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83. 조특보 (10)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38

783. 조특보 (10)

 

(2144)조특보-19

 

 

 

오후 2시반, 조철봉은 사무실로 들어서는 한영기를 맞는다.

방 안에는 이미 김경준과 최갑중도 와서 기다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왔는데도 한영기가 조철봉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면서 사과했다.

기다리게 한 것만으로도 미안한 표정이다.

방 안 분위기는 굳어져 있어서 인사는 건성으로 끝났다.

앞쪽 소파에 앉은 한영기가 서류봉투를 조철봉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해 왔습니다.”

조철봉이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자 한영기가 말을 잇는다.

“만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문점이라든가 요구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어느 시간이라도 저한테 연락해 주시면 즉시 해답을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머리를 끄덕이며 조철봉이 서류를 보았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서류였다.

남북 정상회담의 의의에서부터 목적, 그리고 우리측과 북한측의 요구사항에다 문제점,

대책까지 기록되었다. 한국 최고의 두뇌들이 작성한 서류인 것이다.

서류를 훑어본 조철봉이 다시 머리를 들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다.

한영기는 물론이고 최갑중과 김경준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조철봉이 한영기에게 물었다.

“내가 어제 일성 부회장 만났다는 거, 다 알고 계시지요?”

순간 한영기는 숨을 들이켰다가 곧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예, 제가 보고 했습니다.”

“난 공식 로비스트로 활동을 할 겁니다.

특보까지 겸업하면 안될 것 같아서 중국에 다녀오면 사퇴하려고 마음먹었지요.”

“그것은.”

당황한 한영기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연거푸 기습 펀치를 얻어맞은 꼴이 되었는데 두 번째 펀치가 강했던 것 같다.

“말씀은 알겠지만 윗분께 보고를 할 테니까 좀 기다려 주시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한 조철봉이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고 나서 한영기를 보았다.

어느덧 얼굴이 굳어져 있다.

“만일 정상회담이 성사가 되면 나한테 어떤 이득이 오지요?”

불쑥 그렇게 묻자 한영기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고 옆쪽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최갑중과 김경준의 둘 중 하나가 그랬을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한영기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이, 저는, 아직.”

“로비스트 입장에서 묻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성에서는 공사대금의 10%를 먹기로 했거든요.”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인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남북 정상회담은 서류에도 그렇게 써진 것 같은데 남북간의 평화 분위기 조성의

값어치만 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군요.”

“…….”

“그렇다면 그것을 로비한 인간한테 뭔가 대가를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 한영기는 눈동자도 굴리지 못했고 김경준과 최갑중은 침도 마른 것 같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잘 아시겠지만 내가 안중근 같은 애국자는 절대로 아니죠.

물론 이완용 같이 나라를 팔아먹을 배짱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없어요.

그냥, 사, 사업가죠.”

하마터면 사기꾼이라고 할 뻔했다가 사업가로 바꿨는데 뱉고 보니 잘 맞았다.

어깨를 편 조철봉이 똑바로 한영기를 보았다.

“하여튼 제가 중국에 다녀올 동안 그 대가에 대해서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2145)조특보-20

 

 

 

엔지 시내의 룸살롱 ‘아리랑’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초특급 룸살롱이었다.

별붙이기 좋아하는 인간들이라면 별 다섯개는 주저없이 붙였을 것이다.

내부 시설부터 손님을 맞는 마담과 웨이터의 자세까지 한국의 특급 룸살롱보다

나았고 방으로 들어선 조철봉의 입이 쩍 벌어졌다.

크리스털 샹들리에. 전면에는 사방 5m쯤의 대형 스크린, 원목 테이블에 가죽소파.

대리석 바닥에 맑은 공기. 기분이 상쾌해진 조철봉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방 하나만 꾸미는 데도 수억이 투자되었을 것이다.

이러니 아가씨는 안 봐도 비디오다.

조철봉은 혼자였기 때문에 옆에 붙어앉은 마담이 사근사근 시중을 들며 마실 것을 따라줬는데

이 또한 절색이다.

양장 맵시가 너무 고와서 당장에 손이 뻗어 나가려는 것을 참느라고 침을 여러 번 삼켜야 했다.

마담이 방을 나간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양성택을 안내해 왔는데 마치 옆방에서 모셔온것처럼

타이밍이 맞았다.

“어이구, 기다리셨소?”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온 양성택이 손을 내민다.

“이런 데서 만나야 어깨 힘 빼고 진실을 논할 수 있단 말입니다.”

조철봉의 손을 힘차게 흔들고 난 양성택이 앞쪽 소파에 앉더니

 

앞에 서있는 마담에게 묻는다.

“얘들 준비시켰지?”

“네. 사장님.”

마담이 사근사근 대답했지만 호랑이 앞에 선 개가 연상되었다.

꼬랑지가 두 다리 사이로 잔뜩 굽혀져 배에 붙은 개.

 

“그럼 우선 술부터 들여오고 아가씨들은 내가 부를 때까지 대기시켜.”

“예. 사장님.”

그러더니 마담은 소리없이 방을 나간다.

“로비스트가 되셨다고 하데?”

하고 양성택이 먼저 불쑥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빙긋 웃었다.

이렇게 말문을 터주면 진행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예. 10%를 먹습니다.”

“야, 대단한데. 자본주의 사회는 떡고물이 많아.”

양성택이 짧게 웃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마담이 종업원들과 함께 들어왔다.

쟁반에 가득 술과 안주를 담아온 종업원들이 소리없이 내려놓고는 마담과 함께 방을 나간다.

양성택이 양주 병을 집더니 먼저 조철봉의 잔을 채운다.

조철봉이 병을 받아 양성택의 잔을 채워주고 나서 둘은 건배를 했다.

“자, 북남의 발전을 위해서.”

술잔을 든 양성택이 소리쳐 말하자 조철봉도 이어 외쳤다.

“일성건설의 개성공단 건설을 위해서.”

그러자 술잔을 입에 붙이려던 양성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웃음 띤 얼굴이다.

양성택이 그 자세 그대로 묻는다.

“일성건설의 개성공단 건설을 위해서 건배를 하자는 거요?”

“예. 그래야 제가 10%를 먹습니다.”

“흐흐흐.”

소리내어 웃은 양성택이 한모금에 술을 삼키더니 지그시 조철봉을 본다.

“그 일 때문에 날 만나자고 하신 거요?”

“예. 북한측에서 일성에다 모델하우스 건설을 정식으로 요청해 주시지요.

그럼 다른 곳은 입을 딱 다물게 될 겁니다.”

“흐흐흐. 그렇게 되겠지. 만일 다른 업체가 공사를 맡게 된다면

우리는 공사 노동자 한 명도 들여보내지 않을 테니까.”

“제가 이번에 모델하우스 짓게 하는 대가로 1억달러 받아왔습니다.

말씀만 딱 한마디 해주시면 그 절반을 떼어 드리지요.”

하고 조철봉이 손바닥을 세워 뭘 자르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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