다.

조철봉이 혼자 앉아 있다가 웃음띤 얼굴로 민유미를 맞는다.

 테이블에는 이미 술병과 안주가 놓여 있다.

“기다리셨어요?”

역시 웃음띤 얼굴로 다가간 민유미가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았지만 곧 얼굴이 굳어진다.

오늘 저녁에 술 한잔 같이 마시자는 조철봉의 제의를 받고 민유미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키지는 않았다.

지금 기분을 설명하면 아무리 좋게 비유해도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을 먹이려고 드는 것 같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고 있어서 상을 차고 나가지는 못하는 입장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시켰어.”

조철봉이 요리가 가득 놓인 테이블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어어, 굉장하네요.”

요리를 둘러본 민유미가 감탄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좋아하는 요리가 있기는 했다. 해삼요리, 닭튀김도 있다.

조철봉이 술병을 들더니 민유미의 잔에 술을 채운다.

스카치 위스키. 한국인들의 스카치 위스키 소비량이 세계에서 몇등 안에 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촌놈들, 그러나 잔을 든 민유미는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이곳 분위기가 좋네요, 사장님.”

“그런가?”

방안을 둘러본 조철봉이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한모금에 위스키를 삼켰다.

촌놈, 그때 조철봉이 번쩍 머리를 들자 민유미는 긴장한다.

속으로 말한 촌놈 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다.

“곧 북한 사람이 올 거야.”

“네?”

와락 긴장한 민유미가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북한 사람이라니.

“누군데요?”

“고위층이 보낸 사람이지. 그사람이 누군지, 국적이 뭔지도 몰라, 알 필요도 없고.”

제 잔에 다시 술을 채운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사업 관계로.”

“아아, 네.”

“민유미씨도 내 보좌역을 맡고 있으니까 같이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민유미가 긴장한 채 머리를 끄덕인다.

오늘 카페에서 보자고 하기에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고 온 참이다.

그것은 둘의 호텔행을 말한다. 될 수 있는 한 빼다가 어쩔 수 없으면

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2168)중개자-18

 

 

30분쯤이 지났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 하나가 들어선다.

40대 중후반쯤의 사내, 정장 양복이 잘 어울렸고 인상도 좋다.

“조 사장님, 제가 이춘수올시다.”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보인 사내에게 조철봉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이쪽은 내 보좌역인 민유미씨.”

민유미를 소개시킨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민유미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국제 변호사요.

그리고 한국말을 잘 하지만 일본계 미국인이지요.”

“아아, 그러십니까.”

이춘수가 경탄하는 표정으로 민유미를 보았다.

셋이 다시 자리잡고 앉았을 때 이춘수의 잔에 술을 채운 조철봉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가 일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어요.”

“아, 예, 말씀하시지요.”

정색한 이춘수가 상반신을 반듯하게 세우고 조철봉을 보았다.

조철봉이 옆에 놓인 서류 봉투를 집더니 이춘수 앞에 놓았다.

“이 사람이 이틀 후에 옌지로 들어가 백두산 관광을 갑니다.”

이춘수가 봉투에서 사진과 서류를 꺼내 살폈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 사람한테서 돈을 받아낼 작정인데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 순간 놀란 민유미가 숨을 멈췄다.

지금 최문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 후에 최문식이 백두산 관광을 떠나면 옌지에서 붙잡으라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말하는 조철봉이나 듣는 이춘수도 태연했다.

조철봉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 사람이 건설회사로부터 로비 자금으로 2백억원을 받았는데

지금 얼마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서로 손발을 맞추면 알 수 있겠지요.”

“그러믄요.”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은 이춘수가 조철봉을 보았다.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회수한 금액의 절반을 드리지요.”

“알겠습니다.”

“탈 없이 돌려보내 주시구요.”

“아, 그러믄요.”

쓴웃음을 지은 이춘수의 시선이 민유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언제 돈을 받았습니까?”

이춘수가 묻자 조철봉이 입맛부터 다신다.

“2년쯤 되었어요.”

“그럼 많이 썼겠는데.”

“가족은 다 미국으로 보냈고 지금 본인만 달랑 남아 있는데

매물로 내놓은 부동산 시가가 50억원쯤 됩니다.”

“그럼 그 50억원은 되찾을 수 있겠고.”

이춘수가 이미 제 수중에 든 물건처럼 말하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2백억원은 현금이었습니까?”

“CD라고 했습니다.”

“그럼 아직 바꾸지 않은 물량도 많겠습니다.”

그러더니 서류를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먼저 옌지로 가서 기다려야 될 것 같아서요.”

머리를 숙여 보인 이춘수가 방을 나갔을 때

그동안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던 민유미가 소리죽여 길게 숨을 뱉는다.

마피아 영화에도 이런 대목은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게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명색이 프린스턴대 출신의 국제 변호사가 이 지저분한 한반도 놈들의 수작을

언제까지 견디고 있어야 된단 말인가?

그때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97. 중개자 (11)  (0) 2014.10.09
796. 중개자 (10)  (0) 2014.10.09
794. 중개자 (8)  (0) 2014.10.09
793. 중개자 (7)  (0) 2014.10.09
792. 중개자 (6)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