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 조특보 (7)
(2138)조특보-13
조철봉은 만취했다.
앞에 소주병 4개에 맥주병 10여개가 놓여 있었는데 폭탄주를 10잔 정도 마신 것 같다.
이른바 소폭,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앞에 앉은 한영기와 최갑중, 김경준도 취하긴 했지만
조철봉보다는 덜했다.
영등포의 룸카페 안이다. 룸살롱과 카페의 혼합형으로 돈 좀 있는 놈들은
룸으로 들어가고 없는 놈들은 홀에서 마시는 구조다.
설명을 더 하자면 아가씨 서비스는 룸에서 확실하게 받는 한편 홀에 있는 작자들은
일진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
룸 손님이 많을 경우에는 늙은 마담이 오다가다 립서비스를 해줄 뿐 여자 구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조철봉이 눈을 부릅뜨고 말한다.
“그래, 내가 김정훈 대표한테 거짓말을 했어. 대통령이 울면서 나한테 말했다고 말이야.
김 대표가 꼭 총리를 맡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이지.”
놀란 셋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아가씨들을 다 내보냈기 때문에 홀에 앉았던 사내들은 수지맞았을 것이다.
팁도 다 주겠다면서 보낸 터라 아가씨들의 서비스도 부드럽지 않겠는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김 대표가 감동을 하더구먼. 암, 감동 안 하면 인간이 아니지.
아니, 대통령이 울면서 부탁을 했다는데 감동 먹은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앞에 앉은 셋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런 일에는 도가 트인 최갑중의 얼굴도 굳어 있다.
그는 계속해서 눈썹을 모은 채 조철봉을 응시했는데 경고하는 표정이었다.
말을 조심하라는 뜻 같았다.
최갑중으로서는 대통령을 판 어떤 거짓말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그 이야기를 오픈시키는 것이 불안할 뿐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술기운이 밴 어눌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나도 대통령 말씀을 전하면서 울었어. 대통령이 우시더라고 하면서 울었단 말이지.
정말 그때 난 아카데미상은 놔두고라도 한국영화 주연상감은 되었을 거야.”
“…….”
“김 대표는 이제 대통령과 국정의 동반자가 되었어.”
그렇다. 김정훈 한국당 대표는 오전 10시에 성명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전혀 청와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전제를 하고 나서 경제 난국을 타개하는 데
본인을 국무총리로 지명해주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개혁당은 놀라 난리가 났고, 청와대도 충격을 받은 듯 논평을 거부했다.
민족당과 노동자당이 쇼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여론은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
발표 두 시간 후에 개혁당 박준수 대표가 김 대표의 충정을 높게 평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제는 불났는데 시너를 뿌린 효과가 되었다.
그리고 오후 6시에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께서는 김정훈 대표의 제의를 고맙게 생각한다는
논평을 낸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이어진 성명전이 청와대 논평으로 매듭지어졌다.
국민들은 여당이 안타를 때려대다가 청와대의 마지막 홈런으로 끝내는 멋진 게임을 즐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철봉은 그 멋진 하루의 비사를 털어놓는 중이다.
거짓말로 이어진 진실이다. 조철봉이 다시 폭탄주 잔을 들었다.
최갑중이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조금 늦었다. 조철봉이 말한다.
“김정훈 대표가 내 거짓말을 알고 있었을 거야.”
다시 놀란 셋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술잔을 들고 비죽 웃는다.
“알면서 받아들인 것이지. 내 말을 그대로 믿었다면 정치인이 아냐.
나도 그것을 노렸지만 말씀이야.”
(2139)조특보-14
“이대로 두면 위험합니다.”
마침내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결론을 말했다.
벼르고 벼르다가 터뜨린 말이어서 말끝이 떨렸다.
대통령은 팔짱을 끼고 서서 창밖을 본다.
그래서 유세진에게 대통령의 어깨와 옆 모습 일부만 보였다.
유세진이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는 천만다행으로 국정에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통령님을 팔았다는 소문까지 다 퍼져 있는 터라 그대로 놔둔다면 조철봉은….”
“그만.”
하면서 대통령이 시선을 주었으므로 유세진은 숨을 삼켰다.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져 있다. 유세진을 향한 시선 끝도 멀다.
시선이 유세진을 뚫고 지나는 것 같다.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누구는 내가 천방지축 혼자서만 뛰고 있다는 비판을 해요.”
유세진이 침을 삼켰고 대통령의 말이 이어진다.
“인사는 내 주변에서만 골라 쓰고 우유부단, 성향 불분명, 남북관계 경색에다
경제 불황까지 다 내 탓이라고 하는데 난 거기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겠어요.
책임은 모두 나한테 있는 것이니까.”
그러고는 대통령이 희미하게 웃었다.
“난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조철봉처럼 날뛰는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유세진이 이맛살을 모은 것은 그 말뜻을 해석하려고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절로 이맛살이 모여졌다. 그때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나는 조철봉의 그 모습이 꼭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으로 내달리는 병사같이 보여집디다.
내 명령을 받고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말을 잠깐 멈춘 대통령이 입맛을 다신다.
“전장에 떨어진 시계도 줍고 죽어 넘어진 병사 주머니를 뒤져 귀중품을 찾는 것 같기도 해요.”
쓴웃음을 지은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내가 임명한 다른 지휘관이나 부사관들은 참호에 박혀 머리도 내밀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뛰는 병사는 조철봉이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러고는 대통령이 정색하고 유세진을 보았다.
“유 실장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소?
혼자 총탄 속에서 내달리는 조철봉이를 잡아 주저앉히시겠소?”
유세진이 대답 대신 침만 삼켰을 때 대통령은 길게 숨을 뱉는다.
“조철봉의 행태는 위험합니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조철봉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나서지도 못하면서 누굴 비판합니까?”
그러고는 대통령이 다시 창밖으로 머리를 돌렸으므로 방 안에는 잠깐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비서관 한영기한테서 조철봉이 김정훈에게 ‘쇼’를 한 내막을 들은 유세진은 먼저 격분했다.
대통령실장으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연히 대통령께 보고가 되어야만 했다.
오늘 오전에 김정훈 대표를 정식으로 총리에 지명한다는 발표를 했어도 그렇다.
대통령 말씀을 또다시 사칭한 조철봉에게 제재를 해야만 된다.
그때 다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박준수 의원과 김정훈 총리가 쌍두마차가 되어서 국정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둘의 나에 대한 충성심 경쟁이 아니라 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능력을 보이느냐가
차기 대선 주자가 될 관건일 테니까요.”
그러더니 대통령이 창밖을 향한 채로 벙긋 웃는다.
“둘이 조철봉처럼 일한다면 난 야당 사람들하고 골프나 칠 겁니다. 그게 내 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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