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0. 새출발(10)
(2119)새출발-19
행자부장관 이윤식이 경찰청장 최경만을 우두커니 보았다.
장관실 안에는 둘뿐이다.
오전 11시10분, 경찰청장 최경만이 업무 보고차 방문한 것으로
주위를 물리치고 둘이서 밀담을 나누는 중이다.
이윤식이 입을 열었다.
“거, 참. 조 특보 파워가 대단하네.
대통령실장이나 민정수석까지 제쳐놓고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하다니 말이오.”
“남대문서장이 놀라 자빠질 뻔했답니다.”
최경만이 정색하고 거들었다.
최경만은 경찰생활 33년째이며 이윤식은 정치인 생활만 30년이다.
나이는 55세로 같았고 3선 국회의원 출신인 이윤식이 행자부장관이 되기 전에도
최경만과 인연이 있었던 관계로 둘은 한마디로 호흡이 맞는다.
그러나 지난 석달간 둘은 그야말로 바늘요를 깔고 자는 것처럼 지냈다.
단 하루도 편하게 자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둘이 밤낮으로 만나 상의를 했지만 촛불집회를 제압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찰을 우습게 본 시위대는 점점 더 기승을 부렸으며 여론은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권에 등을 돌리는 중이었다.
몇번이나 이윤식과 최경만이 강경진압을 제의하려다가 아예 청와대 문전에서 막혀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제 대통령이 조철봉을 시켜 내린 지시 한번에 끝나버렸다.
최경만이 말을 잇는다.
“과연 특보 자격이 있다고 하더만요.
소문으로는 조 특보가 어제 독대때 대통령께 강력하게 주장해서 관철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눈물까지 흘렸다는군요.”
“허어, 그래요?”
놀란 이윤식에게 최경만이 상기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조 특보가 어젯밤 청와대 들어갈 때 시위대한테 길이 막혔답니다.
그래서 남대문서장이 직접 선두에 서서 결사적으로 길을 뚫었다는군요.
서장한테 들었습니다.”
“하아.”
“그랬더니 독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바로 남대문서장을 찾더랍니다.
대통령께 결재 받았다고 말이죠.
끝까지 밀어붙여서 다 잡아 들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대통령 지시라면서요.”
“조 특보가 제일 낫구먼.”
“그런 사람이 측근에 있어야 돼요.”
“맞아요.”
머리를 끄덕인 이윤식이 다시 정색하고 최경만을 보았다.
“조 특보가 오후에 평양 간다면서요?”
“예, 1급 정보인데 핵회담 때문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조 특보가 숨통을 다 틔워 주는구먼.”
“우리 경찰관 사이에서 최고로 인기가 높은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대문서장은 조 특보가 죽으라면 그 옆의 대우빌딩 옥상으로 올라가 떨어질 겁니다.”
“허어, 참, 최 청장도.”
그때 탁자 위의 전화기 벨이 울렸으므로 잠깐 이맛살을 찌푸렸던 이윤식이 수화기를 귀에 붙였다.
“아, 뭐야?”
그러자 비서관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려나왔다.
“한국당 대표 이경필 의원이십니다.”
“응, 그래?”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윤식이 버튼을 누르더니 정색한다.
“여보세요.”
“아이구, 이 장관. 어제 고생하셨습니다.”
이경필의 밝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으므로 최경만도 긴장한다.
그러자 이윤식이 최경만에게 시선을 준 채로 말한다.
“모두 대통령님이 용단을 내리신 때문이지요.”
그러고는 정색하고 덧붙인다.
“결심을 받아낸 조 특보도 고생하셨고요.”
(2120)새출발-20
평양 주석궁 소회의실, 이곳은 조철봉도 눈에 익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도 이 육중한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위원장과
한국 대통령이 마주 앉은 장면을 TV에서 보았을 것이다.
지금 조철봉이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한국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 그래서 좀 불편하다.
등받이에 등을 붙이기도 거북하다. 좌우에 앉은 한영기와 이강준은 더 그럴 것이었다.
둘은 엉덩이를 제대로 붙인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둘은 처음으로 북한 위원장과 만나는 것이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먼저 경호군관이 들어선다. 조철봉하고 낯익은 사내, 그러나 시선만 줄 뿐 아는 척도 않는다.
처음에는 한국군 계급으로 중령이나 높아야 대령쯤 되는줄 알았더니 중장이라고 했다.
사내가 뒤쪽 벽에 붙어 섰을 때 곧 위원장과 통전부장 양성택이 들어섰다.
“여어, 조 특보.”
위원장은 조금 야윈 것 같았지만 웃는 모습은 밝다.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조철봉이 머리를 숙였고 한영기와 이강준도 절을 했다.
손을 들어 답례한 위원장이 앞쪽에 앉더니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 순간 한복 차림의 여자 접대원들이 소리없이 들어오더니 각자의 앞에 마실 것을 내려놓고
돌아간다.
“이봐, 남한도 바쁘게 돌아갔더구만.”
위원장이 바로 조철봉을 향하고 말한다.
조철봉은 한영기와 이강준의 인사를 시키려고 했지만 위원장이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단념했다.
위원장이 말을 잇는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 대립 구도로만 지내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더욱이 세계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야.”
“예, 그렇습니다.”
지당한 말씀 아닌가?
조철봉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고 좌우의 머리도 동시에 끄덕인다.
그때 위원장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대통령께선 어떤 카드를 가지고 계신가? 내가 가진 핵에 맞설 카드 말이네.”
“경제협력입니다.”
조철봉이 바로 대답했지만 위원장은 가만 있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는다. 입안의 침을 삼킨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신의지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지난번 약속 말인가?”
위원장은 지난번 대통령이 방북시 체결한 경제협력 협약을 말한다.
조철봉이 위원장의 시선을 받더니 길게 숨부터 뱉는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그럼 다시 만들란 말인가?”
“예, 가능한 일부터.”
“그리고 5년 후에 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는 또다시 계약을 변경해야겠군.
아니, 이제 4년 후인가?”
그러고는 위원장이 쓴웃음을 짓는다.
“나도 우리 인민을 잘 살게 하려고 핵 만들었어. 그 대가를 받아야 돼.”
“대통령께선 먼저 방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국론도 좋아질 것이고 경제 협력도 수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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