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62. 새출발(2)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07

762. 새출발(2)

 

(2103)새출발-3  

 

 

 

“죄송합니다.”

사내 하나가 말하고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국정원 과장 허준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물은 것은 최갑중이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역력하게 띠고 있다.

 

그러자 사내가 다시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말한다.

“원장님 전화를 받아 주셨으면 해서요. 원장님께서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국정원장 김광준의 전화를 기피할 이유는 없다.

 

국정원 직원이 조철봉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사내가 서둘러 핸드폰 버튼을 누르더니 곧 몇 마디 하고 나서 조철봉에게 건네주었다.

“원장님이십니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건네준 사내가 예의 바르게 서너 걸음 뒤쪽으로 물러갔으므로

 

조철봉은 바닷가를 향하고 서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원장님, 웬일이십니까?”

“대통령실장이 찾으십니다.”

불쑥 김광준이 말하더니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한번 통화를 해 보시지요.”

“아이고, 나는.”

해놓고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잇는다.

“난 분수를 아는 놈입니다. 실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차라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대통령께서 원하고 계시는 겁니다.”

“글쎄, 전 과대평가되었다니까요? 그걸 잘 말씀드려야 됩니다.”

이제는 조철봉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진즉 의원직을 사퇴하려다가 참으로 우연히 박준수 의원한테

 

신당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불쑥 말을 꺼낸 것이 여기까지 온 겁니다.

 

누구보다 원장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광준은 이제 가만 있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우연은 이제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북한측이 바라는 신당도 만들어졌으니까 제가 할 일도 없어졌지요.

 

그러니까 이젠 떠날 때가 된 겁니다.”

“조 의원님. 아니, 조 회장님.”

“전화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접은 조철봉이 어둠 속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전화기 받으시지요.”

조철봉이 핸드폰을 내밀자 사내는 공손하게 받고는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동료와 함께 주차장쪽으로 사라졌다.

“형님, 돌아가시겠습니까?”

다가선 최갑중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둘은 바닷가에 서 있었는데 뒤쪽 횟집들의 불빛이 환해서 최갑중의 찌푸린 표정이 다 드러났다.

“날 자꾸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뭘까?”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은 바로 대답했다.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형님의 성실성, 그리고 욕심 없는 성격 때문이죠. 더구나 겸손하고.”

그러더니 덧붙였다.

“형님만큼 북한통도 없으니까요. 북한 실력자하고 통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로 이용하기가 쉽지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이제는 쓴웃음을 짓는다.

“민족당쪽의 호감도 받고 있거든요. 형님은 이제 거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2104)새출발-4 

 

 

 

일주일 동안 조철봉은 TV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도 읽지 않고 바닷가 빌라에서 지냈다.

 

최갑중은 수시로 사회와 전화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조철봉에게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집에 사고가 난 것 외에는 일절 말하지도 전화 바꾸지도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빈둥거리면서 밤에는 꼭 소주 한 병은 마셨지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조철봉은

 

몸에 가득찬 원기를 느낀다.

 

활력 또는 생기라고 불러도 되는 기운이었다.

 

8일째 되는날 아침 최갑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조철봉은 서울로 출발한다.

“자, 말해라.”

오전 10시, 사회와 단절된 지 만 8일이다.

 

조철봉이 최갑중의 뒷머리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일만.”

“예, 개혁당이 88명으로 늘어났고 제1당이 되었습니다.”

최갑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백미러에서 시선을 맞춘 최갑중은 말을 이었다.

“박준수 대표는 강력한 국정운영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야지.”

“북한은 방송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사해서 개혁당 창당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당연하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묻는다.

“내 이야기는?”

“이삼일 전부터 언론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빙그레 웃는다.

“빠르군.”

“예, 과연 그렇습니다.”

“앞으로 한 달만 조심하면 난 사라진 인간이 된다.”

최갑중은 대답하지 않았고 조철봉은 말을 잇는다.

“내 재산을 환원할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되겠지.”

“어쨌든 큰 일을 하셨습니다. 당을 만드셨지 않습니까?”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기분 나빠질라고 한다. 그런 말 하지 마라.

 

 내가 주도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

 

그걸 내 재주로 둔갑시키지 말어.”

“죄송합니다.”

“일주일 동안 많이 생각했는데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분수는 순발력이나 융통성, 임기응변에 능해서 사기꾼이 적격이야.

 

조금 더 발전시키면 중견기업 사주쯤이 될까?”

“또 겸손하시네요. 그것도….”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가 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국가에까지 해를 끼친 경우가 어디 하나 둘이냐?

 

그 사람들 다 저 나름대로 자위하지 않았겠어?

 

잠재 능력이 어떻다는 둥 하고 말야. 옆에서 너 같은 놈이 추켜 주고 말이지.

 

그러다가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이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났다. 최갑중의 핸드폰이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최갑중이 몇번 응답하더니 송화구를 가리고는 백미러를 보았다.

“김 실장인데요. 받으시겠습니까?”

김경준이다. 지금까지 김경준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최갑중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응, 무슨 일이야?”

핸드폰을 귀에 붙인 조철봉이 대뜸 물었을 때 김경준이 대답했다.

“청와대 한 비서관이 오늘 찾아 뵙겠답니다. 오늘 오시는 줄 알고 있던데요.”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들, 끈질기구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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