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66. 새출발(6)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11

766. 새출발(6)

 

(2109)새출발-1

 

 

 그날 밤 조철봉은 최갑중과 둘이서 소주를 여섯 병이나 마셨다.

 

물론 청와대에서 나온 후였다.

 

일산 집 근처의 곱창구이 식당이었는데 모시고 왔던 최갑중을 잡고 술을 마신 것이다.

 

소주를 다섯 병째 비웠을 때 최갑중이 붉어진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이제 최갑중은 조철봉한테 들어서 독대 내용을 다 안다.

“형님, 형님한테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주위 테이블은 비어 있었지만 최갑중이 목소리를 낮추고 상반신까지 앞으로 기울였다.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없을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조철봉의 두 눈도 번들거렸다. 그때 최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형님한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저 하나뿐일 것입니다.”

“아마 그럴 거다.”

“이제 형님 말씀은 대통령 지시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어떤 시발놈이 대통령한테 형님한테 그런 말씀을 했냐고 확인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못하지요.”

이제는 눈만 껌벅이는 조철봉을 향해 최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천재일호의 기회입니다.”

“응?”

긴장한 와중에도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천재일호라니?”

“천재가 일호째로 내놓는 기회이니 오죽 기가 막힌 기회이겠습니까?”

“…….”

“한몫 잡으시지요. 수천억, 아니 몇 십조를 쥘 수 있을 겁니다.”

“…….”

“대통령도 인간입니다. 이제 4년 후면 그냥 시민이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겠지요?”

“계속해 봐.”

“대통령이 형님을 내세워서 한몫 잡으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형님이 챙기시고 나서 반반으로 나누시든가….”

“네가 참 통이 크구나.”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최갑중을 본다.

 

탄복한 표정이 얼굴 구석구석까지 배어 나와 있다.

“너야말로 진짜 도둑놈이다.”

“아니, 저는.”

“나는 네가 부럽다.”

“형님, 제 말씀은.”

“이완용도 너보다 하수일 것이다.”

“글쎄, 제 말씀 좀 들어보시고.”

“하긴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절반만 선생이란 말인데 네가 나를 절반만 가르쳤다는 뜻이지.”

“저는 무슨 말씀인지….”

“무식한 놈은 다 풀어줘도 모르는 법이야.”

술잔을 내려놓은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렇다. 최갑중의 말도 맞다.

 

이런 기회가 세상에 두번 다시 또 있겠는가?

 

은행쯤 하나 팔아 넘기도록 압력을 넣고 몇 천억 리베이트를 받는 것쯤은

 

조철봉의 수단으로도 너끈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은근히 눈치만 보여도 건수를 만들어 올 인간이 수백명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의 심복 최갑중이 흥분에 겨워서 잠깐 간과한 일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조철봉이 자신을 믿는 사람은 배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온갖 사기를 다 쳤어도 믿고 의지해온 사람의 등을 친 적은 없는 것이다.

“나 배신 안 한다.”

정색한 조철봉이 불쑥 말했을 때 최갑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래, 네 놈 말을 듣고 나서 정신이 더 났다. 과연 네 놈은 내 충신이다.” 

 

 

  

(2110)새출발-12

 

 

조철봉에게 왜 안티가 없겠는가?

 

야당인 민족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안에도 조철봉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는 인간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민족당의 오정문 의원과 한국당의 최성환 의원이다.

 

둘다 재선으로 의정활동이 활발한 축에 들었고 지역구 의원이며 상임위에서 간사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까지 같았지만 이른바 이념은 정반대였다.

 

운동권 출신인 오정문은 진보대열인 반면 사업가로 기반을 굳힌 최성환은 보수다.

 

그러나 적의 적은 우군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조철봉에 대해서만은 둘이 동지 시늉을 했다.

“어이, 오 의원님. 좀 봅시다.”

하고 의사당 계단을 내려가던 최성환이 오정문을 불렀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오정문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최성환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왜 그러쇼?”

최성환이 오정문보다 다섯 살 많은 50세이긴 했지만 둘은 제각기 성깔들이 있어서

 

상대를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

 

기둥 옆에 붙어선 최성환이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조철봉이 이야기 들었지요?”

그러자 오정문이 헛웃음부터 날렸다.

“허어, 참, 장난도 아니고.”

“장난이 뭐야? 삼고초려를 했다는데.”

“그러니까 국정이 이렇게 엉망이지.”

오정문의 말이 빗나가자 최성환은 입맛을 다신다.

“어이, 오 의원, 삼천포로 빠지지 마시고.”

“한국당 쪽에서는 가만 있을 거요?”

“그래서 내가 부른 것 아뇨?”

“아니, 여기서 밀담 나누시게?”

눈을 치켜뜬 오정문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자 최성환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공동으로 조철봉이를 깝시다. 그럼 그 빌어먹을 개혁당까지 흔들릴 테니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제는 정색한 오정문도 목소리를 낮췄다.

“민족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할 겁니다. 한국당에서도 동조자가 많겠지요?”

“개혁당에 대한 반감이 많으니까.”

그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개혁당은 배신자 집단이지.

 

보수와 진보 양쪽 배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다가 결국 물에 빠지게 될걸?”

단기간에 기반을 굳힌 개혁당에 대한 반감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국당과 민족당에 잔류한 의원들 사이에서 특히 반감이 높았는데

 

선택되지 못한 입장을 선명성으로 덮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한국당과 민족당 잔류 세력도 더욱 보수와 진보 색깔을 강하게 드러냈고

 

그와 비례해서 개혁당 분위기는 당명과 다르게 중도 성향으로 비춰졌다.

“그놈이 특보라지요.”

오정문이 묻자 최성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치 특보라는군. 세상에 별꼴 다 보겠어.”

“직급이 없다고 하던데.”

“수시로 대통령 독대권이 있는 모양이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 되겠어.”

“그놈, 잘 해먹겠는데.”

“도대체 그놈 뭘 믿고 그런 자리를 줬는지 알 수가 없어.”

목소리를 높였던 최성환이 마침 의원 하나가 지나가자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잇는다.

“조철봉이가 지난번 일본에 갔을 때 국제산업 박정주가 보낸 돈을 받아 먹었다는 제보가 있어.”

그것이 오정문을 부른 목적인 모양이었다. 최성환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일본 지사에서 나온 정보로 제보자도 있어요.

 

우리가 곧 터뜨릴 테니까 그쪽도 공동 보조를 취해 주셔야 됩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68. 새출발(8)   (0) 2014.10.09
767. 새출발(7)   (0) 2014.10.09
765. 새출발(5)   (0) 2014.10.09
764. 새출발(4)   (0) 2014.10.09
763. 새출발(3)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