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65. 새출발(5)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10

765. 새출발(5)

 

(2109)새출발-9

 

 

 개혁당이 창당되면서 한국당내 두 세력은 타격을 받았다.

 

대통령의 암묵적 지원 하에 개혁당이 창당되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지만

 

겉으로는 신당이다. 두 파벌을 벗어나고 여야를 함께 포용한 신당인 것이다.

그러나 개혁당 당수가 된 박준수 의원은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세간의 인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대통령은 집권 1년 만에 신당을 창당하면서 후계자를 세운 것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당에 남은 김정훈 의원과 신당이 대립 관계처럼 인식되었지만 기본 바탕은 같다.

 

더구나 김정훈 의원 세력으로 구분되던 의원 10여명도 신당에 합류했기 때문에 한국당에서의

 

김정훈 의원 장악력은 더 떨어졌다.

 

신당 창당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70%가 넘었다.

여당측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야당측의 진보 세력도 지지해준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전반, 특히 신당에 참여한 인사들,

 

거기에다 국민들까지 마치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는 기분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취지나 내용은 좋다. 평화, 민주, 민족, 자유, 평등, 성장, 분배, 좋은 말은 다 들어갔다.

 

며칠 전 예쁘게 포장된 상자 안에 뱀과 전갈, 너구리에다 매까지 넣고 대통령께 선물하는

 

신문의 만평이 그것을 잘 표현했다.

 

그놈의 화백은 대통령께 박스를 드리는 인물을 조철봉으로 그려서 더 웃겼다.

 

그리고 다음날의 만평에는 상자 안을 들여다본 대통령이 울상을 짓는 그림이 나왔다.

 

상자 안의 짐승들이 서로 싸우다가 다 죽었기 때문이다.

“김 실장 바꿔.”

카바레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을 때 조철봉이 옆자리에 앉은 최갑중에게 말했다.

 

밤 11시반, 최갑중이 서둘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버튼을 누른다.

 

최갑중을 밖으로 내보내고 조철봉은 방에서 이경은을 한시간반 동안 다섯번을

 

천국으로 보냈다가 하강시켰다.

 

감동한 이경은은 시계를 보더니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절대로 소문내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마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떠들어댈 것이었다.

그때 최갑중이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김 실장입니다, 형님.”

조철봉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김 실장, 밤 늦게 미안한데.”

“아닙니다. 사장님.”

“내일 아침에 한영기 비서관한테 연락해서 내가 만나자고 한다고 전해줘.”

“예, 알겠습니다.”

김경준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약속시간은 언제로 정할까요?”

“내일 저녁도 좋아.”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조철봉이 핸드폰을 건네주자 최갑중이 묻는다.

“형님, 가실랍니까?”

최갑중의 얼굴도 굳어져 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실패가 두려워서 물러나진 않겠어.”

“아아, 예.”

아직 실감이 안 난 때문인지 최갑중이 건성으로 끄덕였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거기서 일하면 여자는 가끔 만날 수 있겠지? 국회의원 때하고는 다를 것 아니냐?”

“아, 그렇겠지요.”

“내가 무슨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까지 못 만난다면 아예 다 때려치울 거야.”

“아, 그러믄요.”

“해볼 거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최갑중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숨을 죽인다.

“그놈이 그린 그림처럼 대통령이 사체만 든 상자를 받게 할 수는 없어.” 

 

 

 

  

(2110)새출발-10

 

 

선입견의 영향은 대단하다.

 

오래 부대끼게 되면 차츰 진면목이 드러나 달라질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스쳐 지나는 관계,

 

또는 정치인, 공인에 대한 선입견은 바뀌기가 어렵다.

 

정치인, 국민을 막론하고 조철봉에 대한 선입견은 시쳇말로 잡놈,

 

내지는 권모술수에 능해서 사업을 키워 한밑천 잡은 놈이었다.

좋게 본다고 해도 운좋게 북한 고위층의 눈에 든 초짜 정치인, 또는 정치인으로

 

오염되지는 않은 인간 정도였다.

 

그러나 고위층의 인식은 조금 다르다.

 

대통령이 비서관 한영기를 보내 삼고초려했던 것도 그렇고 국정원장이,

 

아직 연락은 없지만 북한 고위층에서도 조철봉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조철봉의 능력을 간파했다기보다 역할 때문일 것이다.

 

숭례문 기둥이 지붕을 받칠 때 지붕과 기둥 사이에 작은 받침목이 들어간다.

 

눈에 띄지도 않는 그 작은 받침목의 역할을 조철봉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저녁 7시, 청와대 안 대통령 관저에서 조철봉은 대통령과 독대하고 있다.

 

물론 옆에는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동석했으므로 셋이다.

 

셋은 원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중이다. 대통령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의도인지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저녁상이라지만 별것 아니었다.

 

각자의 앞에 밥과 미역국, 멸치볶음에 겉절이 김치, 석화젓갈에다 김이 반찬의 전부였고

 

특별 서비스라도 되는 것처럼 큰 접시에 계란 프라이를 한개씩 놓아 주었다.

 

전주의 오천원짜리 백반상의 절반도 안 되는 식탁이다.

대통령은 듬뿍듬뿍 밥을 떠 잘 잡쉈지만 조철봉은 짜고 매운 것이나 구별될 뿐

 

맛을 느낄 경황이 아니다. 대통령하고 처음 독대해서 밥 먹는데 반찬 맛을 느꼈다면

 

초인일 것이다. 보통 인간이 아니다. 조철봉은 잠자코 밥 먹는 시늉을 한다.

 

작금은 국가 위기 상황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각국은 비상 상황을 선포하여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관계는 일사불란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루머에 자주 흔들렸고, 여론은 자꾸 리더십 부재를 비판했으며,

 

거대 여당은 여당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북한은 핵을 끝까지 쥔 채

 

아직도 대결 구도로 이끌어간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때 대통령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대통령은 벌써 밥을 거의 다 잡쉈다.

 

한 숟갈쯤만 남았다.

“조 의원은 참 독특한 사람이야.”

대통령이 정색하고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밥은 절반도 못 먹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잡은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카바레에 가면 백발백중 부킹이 되나?”

옆쪽의 대통령실장 유세진도 정색하고 이쪽을 본다.

 

둘 다 마치 오늘의 주식시장 상황을 듣겠다는 표정 같다.

 

조철봉이 어깨를 부풀리고 대답했다.

 

벌써 대통령께 보고가 된 것이다.

“예, 다 됩니다.”

“사전에 손을 썼겠지?”

“단골 웨이터가 알아서 챙겨 줍니다.”

“뒤탈은 없나?”

“없었습니다.”

“웨이터가 그래서 필요하군.”

머리를 끄덕인 대통령이 대통령실장을 보았다.

 

그러자 대통령실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둘 다 여전히 정색하고 있어서 표정을 멀리서 보면 공기업 다섯개쯤 없애자는

 

결정을 했다고 해도 믿을 것이었다.

 

그때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 의원이 그 역할을 해주시게.”

“예에?”

했다가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웨이터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 붙여주는 일이겠는가? 정치웨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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