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63. 새출발(3)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08

763. 새출발(3)

 

(2105)새출발-5  

 

 

 

“일주일에 한 번도 좋습니다.”

하고 한영기 비서관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는다.

 

오후 5시, 회사 사무실 안이었다.

 

소파에는 김경준까지 셋이 앉아 있었는데 한영기는 사무실에서

 

조철봉을 30분이나 기다렸다는 것이다. 한영기가 말을 잇는다.

“거북하시다면 직급도 없앤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손님으로 오셨다가 가시는 것으로 해도 좋습니다.”

김경준이 아까부터 조철봉을 힐끗거리고 있다. 초조한 표정이다.

 

한영기는 지금 대통령실장 유세진의 말을 전하는 것이지만 실제는 대통령의 전언인 것이다.

“그리고.”

정색한 한영기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단정한 용모에 머리칼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미국박사이며 대학교수 출신으로 대통령이 설립한 연구소 일을 한 인연으로 비서관이 되었다.

“당과 북한과의 연락, 절충 역할에 조 의원님만한 적격자가 없다고 대통령께서도 믿고 계십니다.”

마침내 한영기의 말에 대통령이 들어갔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서실장을 팔 것도 없이 한영기의 말만 듣고도 달려 들었을지 모른다.

 

마침내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 주시지요.”

김경준이 어깨를 늘어뜨렸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곧 저보다 유능한 분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북한측도 그럴 것이고요.”

“조 의원님, 아니, 조 사장님.”

다급해진 한영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통령께서 직접 부탁을 하셨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조 사장님이 필요하신 것입니다.”

“내 평가가 과장되었어요.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 조철봉이 어깨를 펴고는 상반신을 뒤로 젖혔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만 사양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영기가 길게 숨을 뱉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제가 여러 분을 모셔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러고는 한영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조철봉이 한영기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지만 더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한영기를 현관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김경준이 조철봉 앞에 섰다.

“사장님, 너무 사양하시는 것도 억지나 고집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정색한 김경준이 기를 쓰고 조철봉의 시선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가셔서 보여 드리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쓸데없는 낭비야.”

조철봉이 시선을 떼며 말한다.

“피차 말이지.”

어깨를 늘어뜨린 김경준이 방을 나갔을 때 조철봉은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신호음이 울리더니 신영선의 목소리가 들린다.

“응, 끝났어?”

신영선에게 청와대 비서관 하고 만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 그냥 돌려보냈어.”

조철봉의 대답을 들은 신영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어. 한 박자 늦추는 것이 나아.”

신영선은 조철봉의 정보원 겸 사부이기도 하다.

 

이번 일주일간의 잠적도 신영선의 조언을 듣고 실행한 것이다.

 

그러나 신영선은 조철봉의 청와대 행을 권하고 있다.

 

조철봉과는 생각이 다른 것이다. 

 

 

 

 

 

(2106)새출발-6  

 

 

이게 얼마만인가? 카바레 안으로 들어선 조철봉은 감동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두 번인가 도둑놈처럼 들렀을 뿐이었다.

 

웨이터 ‘100번’은 조철봉을 보더니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겼다.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사장님 찾는 건 버릇이 되어서 지난번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조철봉은 최갑중과 둘이다. 세계적인 불황이라 IMF때보다 더 경기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오후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홀은 손님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번 IMF때도 그랬다. 불황때 카바레가 잘되는 것이다.

 

싼 값으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을 방으로 안내한 100번이 서둘렀다.

“술과 안주는 전처럼 가져오겠습니다요.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여자분들이 부족한데요,

 

좀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불러내려면 30분쯤 걸리겠는데요.”

“이런 젠장.”

말상대는 최갑중이 한다. 혀를 찬 최갑중이 100번을 노려보았다.

“다른 웨이터 손님이라도 뺏어와. 그런 요령도 없단 말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산벌에서 백제군 진으로 달려 들어가는 화랑처럼 100번의 얼굴이 비장하게 굳어졌다.

 

100번이 나가고 나서 5분도 되지 않아서 보조가 술과 안주를 날라왔다.

 

최갑중이 초면인 보조에게 만원권 지폐를 몇 장 팁으로 주었다.

 

팁은 맨 나중에 주는 것이 정상이지만 초면인 종업원한테는 먼저 주는 것이 이롭다.

 

특히 떠돌이 손님이 많은 업소에서는 팁도 안 주고 도망가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팁을 주면 안심한 종업원의 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왔네요.”

보조가 나갔을 때 최갑중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철봉의 잔에 술을 따른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은 조철봉도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시끄럽고 혼잡한 곳에 오면 이상하게 안정이 된단 말씀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최갑중이 정색하고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앉아서 여자 기다리는 순간이 제일 행복한 것 같습니다.”

“얼씨구.”

“룸살롱에서 아가씨 기다릴 때보다 두 배는 더 스릴이 있고요.”

“이놈도 이제 다 가르쳤군.”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100번이 여자 둘을 데리고 들어섰다.

 

열심히 일한 시늉을 하려는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조철봉은 쭈뼛거리며 선 여자들을 보았다.

 

둘 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져 있었지만 쭉 빠진 미인이다.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태도도 당당하다.

“앉으십시오, 사모님.”

100번이 진주색 투피스 차림의 여자를 조철봉의 옆자리에 안내하자

 

나머지 여자는 저 혼자 최갑중 옆에 앉는다.

“사모님들 모셔오는데 힘들었습니다.”

허리를 편 100번이 말했을 때 최갑중 옆에 앉은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나 갈래요.”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리는 것이다.

 

당황한 100번이 쫓아나가려는 시늉을 하다가 주춤 서더니

 

조철봉의 옆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이 여자마저 따라 나가면 낭패라는 표정이 얼굴에 쓰여 있다.

 

그때 여자가 피식 웃는다.

“난 괜찮으니까 다른 여자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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