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 중개자 (4)
(2157)중개자-7
최갑중의 차는 외제 고급 승용차였으므로 그들은 양수진을
김중태의 국산 중형 승용차로 데려갔다.
식당 주차장 안이어서 양수진은 주춤대지도 않고 차에 탔다.
차 안에서 이야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최갑중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양수진에게 말했다.
“5분만 기다립시다. 곧 우리 대장님이 오시니까요.”
양수진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헛기침을 했다.
“대장님이 직접 물으실 겁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갔으므로 운전석에 앉은 김중태가 초조해졌다.
안 보이는 데 숨어서는 별짓을 다 하지만 대면한 상태에서는 오금을 못펴는 성품 같았다.
조철봉이 식당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0분쯤 후였다.
차에서 내린 조철봉이 다가오자 최갑중이 서두르듯 말한다.
“대장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저 여자는 아직 우리를 경찰로 압니다.”
“너 같은 놈을 경찰로 보다니 그 여자가 좀 얼빵하구나.”
“예.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최갑중의 말을 뒤에서 들으며 조철봉은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양수진이 긴장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양수진한테서 삼겹살 냄새가 풍겼다.
그때 최갑중도 앞쪽 자리에 올랐다.
조철봉이 양수진의 옆 얼굴에 대고 묻는다.
“이명진씨한테는 요즘 연락 안 하시죠?”
“네? 네.”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던 양수진이 그것만으로는 미흡한지 덧붙였다.
“제가 연락할 이유도 없고, 또.”
“그럼 이혜주양한테도, 안 합니까?”
“네.”
그러더니 양수진이 시선을 내리고는 낮게 말한다.
“연락했다고 유괴범으로 모는 애인데요, 뭐.”
“아주머니가 그렇게 만드셨지.”
조철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남자한테 정신이 팔려서 어디, 사춘기 딸한테 신경이나 썼습니까?”
“제가 죽일 년이죠.”
“지금 후회해서 뭘해요?”
“그래요. 하지만.”
말을 멈춘 양수진을 조철봉이 정색하고 보았다.
뒷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양수진이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전 남편한테 사과하실 의향 있습니까?”
“사과요?”
시선을 든 양수진이 조철봉을 향해 웃었다. 힘이 빠진 웃음이다.
“사과해서 전으로 되돌려진다면 백번이라도 하죠.”
“정말 그렇게 되고 싶으세요?”
조철봉이 다그치듯 물었으므로 양수진은 주춤했다.
그러더니 길게 숨을 뱉고나서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후회해요.
죽어서 씻어진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죽어보일 수가 있어요.”
양수진의 두 눈에 물기가 고여졌고 차안은 조용했다.
앞쪽에 앉은 김중태와 최갑중은 숨도 죽이고 있다.
그때 양수진이 말을 잇는다.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혜주한테 엄마 소리 한번만 듣는 거죠.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양수진이 짧게 흐느끼더니 손가락 사이로 말한다.
“혜주 아빠한테 용서를 받고 싶어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용서한다는 말 한마디만 들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 보이겠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소리내어 울었다.
(2158)중개자-8
“이명진씨 소식 들으셨습니까?”
불쑥 조철봉이 묻자 양수진이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는다.
차 안은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양수진이 움직이는 부스럭 소리만 난다.
이윽고 양수진이 입을 열었다.
“회사 잘된다고 하대요.”
머리를 반대쪽 창 쪽으로 돌린 채 양수진이 말을 잇는다.
“개성 공단으로 입주해서 성공했다고만 들었습니다.”
“성공했죠.”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계시지요?”
“혜주가 고발했고 또.”
한숨을 내쉰 양수진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혜주 아빠가 다시 지난번 일을 고발했기 때문이겠죠.”
“고발했다는 말은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제 휴대폰에 문자로 찍혀 있더군요. 고발했다고.”
“이혼 합의 서류는 친정으로 다 보내 주셨다면서요?”
조철봉이 묻자 이제 양수진은 머리만 끄덕였다.
앞쪽에 앉은 최갑중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조해졌다.
조철봉이 어쩔 작정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혜주는 어릴 적에 받은 충격이 커서 금방 풀기는 어려울 겁니다.”
양수진의 초점이 없는 시선이 옆으로 비껴났다.
차 안에 조철봉의 말이 울렸다.
“하지만 이명진씨는 좀 다르지요.
그래도 10여년 같이 살았고 세파도 많이 겪었으니까요.”
“… ….”
“내가 이명진씨를 만나게 해 드리지요.
물론 둘이서 말입니다.
혜주한테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놀란 듯 머리를 든 양수진을 향해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명진씨는 간암 말기라 이제 석 달도 못 삽니다.
그래서 재산도 모두 혜주 앞으로 양도했고 법적 대리인도 다 정해 놓았지요.”
머리를 돌린 최갑중은 양수진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입도 다물 정신이 없는지 반쯤 벌리고 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싫다면 안 가도 됩니다.
이명진씨가 용서해 줄지 어쩔지 우리도 알 수 없으니까요.
이미 이혼한 상태라 유산 상속은 바라지 않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때 양수진이 입을 열었다.
“안 가겠어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양수진이 머리까지 젓는다.
“제가 무슨 염치로 그 사람을 봅니까? 더구나 곧 죽는다는 사람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양수진이 말을 잇는다.
“참 안됐어요. 아무래도 다 제 잘못인 것 같고,
지금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 사람이 살아난다면 백 번이라도 빌죠. 안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용서한다는 말 한마디만 들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 보이겠다고 하시던데.”
“그건 그 사람이 건강했을 때죠.”
양수진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죽어 간다는 사람한테 제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찾아갑니까?
겁이 나서 못 가겠어요.
그저 제가 미안하다는 말씀만 전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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