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 중개자 (1)
(2151)중개자-1
베이징에서 돌아온 조철봉은 공항에서 바로 청와대로 향한다.
공항에 비서관 한영기가 마중나와 있었던 것이다.
조철봉을 맞은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지만 어색했다.
꾸밀 줄 모르는 순박한 성품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고생 모르고 자란 사람들 중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영기까지 셋이 원탁에 둘러앉았을 때 조철봉이 보고했다.
“정상회담 말씀을 드렸더니 곧 답을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긴장한 둘은 숨을 죽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비자금이 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비자금?”
놀란 듯 유세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굴 표정도 굳히고 있다.
“누가요? 저쪽에서 먼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럼요.”
유세진의 시선을 받은 채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5억달러를 요구했는데 한시간 동안이나 실랑이를 했지요.
그랬더니 좀 깎을 수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젠 안 돼요.”
유세진이 머리를 저으면서 말한다.
표정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다.
“돈 주고 회담할 수는 없어요.”
“저도 그렇게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 돈이 결국은 원조자금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비자금이라고 생각지 않는답니다.”
“….”
“공개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 거짓말이지만 누가 확인을 하겠는가?
이런 경우 로비스트는 몫을 엄청나게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며 독과점 품목이다.
이윽고 유세진의 목구멍에서 앓는 것 같은 신음이 울리더니 시선을 들어 조철봉을 보았다.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천만에요.”
“곧 보고를 하고 답을 드리지요. 조 특보님.”
“참.”
조 특보 소리에 정신이 든 듯 조철봉이 말한다.
“저, 오늘자로 특보 사임하고 싶습니다.
일성 로비스트라고 소문이 다 난데 다가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터진다면
대통령께 누가 될 것 같아서요. 사표 받아 주시지요.”
“조 특보,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정색한 유세진이 손까지 저었지만 조철봉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유세진 앞에 놓았다.
김경준을 시켜 쓴 사직서였다.
놀라 봉투만 내려다보는 유세진에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제가 하던 일은 계속하겠습니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장님.”
“제가 말씀드릴 때까지….”
“제가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정색하고 말한 조철봉이 주섬거리며 일어나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돈 문제가 개입되면 제가 특보 자리에 있는 것이 여러가지로 해가 됩니다.”
맞는 말이다.
만일 비자금이 어떤 명목으로건 전해진다면 그 전달자는 조철봉이 되어야 한다.
특보가 돈을 주물럭거리고 있다면 주변의 여러 명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 잠자코 옆을 따르던 한영기가 불쑥 묻는다.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한영기를 보았다.
대답을 하면 5분 후에 유세진에게 보고가 될 것이다.
한영기는 유세진을 대신해서 묻고 있는 것이나 같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돈만 제대로 준다면.”
(2152)중개자-2
서로의 이해가 맞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개자의 역할이라고 조철봉은 믿는다.
중개자는 중립이다.
거래 당사자가 상대와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쪽에서 내놓을 조건이었다. 선물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미끼라는 말도 맞다.
상대방도 응당 비슷한 선물이나 미끼를 준비했을 테니까.
그 내놓을 조건이 서로 비등했을 때 거래가 성립된다.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성립되는 거래는 사기고 협잡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대등한 거래는 없다.
서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한테서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한테는 사소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크게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난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제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바꿔가며 살아왔다.
자신이 제조업자였고 거래 당사자였다.
사기도 숱하게 쳐서 입만 가지고 상대방의 물건을 가로채 왔지만 이제는 중개자가 된 것이다.
중개자 입장이 되면 거래 당사자를 떠나 냉정한 관찰자 또는 조정자 역할도 가능하다.
양쪽 당사자의 약점을 알면 알수록 거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개자의 이득도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지 나흘째가 되는 날 오전 11시경,
조철봉은 청와대 비서관 한영기의 전화를 받는다.
“조 특보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흘 전에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데다 언론 보도까지 나갔는데도 한영기는 특보라고 불렀다.
버릇이 되었는지 의도적인지 아리송했다.
한영기가 말을 잇는다.
“북한의 개성관광특구 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 오갑수 명의로 통일부장관 앞으로
공문이 왔습니다.”
“…….”
“일성건설이 모델하우스를 지어달라는 공문입니다.”
1억불이다. 이제 1억불은 지금 당장이라도 받아낼 수 있겠다.
그리고 공사대금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서 4조 가깝게 된다.
4조의 10%면 4천억이 아니가? 순식간에 조철봉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계산이다.
그때 한영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실장님 말씀을 전합니다.
정상회담에 들어갈 비자금은 있어서는 안 되고 만들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만 말씀드리면 아실 것이라구요.”
“…….”
“수고했다는 말씀을 꼭 전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조철봉도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망감은 어쩔 수 없이 밀려왔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내가 끝까지 주선은 해보겠습니다.
그쪽도 비자금만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 놓은 조철봉에게 앞쪽 자리에 앉아 있던 최갑중이 묻는다.
“연락이 왔습니까?”
눈치가 빠른 최갑중이다.
최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성건설에 연락해. 북한에서 통일부로 연락이 왔다고 말야.”
놀란 최갑중이 눈을 치켜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개성관광특구 추진위원장이 보낸 공문이야. 확인해 보라고 해. 그리고….”
“돈 준비를 시켜야겠군요.”
최갑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전화로 하면 안 되죠.
제가 건설사장을 직접 만나겠습니다.”
과연 심복이다. 이렇게 손발이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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