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8. 중개자 (2)
(2153)중개자-3
사업가 신분으로 돌아왔지만 조철봉의 일상은 분주했다.
특보라는 공직에서 물러나자 갑자기 민원이 쇄도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최갑중과 김경준이 알아서 조정했지만 북한 관계 민원이 많았고,
돈 좀 빌려 달라는 청도 상당수였다.
그 갖가지 사연이 적힌 편지가 조철봉 앞으로 배달된 적은 없다.
모두 비서실에서 걸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점심을 먹으려고 나갈 채비를 하는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다가왔다.
손에는 편지 봉투가 쥐어져 있다.
“사장님, 개성공단의 마이벨이라는 회사 사장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힐끗 시선만 준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회사를 맡아 달라고 합니다.”
“뭐라고?”
일어서 있던 조철봉이 눈을 크게 뜨고는 자리에 다시 앉는다.
관심이 있다는 표시였으므로 최갑중은 앞쪽에 앉았다.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회사가 이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는데 암에 걸렸다네요.
자식도 어리고 회사를 맡길 사람도 마땅치 않으니까 대신 경영해 달랍니다.”
“나, 원, 참.”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배를 들썩이며 웃는다.
“별일이 다 많네, 내가 왜.”
“사장님이 적임자랍니다.
승낙하신다면 양도 절차를 밟겠다는데요.
그래서 제가 마이벨이라는 회사를 조사해 보았더니.”
정색한 최갑중이 똑바로 조철봉을 본다.
“장래성이 있는 회사입니다.
개성공단에 투자한 설비가 50억원대가 되고요.
지난해 6억원 정도 순이익이 났습니다.”
“나한테 양도하겠다는 이유를 듣자.”
이제는 조철봉도 정색하고 말한다.
“한번 말해 봐라.
이 세상에 관리자가 나 하나뿐이냐?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 않으면 다 사기다.”
“여기 적혀 있습니다.”
편지를 꺼낸 최갑중이 읽기 시작했다.
“조철봉 사장님의 북한 고위층과의 인맥이 회사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개성관광특구 건설에 있어서 조 사장님이 큰 역할을 하고 계신 바,
앞으로의 공장 증축이나 인력 증원, 북한 관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 사장님만 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조철봉은 듣기만 했고 최갑중이 억양없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읽는다.
“따라서 마이벨의 장래는 조 사장님의 거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만.”
읽기를 중단시킨 조철봉이 묻는다.
“거저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양도를 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냥 받을 수는 없겠지요.
투자비용에다 프리미엄까지 얹혀 줘야겠지요.
알아보았더니 마이벨의 개성공단 공장 가치는 100억원쯤 됩니다.”
“….”
“올해에는 10억원 정도 순이익이 예상되고요.
이건 전문가들이 뽑은 수치입니다.”
“무슨 암이래?”
“그것도 병원에 알아보았습니다.
간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생명입니다.”
“안됐네.”
“나이가 아직 47세인데, 대학 1학년짜리 딸이 하나 있더군요.”
그러더니 최갑중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한번 만나 보시지요.”
“그래야겠군.”
마침내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별 인연이 다 만들어지는구나.”
(2154)중개자-4
조철봉이 마이벨의 사장 이명진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가 되었다.
조철봉이 회사로 부른 것이다.
조철봉의 방으로 들어선 이명진은 얼굴이 검은데다 눈이 쑥 들어가 있어서 병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웃음띤 얼굴이 부드럽게 느껴졌고 악수를 나눌 때의 손도 따뜻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조철봉이 먼저 물었다.
“지금도 회사에서 일하신다면서요?”
“예, 병원에 누워 있기는 싫어서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은 이명진이 조철봉과 최갑중을 차례로 보았다.
방안에는 셋 뿐이다.
“딸아이가 자꾸 따라다녀서 귀찮지요.”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고 이명진이 말을 잇는다.
“일하다가 쓰러져 죽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이제 그때가 된 것이죠.”
시선을 돌린 조철봉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어제 최갑중과 만난 이명진은 마이벨을 75억에 양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명진은 투자금 50억만 받겠다고 한 것을 조철봉의 지시를 받은 최갑중이
기어이 25억을 올려 75억으로 결정했다.
이런 협상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이벨의 가치는 100억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서류가 다 끝날 테니 내일부터는 쉬셔도 될 텐데요.”
최갑중이 나서서 말했을 때 이명진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업무 인계하려면 제가 필요합니다.
공장 기계도 더 설명드려야 하고 바이어 관계도 자료만으로는 불충분하죠.”
그러자 최갑중이 쓴웃음을 짓고는 조철봉에게 말했다.
“지금 대기실에 따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아빠를 따라다닌다는군요.”
“그놈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따라 웃은 이명진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어제 최갑중이 이명진의 가정사를 보고한 것이다.
이명진의 처 박민주는 4년 전에 가출했다.
사춘기였던 중2짜리 딸과 사업밖에 모르는 남편을 두고 남자를 따라 부산으로 간 것이다.
가도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통장에 있던 돈 2억원에다 아파트를 담보로 4억을 빼내 6억여원을 들고 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랬듯이 결말이 좋지 않았다.
그 남자는 사기꾼이었고 6개월만에 알거지가 된 여자는 부산에서 식당일을 하다가
작년에 수원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딸한테 연락을 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딸이 경찰에 유괴 미수로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바람에 이명진도 알게 되었는데
분한 나머지 지난번 사건까지 경찰에 고발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다시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는데 이명진은
자신의 전 재산을 딸 이름으로 양도해 놓았다.
이혼한 엄마가 더 이상 접근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오신다고 해서 제가 잘 아는 죽집을 예약해 놓았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십시다.
따님하고 같이 말입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거들었다.
“같이 가시지요.
식당에 미리 이야기해 놓았으니까 입에 맞게 음식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머리를 숙여 보인 이명진이 퀭한 눈으로 조철봉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러다가 팍 쓰러져 죽는 것이 행복할 것 같은데요.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는 건 정말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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