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 새출발(9)
(2117)새출발-17
다음날 아침 신문 방송은 난리가 났다.
남대문 경찰서장이 두 시간 안에 촛불데모대를 싹 진압해버린 것이다.
진압 책임을 맡은 남대문 서장은 8000명의 전경을 동원하여 시위대 2000여명을 연행했다.
대규모 병력이었고 연행자 숫자로는 사상 최고였다.
그 와중에 전경과 데모대에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지만 시청 앞에 석 달 동안
세워졌던 시위대 본부까지 다 철거되었다.
전에는 과격한 진압 방법에 대해 방송 기자가 질책성 인터뷰를 하면 경찰 관계자는
실실 피했는데 이번에는 책임자인 남대문 서장이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불법 시위였습니다. 원칙대로 법대로 집행한 겁니다.”
그러고는 화면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그것을 본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방송국측은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 정도의
분위기를 덮어 씌우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남대문 서장은 졸지에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권율 장군 이미지를 풍겼다.
마침 남대문서장 성씨가 권씨였다.
“봐라.”
아침에 사무실에서 TV로 그 장면을 본 조철봉이 앞에 앉은 김경준과 최갑중에게 말한다.
“석 달을 끌었던 촛불 데모가 두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곧 유모차 부대도 나타날 예정이었다고 하던데요.”
영문을 모르는 최갑중이 거들었으므로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다.
“유모차 부대라니?”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데모대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큰일날 뻔했군.”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다행이다. 그 직전에 데모대를 진압해버려서.”
어제 경찰은 전격적으로 시위대 주동세력 거의 전원을 기습 체포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경찰이 능력이 부족해서 체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정권 지도층의 확고하고 확실한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어젯밤 마침내 남대문서장이 권력 실세인 대통령 특보 조철봉의 입을 통해
대통령의 의지를 들은 것이다.
남대문서장은 조철봉의 말을 듣자마자 경찰청장에게 보고했고 지원을 받았다.
거칠 것이 무엇인가? 남대문서장은 목이 메었고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대통령의 지시인 것이다. 시위 주동세력이 화장터 불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뒤쫓아가 잡아올 각오가 되어 있었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내가 대통령 지시라고 한 거야.”
최갑중과 김경준이 눈만 끔벅였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내가 말을 지어냈단 말이야. 알아?”
그 순간 김경준의 얼굴이 대번에 누렇게 굳어졌다.
치켜뜬 눈의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 아니. 그러면.”
“그래. 대통령이 지시하지는 않았어.”
“그, 그러면.”
“봐라. 이것이 바로 윗분을 모시는 아랫사람의 자세다.”
둘은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대통령께서 나한테 길 막히지 않았느냐고 한마디 물어보셨어.
난 그것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남대문 서장한테 이야기를 한 거야.”
그러고는 조철봉이 어깨를 부풀렸다.
“대통령은 직접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거야. 밑에 놈들이 알아서 챙겨야지.
책임도 지고 말야. 나는 그래서 어젯밤에 촛불시위대를 끝장낸 거다.”
조철봉이 눈을 부릅뜨고 덧붙였다.
“책임질 자신이 없는 놈들이 지시만 기다린다고.”
(2118)새출발-18
“조철봉이 남대문서장한테 대통령의 지시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는 겁니다.”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남대문서장한테서 보고를 들은 경찰청장이 민정수석한테 전화를 해왔거든요.
민정수석은 조철봉이 대통령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아는 터라 그러신 모양이라고 했다는군요.”
오전 10시반, 대통령 본관 대통령실 안이다.
대통령과 유세진은 창가에 나란히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때 문득 머리를 돌린 유세진이 대통령을 보았다.
“제가 어떤 명령 체계를 받아 어젯밤 강경진압을 하게 된 것이냐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
“대통령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유세진이 물었을 때 대통령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오늘 조철봉이 몇시에 평양으로 떠나지요?”
“예, 여기서 오후 2시에 승용차편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유세진이 서둘러 대답하자 대통령은 몸을 돌려 창틀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유세진은 따라 할 수는 없었으므로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비스듬한 위치에 선다.
대통령을 대각선으로 보는 위치였고 가장 부담이 적다.
상관의 정면에 서서 결재 받을 확률은 이렇게 비스듬한 위치보다 훨씬 적다.
“어때요? 잘 풀렸지요?”
불쑥 대통령이 묻자 유세진은 분주하게 생각을 정리한다.
이 물음이 호전된 상황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인지 또는 비판적 반응인지부터 알아내야
대답에 유리하다.
“예, 의외로 시민단체와 야당, 언론의 반응이 약합니다. 좀 놀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앞쪽 소파만 바라보았으므로 유세진은 열심히 말을 잇는다.
“반대로 보수세력, 여당, 대통령님 지지세력 전체가 일제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민정수석실에서는 대통령님 지지도가….”
말을 멈춘 유세진이 심호흡을 했다.
더 나가면 오버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에 들어오기 전에 비서관 하나가 대통령 인기가
단숨에 30% 정도 치솟았다고 말해주었다.
30%에 겨우 턱을 걸어놓고 있던 지지도가 60%로 올랐다는 말이었다.
“그것 참.”
대통령이 입맛을 다셨으므로 다시 유세진은 긴장한다.
머리를 든 대통령이 유세진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조철봉이, 큰일 낼 놈 아닙니까?”
“그, 그렇지요.”
얼굴을 굳힌 유세진이 말을 잇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대통령 지시를 사칭한 경우이니, 이것은….”
“겁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그런데 결과는 좋게 되었어요.”
이제는 유세진이 입만 벌린 채 시선을 주었고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놔두세요.”
“예, 대통령님.”
“조철봉이 말을 지어냈다고도 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놀란 유세진의 시선을 받은 대통령이 쓴웃음을 짓는다.
“나중에 확인이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아는 위인일 겁니다.
그럼 책임질 각오를 하고 내질렀단 말이 되지요.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는 대통령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렇게 만든 내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71. 새출발(11) (0) | 2014.10.09 |
---|---|
770. 새출발(10) (0) | 2014.10.09 |
768. 새출발(8) (0) | 2014.10.09 |
767. 새출발(7) (0) | 2014.10.09 |
766. 새출발(6) (0) | 2014.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