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54. 결단(6)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59

754. 결단(6)

 

(2088)결단-11

 

 

그날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하가 별장으로 왔다.

 

물론 조철봉의 연락을 받고 온 것이다.

 

별장은 보안장치가 완벽한 데다가 시내에서도 떨어져 있어서 일본에서처럼

 

기자에게 발각될 염려가 적었지만 조철봉은 조심했다.

 

하한테도 최갑중이 여러 번 주의를 준 것은 물론이다.

 

“너한테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하가 다소곳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을 때 조철봉이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한다.

 

이미 조철봉은 양주를 대여섯잔 마신 후여서 얼굴이 붉다.

 

조철봉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하를 보았다.

“하, 넌 예쁜 여자다.”

“고맙습니다.”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보인 하가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조철봉의 가슴이 쩌르르 울린다.

 

교태다. 색기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짐승이라면 발정 난 암사자가 엉덩이를 수사자 코 앞에서 흔드는 꼴이나 같다.

 

조철봉이 역시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네 어머니는 가만 있자.”

그러고는 조철봉이 가운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어 읽었다.

“카이란, 47세, 고향이 다낭이고 그냥 주부라고 하더구나.

 

이웃 주민들 이야기를 들었더니 얌전하고 살림 잘하는 부인이라고 소문이 났던데.”

알아듣기 쉽게 한마디씩 또박또박 조철봉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하의 얼굴이 굳어져 간다.

“네 아버지, 그러니까 카이란의 남편 두옹씨는 49세,

 

트럭 운전사로 자식들을 키운 아주 훌륭하신 분이더구먼.”

쪽지를 내려놓은 조철봉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하를 보았다.

 

하는 이제 시선을 내리고는 울상이 되어 있다.

“난 그런 거짓말에는 익숙한 사람이고 그런 거짓말이 어떤 때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기도 해. 그리고 나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온 사람이니까.”

이제는 정색한 조철봉이 한모금에 술을 삼켰다.

“너한테는 충고하는데 거짓말도 버릇이 된다.

 

내 경험으로 말해 주는 건데 거짓말 버릇이 들면 제 인생도 거짓말처럼 착각하게 되더라.

 

제대로 살려면 너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하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한다. 머리 꼭대기만 보여서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빈잔에 술을 채운 조철봉이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는다.

 

당연히 지엔과 하의 뒷조사는 최갑중이 했다.

 

이제 조철봉이 데리고 나간 여자의 뒷조사까지 해놓는 것이 최갑중의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은 한국보다 더 간단했다.

현지법인회사 기획실 소속의 조사원이 다섯시간 안에 둘의 신상명세를 주르르 뽑아왔던 것이다.

 

한동안 방안은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냥 덮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데리고 살 것도 아니고 오늘밤이 지나면 또 만날 기약도 없는 관계인데

 

괜히 분위기 깨뜨리는 짓이었다.

술잔을 든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어둠에 덮인 창밖을 보았다.

 

그렇다. 심기가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속고 속이며, 이용을 당하고 이용하는 사회 생활에

 

염증이 난 것 같다.

 

하긴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 서로 얽힌 관계에서 영유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릴 적 다정했던 친구는 멀어져가고 이해가 얽힌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 세상사다.

 

 세상이 어지럽고 어려울수록 인간은 더욱 더 초조하게 이해를 찾는 것이다.

 

술잔을 내려놓은 조철봉이 하에게 말했다.

“내가 요즘 좀 답답해서 그랬는데 그냥 세상 사는 데 참고나 해둬라.”

하지만 덕분에 생각이 정돈되었다.

 

 

 

 

 

 

 

(2089)결단-12

 

 

“의원님 인기는 여전히 높습니다.”

다음 날 별장에서 같이 아침을 먹던 김경준이 말했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시켰더니 김경준은 밤에 떠나는 비행기를 탄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 별장에 도착하고는 조철봉하고 아침을 먹는다.

 

김경준이 말을 이었다.

“며칠 전 일본에서의 사건도 넘어갔기 때문에 이제 별 문제가 없습니다.”

베트남인 주방장은 한국 요리도 잘 한다.

 

김치찌개를 수저로 떠서 삼킨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됐는데 다른 문제가 있어.”

최갑중은 도청을 염려해서 전화로 김경준한테 북한 통전부장을 만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조철봉이 양성택과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김경준은 수저를 내려놓고 듣는다.

 

이윽고 조철봉의 말이 끝났을 때 김경준은 긴 숨을 뱉었다.

“그럼 최 보좌관은 이 이야기를 국정원장한테 하러 간 겁니까?”

김경준이 묻자 조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밥을 절반쯤 먹은 조철봉도 수저를 내려놓았다.

“오늘 보고하겠지.”

“그럼 의원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박준수 의원을 내세우고 신당을 창당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아니.”

한마디로 자르자 놀란 김경준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라니요? 그럼 거부하실 겁니까?”

“아니.”

그러자 김경준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난 어젯밤에 결심을 굳혔는데 의원직을 내놓을까 고려중이야.”

“예에?”

김경준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터졌다. 침을 삼킨 김경준이 묻는다.

“아니, 왜요?”

“이용당하고만 있는 것 같아서.”

“그, 그것은.”

“정치인이 추구하는 첫번째 목표가 권력인 것 같더구먼.”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당연한 목표지. 의원에서 위원장, 당의장, 당대표, 또는 장관, 그러고 나서 대통령.”

하나씩 부르고 난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었다.

“난 싫어. 난 아냐.”

“그럼 왜 정치를 하신 겁니까?”

“국민한테 뭔가 봉사하려고.”

“그럼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난 능력이 안돼. 이런 구렁텅이에서 부대끼다간 이용만 당하고

 

내가 마음먹은 일은 손도 못 대겠어.”

“납북자, 국군포로도 데려오셨지 않습니까?”

“날 이용하려고 그런 거지. 내가 무슨.”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베푸시면 됩니다.”

“말도 안돼.”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머리까지 저었다.

“설령 대운이 맞아서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치자고.

 

그럼 대한민국 망신이야.

 

카바레에서 내가 꼬였던 여자들부터 배꼽을 쥐고 웃을 거야.”

“아니 왜 갑자기 카바레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되겠어?”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이 없죠. 그래서 의원님은 자격이 있으신 겁니다.”

하고 김경준이 정색하고 말했을 때 조철봉은 다시 머리를 젓는다.

“어쨌든 신당문제, 그리고 국제산업 입찰문제까지 내팽개치고 나갈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김 보좌관이 당분간 내 옆에서 도와줘야겠어. 나갈 때까지는 말야.”

“물론이지요, 의원님.”

김경준의 얼굴은 결의에 차 있었다.

 

생기까지 나 있는 것이 조철봉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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