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9. 중개자 (3)
(2155)중개자-5
이명진의 딸 이혜주는 당돌했다.
처음에는 주뼛거리며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식당 방에 넷이 둘러앉았을 때는
똑바로 시선을 보내면서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명진은 특별 주문해 놓은 전복죽을 맛있게 먹는다.
웃음띤 얼굴로 음식맛 칭찬을 하는 것이 몇달 후에 죽을 사람 같지가 않다.
그러다 이명진이 이혜주를 눈으로 가리키면서 이놈한테 형제나 한 명 더 있었다면
좋을 뻔했다고 말했을 때 식탁 분위기가 긴장되었다.
대뜸 이혜주가 반발한 것이다.
“아빤 그 여자한테서 자식을 하나 더 낳고 싶었어?”
이혜주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묻자 이명진이 피식 웃는다.
“인마, 배다른 형제라도 말야.”
“그럼 아빠도 일찍 바람피우지 그랬어? 나 외롭지 않게.”
“그럴 걸 그랬지?”
주고받는 둘의 말에 약간 얼떨떨해진 조철봉과 최갑중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혜주가 말을 잇는다.
“아빠, 나 성인이니까 그 여자가 생모랍시고 내 재산권 침해할 수는 없는 거지?”
“그래, 강 변호사가 그렇게 말해주었지 않아?”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해줘.”
“알았다.”
“난 절대로 용서 못해.”
눈을 치켜뜬 이혜주가 말했을 때 조철봉이 헛기침을 했다.
“엄마하고 좋은 기억은 없니?”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이혜주가 머리까지 저으며 대답한다.
그러더니 덧붙였다.
“전혀요, 그 여자는 자기 중심적이었죠.
제가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못 치게 했을 정도죠.”
“…….”
“남자 만나러 나가면서 저한테 거짓말을 시켰어요.
그래서 전 아버지를 속인 공범이 되었죠.”
“…….”
“제 자식의 학원비, 교복비까지 몽땅 들고,
집까지 담보로 잡히고 남자하고 도망친 여자죠. 인간이 아녜요.”
“얘, 그만해라.”
듣기가 거북한 듯 이명진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러자 이혜주는 머리를 젓는다.
“아빠가 간이 나빠진 것도 그 여자 때문야.
난 알아. 아빠는 어느날 밤에 자고 있는 날 보면서 말했어.
너만 없었다면 난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모두 입을 다물었고 이혜주의 말이 이어졌다.
“난 자는 척했지만 다 들었어. 그리고 속으로 말했어.
내가 꼭 그 여자한테 복수를 할 거라고.”
“그만.”
손바닥을 펴보인 이명진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눈을 감았으므로 당황한 최갑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묻는다.
“괜찮습니까?”
“조금만 이러고 있으면 됩니다.”
이영진이 눈을 감은 채 대답하자 이혜주가 일어났다.
“아빠, 약 줘?”
“아니, 됐다.”
머리를 저은 이명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잔뜩 돋아나 있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낸 이혜주가 이명진의 땀을 눌러 닦으면서 말한다.
“아빠하고 같이 가고 싶어.”
“쓸데없는 소리.”
입술만 달싹이며 이명진이 말했을 때 이혜주가 다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무 불공평해. 아빠 같은 사람이 이게 뭐야? 왜 그 여자만 살아남아?”
(2156)중개자-6
양수진, 43세. 고향이 수원이며 서울 혜성대 국문과 졸업, 현재는 이혼녀로 서울 중계동 거주,
직업은 식당 알바,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 이것이 최갑중이 조사시킨 양수진의 내력이다.
지금 최갑중은 상계동의 삼겹살 전문 식당에서 김중태와 둘이서 소주를 마시는 중인데
양수진이 주위를 오가고 있다.
양수진이 알바를 하고 있는 식당인 것이다.
“남자는 없습니다.”
힐끗 양수진의 뒷모습에 시선을 준 김중태가 말을 잇는다.
“중계동 연립주택 반지하 방 한칸을 월세 20만원을 주고 사는데
반년 동안 한번도 남자를 끌어들인 적이 없답니다.”
식당 안에는 저녁 무렵이어서 손님이 가득차 있어 소란했다.
젊은층이 많아서 분위기가 밝다.
김중태는 최갑중이 요즘 자주 이용하는 정보회사 사장이다.
신속과 정확을 신조로 삼아서 양수진의 뒷조사를 만 하루 만에 끝냈다.
양수진은 이명진의 전처이며 이혜주의 생모이다.
머리를 끄덕인 최갑중이 소주를 한모금 삼키고는 이제 앞을 지나는 양수진의 옆모습을 본다.
갸름한 얼굴에 몸매도 날씬해서 미인축에 들었다.
그러나 눈꼬리가 치솟고 얇은 입술이 반쯤 벌려져 있다.
선입견 때문인지 헤프고 정이 모자란 여자같이 보인다.
그때 김중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집 할머니 말이니까 정확합니다.
월세는 꼬박꼬박 내고 깔끔해서 할머니가 여러 번 중매 선다고 했는데도 싫다고….”
양수진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김중태는 입을 다물었다.
최갑중이 양수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알 수 없단 말야.”
혼잣소리로 투덜거린 최갑중이 팔목시계를 보더니 김중태에게 묻는다.
“식당은 11시가 되어야 끝난다면서?”
“예,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저 여자하고 오늘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은데요? 지금은 도무지.”
또 양수진이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말을 멈춘 김중태가 입맛을 다신다.
최갑중이 소리쳐 양수진을 부르자 김중태가 질색을 했다.
“아줌마, 나 좀 봅시다.”
“네, 뭘 드릴까요?”
몸을 돌린 양수진이 다가와 묻는다.
머리칼이 이마 위로 어지럽게 흩어진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 깔렸다.
김중태는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최갑중이 불쑥 묻는다.
“아줌마, 이야기할 것이 있는데, 일 일찍 끝내고 같이 좀 나갑시다.”
그 순간 양수진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침까지 삼킨다.
“누구신데요?”
양수진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최갑중은 눈을 치켜떴다.
“아줌마와 이야기하려고 찾아왔다면 대충 짐작하고 계실 텐데.
아줌마가 이혜주 생모 되시죠?”
순간 양수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바짝 다가섰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경찰이세요?”
“이명진씨 고소건이 아직 마무리되어 있지 않아서요.
잠깐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최갑중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경찰서까지 같이 가시지 않아도 돼요.”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양수진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잇는다.
“주인 아줌마한테 이야기하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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