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81. 조특보 (8)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31

781. 조특보 (8)

 

(2140)조특보-15

 

 

 조철봉이 앞에 앉은 일성그룹 부회장 박동균을 똑바로 보았다.

60대 초반쯤의 박동균은 단정한 용모에 옷차림도 깔끔했다.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조철봉의 시선을 받았지만 녹록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풍겨나온다.

조철봉은 대기업 임원에 대해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고시나 행시에 합격해서 고위 관직에 오르는 것보다 대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믿어왔다. 방 안에는 넷이 앉았다.

조철봉과 박동균이 각각 옆에 최갑중과 건설의 대표이사 사장을 배석시킨 것이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국제에서 아무리 날뛰어도 개성관광특구 공사는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자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박동균은 가만 있었지만 건설사장 유정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50대 후반의 유정수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한국에서 국제건설을 공사업체로 지정해도 북한이 틀면 트럭 한 대도 현장에 진입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국제측과 로비스트 이용찬 의원은 기를 쓰고 조철봉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이다. 공사업체 선정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봐도 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전부장 양성택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박동균을 보았다.

“한국 정부에서 공사업체를 결정하기 전에 북한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빠르고

후유증도 적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긴장한 듯 박동균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개성관광특구 사업추진위원장이 일성건설에 전시관 공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아.”

건설사장 유정수가 먼저 감탄했다. 유정수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박동균을 보았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한국 정부에서도 국제건설에 공사를 맡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박동균도 머리를 끄덕인다.

“가능성이 있는 일이군요. 그럼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내가 해봐야지요.”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이 소파에 등을 붙이더니 앞에 앉은 대기업의 최고위층 임원 둘을

번갈아 보았다.

“로비자금이 필요합니다.”

“아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박동균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잠자코 시선만 주는 것이

말을 계속하라는 표시일 것이었다.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우선 선금으로 1억 달러, 성공했을 때 총 공사비의 10% 금액에 대한 잔금을 주셔야겠습니다.”

지난번에 10% 로비대금은 합의를 본 사항이었으므로 박동균과 유정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다만 이제 선급 1억달러를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그때 유정수가 머리를 들고 조철봉에게 묻는다.

 

“만일의 경우 오더가 되지 않았을 때 선금은 어떻게 됩니까?”

“선금의 절반은 돌려 드리지요.”

거침없이 대답한 조철봉이 둘의 시선을 받더니 빙그레 웃는다.

“그건 제가 쥐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1억 달러 중 절반을 북한측에 로비자금으로 준다는 뜻도 되었다.

북측에 한번 먹인 뇌물을 오더가 안되었다고 다시 게워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동균과 유정수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대답은 박동균이 했다.

“좋습니다. 드리지요. 방법을 말씀해주시면 바로 지급하겠습니다.” 

 

 

(2141)조특보-16

 

 

 “드디어 시작되었군.”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최갑중의 얼굴에 꼭 그렇게 쓰여 있었다.

조철봉은 최갑중의 얼굴을 보면 정확하게 생각을 짚어낼 수가 있다.

시치미를 뚝 떼고 운전사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콧구멍이 희미하게 벌름거린다.

심장 박동도 빨라져 있을 것이며 만일 조철봉이 없다면 커다랗게 웃어젖힐 것이었다.

단 몇마디에 1억달러가 들어온 것이다.

달러로 계산을 했으니 환율이 올라갈수록 이득이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300억원이 넘는다. 그중 절반을 북한에 떼어준다고 해도 650억원.

이러니 개나 소나 다 로비스트가 되려고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특보가 된 것도

이번 작업에 일조를 했다.

아니, 특보가 아니라면 일성그룹 부회장이 그렇게 쉽게 합의해 주었을 리가 없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쌔고 쌨을 것이다.

개성공단 작업이 끝나면 소문이 쫙 퍼질 것이고 그럼 온갖 곳에서 로비해 달라는 요청이 온다.

무기류 구매 로비스트로 나서는 것이 다음 순서다. 이것은 조철봉이 최갑중의 한쪽 얼굴만

보면서 머릿속 생각을 읽은 내용이다. 시선을 돌린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아마 이 일도 바로 대통령께 보고가 될 것이다.”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최갑중은 눈을 크게 떴다. 꼭 물벼락을 맞은 표정이다.

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날 자르자고 여러 놈이 나서겠지.”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최갑중을 보았다.

“이것이 특보로서 내 마지막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떤 놈이.”

했지만 최갑중의 기세는 현저하게 감소되어 있었다. 눈동자도 흔들렸다.

의자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앞쪽을 응시한 채 말한다.

 

“하지만 공단 공사는 내 뜻대로 되겠지.

그건 특보가 떼어졌다고 해도 변경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쥐더니 심호흡부터 했다.

최갑중의 시선을 받은 채 버튼을 누른 조철봉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차 안은 조용했다. 운전사 미스터 윤도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는다.

곧 응답소리가 들렸을 때 조철봉이 말했다.

“조철봉인데요. 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주시지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 조철봉이 휴대전화의 덮개를 내리더니 길게 숨을 뱉는다.

부장님이란 북한의 통전부장 양성택이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권력 실세인 통전부장과 이렇게 접촉을 하는 인간은

조철봉이 유일한 것이었다.

“형님.”

조심스럽게 최갑중이 불렀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말한다.

“형님, 제가 요즘 생각한 것인데요.

형님이 북한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의 대리인 역할을 맡는다면

가만 앉아있어도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정색한 채 듣는다.

최갑중이 말을 이었다.

“개성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사소한 문제를 처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지요.”

“…….”

“형님만큼 힘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어디 있습니까?

탈북자, 납북자도 다 데려오신 데다가 남북한의….”

“잠깐.”

최갑중의 말을 막은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83. 조특보 (10)  (0) 2014.10.09
782. 조특보 (9)  (0) 2014.10.09
780. 조특보 (7)  (0) 2014.10.09
779. 조특보 (6)  (0) 2014.10.09
778. 조특보 (5)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