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77. 조특보 (4)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26

777. 조특보 (4)

 

(2132)조특보-7

 

 

대통령 앞에 선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민망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대통령님, 조 특보가 일성건설의 로비스트가 되겠다고 했다는데요.”

시선을 든 대통령의 얼굴도 야릇했다.

 

그것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똥을 알고도 밟은 얼굴’이 맞겠다.

 

발을 딛고 나서야 똥을 보아서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밟았을 때의 표정,

 

실망도 놀람도 아닌 낭패감 따위가 얼굴에 떠있는 것이다.

 

유세진이 말을 잇는다.

“이번 개성관광특구 공사에 로비스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일성측에서

 

뛰겠다면서 성공사례를 요구했다는군요.”

대통령의 시선을 받은 유세진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국정원에서 보고를 해왔습니다.”

그러면 이강준이 정보를 주고 나서 바로 고자질을 한 셈이 된다.

 

이윽고 대통령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조금 두고 보십시다.”

가볍게 유세진의 말을 자른 대통령이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듣기로는 국제산업의 로비가 너무 과열되어 있어요.

 

조 특보보다 경쟁사인 일성의 기를 꺾지 않도록 당분간만 놔 둡시다.”

대통령 집무실을 나온 유세진이 민정 비서관 한영기를 불러

 

조철봉에 대한 감시 강화를 지시했다. 유세진에게 조철봉은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도 같았다. 명문 출신에 미국 박사, 사회에서도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유세진에게 조철봉은 흥미의 대상은 될지언정

 

동반자 또는 동업자로는 의식되지 않았다.

 

사회 생활을 어느 정도 겪은 인간은 상대를 대하는 순간 성분을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하면 자신과의 종류(種類) 비교다.

 

그래서 대화의 공통점도 맞춰가고 찾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세진에게 조철봉은 자신의 격을 한껏 낮춰야 소통이 되는 상대였으니 피곤할 만했다.

 

그러나 어쩌랴? 대한민국은 오만가지 등급으로 나누어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거기에다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투표권은 딱 한 장씩인 것이다.

 

“제가 특보님 감시를 맡았습니다.”

그날 저녁, 갑자기 저녁 사달라면서 퇴근 한 시간 전에 연락을 해왔던 한영기가

 

한정식집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한영기가 벙긋 웃었다.

“제가 책임을 지라는 뜻이죠.”

방 안에는 최갑중, 김경준까지 넷이 둘러 앉았으므로 셋의 시선이 모여졌다.

 

그중 가장 직선적인 최갑중이 정색을 하더니 한영기에게 묻는다.

“비서관님, 우리 특보님이 간첩입니까? 무슨 감시를 한다는 겁니까?”

“이번에 일성건설의 로비스트가 되신 것이 보고되었거든요.”

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성건설 부회장과 만나 로비스트 역할을 해주기로 구두 합의를 한 것이 바로 이틀 전이다.

 

그때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고 묻는다.

“도청한 거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한영기가 말을 잇는다.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그쯤은 얼마든지 알 수 있지요.”

“그렇게 나한테 다 털어놓고 말해주는 이유가 있을 텐데.”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심하시라는 호의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인다.

“바로 그거야, 마음을 열면 쉽게 풀리지. 욕심을 버리면 얻게 되더라니까.” 

 

 

 

 

 

(2133)조특보-8 

 

 

그러나 다음날 조철봉이 일성건설의 로비스트가 되었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특종 기사는 아니었지만 대통령 특보가 특정 기업의 로비스트가 되었다는 보도는

 

객관적인 모양새를 갖춘 것 같았으나 비판적이었다.

 

이에 대한 한국당과 민족당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노동자당은 대변인 발표를 통해

 

대통령의 유착설을 터뜨렸지만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샀다. 너무 오버한 것이다.

“국제산업측의 반격입니다.”

접힌 신문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김경준이 말했다.

 

오전 10시, 사무실의 소파에는 조철봉과 김경준, 최갑중 셋이 둘러앉았다.

 

얼굴을 굳힌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국제산업의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은 쏙 들어갔구만 그래,

 

아무데도 나와 있지 않아, 그렇지?”

탁자 위에 쌓인 신문을 가리키며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국제산업의 돈을 먹고 일성건설 로비스트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

 

그러니까 그런 소문은 무시해 버린 거야.”

“그, 그렇군요.”

그때서야 깨달은 듯 김경준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소문이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말(馬) 주고 차(車) 먹은 겁니다.”

최갑중이 아는 척을 했지만 조철봉은 정색하고 김경준에게 말했다.

“일단 이 정도면 됐어.”

“뭐가 말씀입니까?”

김경준이 묻자 조철봉은 헛기침부터 했다.

“이제 양측이 공평하게 되었단 말이지,

 

그 무슨 플레이라고 하지? 정정당당하게 한다는….”

 

“더치페이 같은데요.”

다시 최갑중이 잘난 척을 했을 때 김경준은 심호흡을 하더니 작게 말했다.

“예, 페어플레이라고.”

“그렇지, 페어플레이.”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최갑중에게 눈을 흘기고 나서 말을 잇는다.

“이제부터는 국제가 함부로 나서지 못할 거야.”

“그렇습니다.”

“페어플레이 해야만 할 거라구.”

“그래야지요.”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되었던 회의가 끝났을 때 셋의 표정이 밝아졌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김경준에게 말한다.

“저기, 김정훈 대표하고 면담 시간을 잡아봐, 내가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전해드려.”

“예에? 김정훈 의원 말씀입니까?”

놀란 김경준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최갑중도 우두커니 서서 조철봉을 본다.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될 수 있는 한 빨리.”

“쉽지 않을 텐데요.”

“왜?”

했지만 조철봉은 김경준의 시선을 받지 않았다.

 

김정훈에게는 개혁당 발기인이자 창당 주역 중의 하나인 조철봉이 달갑지 않은 존재일 것이었다.

 

한국당에서 개혁당이 쪼개져 나가고 박준수 의원이 당대표가 됨으로써 김정훈 의원의 위상은

 

제2당의 당수로 격하되었다.

 

박준수 의원이 여권의 유력한 차기 주자가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조철봉을 앞세운 대통령의 음모라고 김정훈 의원측은 믿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김경준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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