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92. 중개자 (6)

오늘의 쉼터 2014. 10. 9. 13:16

792. 중개자 (6)

 

(2161)중개자-11

 

 

“이명진씨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최갑중이 말했을 때 조철봉은 먼저 테이블 위에 세워놓은 캘린더를 보았다.

이명진의 세 식구와 함께 만났을 때가 이틀 전이다.

머리를 든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말을 이었다.

“양수진씨가 옆에서 간병하고 있습니다.”

“잘됐군.”

“이렇게 될 줄 예상하신 겁니까?”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은 머리를 젓는다.

“이명진씨가 더 나빠지기 전에 둘이 만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둘이 화해한 것일까요?”

“글쎄, 서로 잘못했다고 하더구먼.”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던 조철봉이 곧 정색하고 최갑중을 보았다.

“인간은 약해.”

영문을 모르는 최갑중이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완벽한 인간도 없고.”

“무슨 말씀입니까?”

“이명진씨는 자신의 죽음보다 혼자 남겨질 혜주가 외로울 것이

더 걱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게 부모 마음이니까.”

“…”

“그래서 며칠 전 3자 회동을 할 때도 이명진씨가 양수진씨한테 그러더군,

혜주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끝까지 노력해 달라고 말야.”

“그럴까요?”

“모르지.”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덧붙인다.

“죽으면 알 수가 없지.”

“…”

“하지만 그렇게 부탁은 했으니까. 양수진도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고.”

“혜주가 양수진씨하고 교대로 병상을 지킵니다. 오늘은 병원에 같이 있다고 합니다.”

“이명진씨가 이제는 마음 놓고 누운 것 같구먼.”

한숨을 뱉고 난 조철봉이 곧 쓴웃음을 짓는다.

“이명진씨가 섹스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심장이 철렁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서 양수진 같은 경우도 있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돈 갖고 나온 여자는 없었지 않습니까? 형님이 같이 도망가신 적도 없고.”

“섹스 말야, 이 자식아.”

눈을 흘긴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남편 대신으로 내가 스트레스를 풀어준 경우도 여럿 될 거다.”

“여럿뿐입니까? 수백이 될 텐데요.”

“다 나하고 풀고 시치미 뚝 떼고서 가정으로 돌아갔는데 양수진은 좀 심했던 것 같군.”

“형님이 양수진을 만났다면 그렇게 인도를 하셨겠죠.

그런데 양수진은 사기꾼을 만난 겁니다.”

“그런 사기꾼한테 당한 것을 보면 양수진이 좀 순진해.”

“맞습니다.”

이명진과 양수진이 만일 조철봉의 이런 대화를 들었다면 기절을 했을 것이다.

둘은 지금 조철봉을 성직자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철봉을 바라보는 표정에 존경심이 가득 배어 있다.

이윽고 조철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데없는 공장 양도 문제로 만났다가 중개자 역할까지 했군.”

“그렇게 되었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최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잘 끝난 것 같습니다.”

“보람도 있었어.”

그러고는 조철봉이 정색했다.

“매사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고.” 

 

 

 

 

 

 

 

(2162)중개자-12

 

 

지금까지 조철봉은 여자 싫다는 사람 못 보았다.

기혼이건 미혼이건 노소(老少),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여자 소개시켜 준다면 다 오케이였다.

물론 사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직접 데려가면 얼굴에 떠오른 웃음을 지우느라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형태로 노는 놈들끼리의 사고 범위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면 할말 없다.

 딴 데 가서 놀라고 할 수밖에. 오늘 조철봉의 사무실로 찾아온 후배 이영규가 그렇다.

베트남 사업에 대해서 상의할 것이 있다는 이영규 옆에는 30대 초반쯤의 여자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여자도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국제 변호사이며 한국어도 유창했다.

거기에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인. 아닌 게 아니라 점심 후의 나른한 식곤증에 빠져 있던

조철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이 천리만리 달아났다.

“제가 선배님께 소개시켜 드리려고요.”

고등학교 3년 후배인 이영규는 조철봉과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사업 수완이 꽤 있다고 소문이 났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 기반을 굳혀서 베트남이나 태국, 말레이시아에 골프장과 식당,

호텔까지 소유했다.

한두번씩 다녀온 선배들이 소문을 많이 내주었는데 물론 공짜로 대접받은 턱이었다.

그때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에게 인사했다.

“유미라고 불러 주세요.”

유창한 한국말. 여자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에도 민유미라고 쓰여있다.

명함을 건네준 조철봉에게 유미가 말을 잇는다.

“제 전 남편 성이 민씨였기 때문에 명함에 민유미라고 썼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유미가 덧니를 내보이며 웃는다.

“이혼했지만 성은 그냥 붙이기로 했죠.”

“한국말은 전 남편한테서 배우셨구먼.”

어느덧 마음이 편해진 조철봉이 묻자 유미는 다시 웃는다.

“네, 2년 살았지만 한국어는 마스터했습니다. 제가 빨리 배우거든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이영규가 거들었다.

“얼마 전부터 유미씨가 자꾸 선배님을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요.”

“나를 왜?”

조철봉이 묻자 대답은 유미가 했다.

“로비스트에는 저 같은 변호사가 필요하거든요.

조 사장님 파트너로는 제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파트너가 많은데.”

정색한 조철봉이 유미를 똑바로 보았다.

“비서실장도 보좌관 출신인 데다 다방면에 유능하고 부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담당 법무법인이 있어요.”

“제가 수행하면서 수시로 자문 역할을 해드립니다.

일류 로비스트는 대부분 국제 변호사를 수행시키고 있거든요.”

“난 일류가 아냐.”

머리를 저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더구나 유미씨 같은 미인이 옆에 따르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딴 생각이 일어날 것은 당연하거든.”

이 대목에서 웃기를 기대했던 조철봉은 의외의 반응을 받는다.

유미가 신중해진 표정이 된 것이다.

깊게 생각하는 듯 눈동자의 초점도 멀어졌다.

이윽고 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시험적으로 한달만 저를 써보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무보수로 말씀입니다.

한달 후에 어떤 결정을 하시든 따르겠습니다.”

“선배님, 유미씨는 LA에서도 꽤 알려진 인물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슈워제네거하고도 친분이 있고요.”

이영규가 거들었으므로 조철봉은 눈을 흘겼다.

누구 파는 놈 치고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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