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 새출발(8)
(2115)새출발-15
그날 저녁 청와대로 들어가던 조철봉은 데모대에 막혀 하마터면 약속 시간에 닿지 못할 뻔했다.
시청 앞에서 미국산 양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석달째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대에 길이 막혔다고 차 안에서 꼼짝 못하고 있을 조철봉이 아니다.
김경준을 시켜 남대문 경찰서장을 불러낸 조철봉이 말했다.
“저기, 저, 특보 조철봉입니다.”
그러자 서장은 신문기자라고 들은 것 같았다.
와락 성을 내고 말한다.
“이보쇼, 나한테 뭘 취재한다고 그래? 나, 지금 바쁜지 몰라요?”
“저, 대통령 특보 조철봉입니다.”
대통령에 힘을 주어 말하자 서장은 그때서야 알아들었다.
이초쯤 지나 숨을 가다듬은 서장이 묻는다.
“아, 특보님, 웬일이십니까?”
“제가 지금 청와대에 가는데요, 데모대에 길이 막혔거든요?”
“아, 거기 어딥니까?”
조철봉이 어디라고 말하자 서장이 분기충천한 목소리로 말한다.
“거기로 5분 내에 1개 중대 병력을 보내겠습니다. 특보님.”
“제가 15분 후에 대통령님과 독대가 있어서 그럽니다.”
이 말은 안해도 되었지만 서장의 배려에 감동한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와 버렸다.
전화를 끊고 정확히 4분40초가 지났을 때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조철봉은 지진이 난 줄 알고 놀라 창밖을 보았더니
전경 중대가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아아.”
감동한 조철봉은 목이 메었다. 그러자 전경 인솔자가 차 앞에 서면서 소리쳐
전경 중대를 앞쪽으로 배열시켰다.
그러고는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다. 데모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래서 청와대에 제 시간에 닿은 것이다. 대통령은 이번에는 집무실 옆방의
소 회의실로 조철봉을 불렀는데 원탁 주위에는 넷이 앉았다.
대통령과 조철봉, 국정원장 김광준과 대통령실장 유세진이다.
인사를 마친 대통령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오시면서 길 막히지 않던가요?”
“아닙니다. 잘 왔습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촛불 데모가 길어지고 있었으므로 여론이 나빠지는 중이다.
보수세력은 더 강력한 진압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온건책을 썼다.
그래서 경찰만 죽을 고생이다.
양고기에 대장암을 일으키는 인자가 있다는 방송이 한 번 나간 때문인데
조철봉으로서는 고기야 쌔고 쌨으니 안 먹으면 그만 아니냐는 생각으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밤에 시청 앞을 지나다가 현장을 본 것이다.
데모대가 애국심으로 그런다고 쳐도 조철봉한테는 전경들이 안쓰러웠다.
불도저처럼 길을 내준 전경들이 무슨 고생이냐 싶었다.
그때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북한측에서 무슨 이야기가 있어야 할 텐데 말야.”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실장이 먼저 이야기를 띄워 놓은 것은 조철봉이
북한 측에 연락을 해보라는 말이나 같았던 것이다.
대통령이 북한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한다는데 북한과 유일하게
직통 라인을 가진 놈이 가만 있을 리가 있는가?
대통령은 물론이고 유세진과 김광준의 시선이 조철봉에게로 모여졌다.
조철봉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어깨도 편다.
“제가 통전부장한테 연락을 했더니
한국과 단 둘이서 핵문제를 상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셋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2116)새출발-16
본래 6자회담이라는 것도 한국을 북한이 일대일로 상대해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이쪽 저쪽에서 데리고 온 놀음이 아니었던가?
북한이 핵문제를 한국하고만 협상해 결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미국의 위성국 내지는 점령국으로 간주하여 대등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북한이었던 것이다. 정색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최선을 다해 줄 수가 있지.”
“저한테 방북을 해 달라고 합니다. 회담에 대한 상의를 하자는데요.”
“가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이 대답했고 김광준과 유세진도 머리를 끄덕였다.
대통령이 김광준과 유세진을 번갈아 보았다.
“조 의원이 가는데 누구 같이 보낼 사람이 있겠어요?”
“한영기 비서관이 조 의원과 여러 번 만난 인연이 있는 데다 적합한 인물입니다.”
유세진이 말했고 김광준이 곧 거들었다.
“저희들은 정보실장을 동행시키겠습니다.”
정보실장 이강준도 조철봉과는 같이 나이트에도 간 사이였다.
그러자 대통령이 길게 숨을 뱉으며 말한다.
“조 의원이 겨우 숨통을 틔워 주는 것 같군.
세계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데다 밤마다 시위대는 몰아붙이지.
내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네.”
대통령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문득 대통령이 되려고 뭐하러 그렇게들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철봉 같으면 시켜줘도 안 할 것이다.
회의를 끝낸 조철봉이 본관 현관으로 나왔을때 김광준이 서둘러 따라 나오더니 말한다.
“내일 오전 10시경에 정보실장을 보내지요.”
조철봉은 내일 오후 3시에 북한으로 떠날 계획인 것이다.
청와대를 빠져나온 차가 아예 시청앞을 피해 신촌 쪽으로 꺾어졌을 때였다.
조철봉이 다시 김경준을 시켜 남대문서장을 연결시켰다.
“예. 조철봉입니다.”
서장이 나왔을 때 조철봉이 특보라는 말을 빼고 말했어도 서장은 정중하게 대답한다.
“예. 특보님. 말씀하십시오.”
“방금 대통령님 만나고 나온 길입니다. 지금 신촌쪽으로 갑니다.”
“아아, 예.”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 저한테 말씀하셨는데요.
책임자가 소신껏 진압해 주셨으면 한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말씀이죠.”
그 순간 서장은 숨을 죽인 듯 대답하지 않았고 김경준도 긴장한 듯 몸을 굳혔다.
그때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 말씀은 공식적으로 지시하실 상황이 아니어서 저를 통해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서장께서도 참조하시지요.”
“…….”
“실무책임자가 알아서 챙기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서장님한테만 드리는 것입니다.”
“아아. 예.”
조철봉은 서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장쯤 되면, 더욱이 시내 중심부인 남대문서장쯤 되면 정치권 기류쯤은
국회의원보다도 훤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특보님, 감사합니다.”
서장의 목소리가 굵어졌고 조철봉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까 저한테 길 터주신 것처럼 밀어붙이세요. 그것이 대통령님의 뜻입니다.”
서장은 금방 대답하지 않았는데 이를 악문 것 같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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