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52. 결단(4)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57

752. 결단(4)

 

(2084)결단-7

 

 

 

 

통화가 되었을 때 박준수는 긴장한 것 같았다.

 

차분했지만 굳어진 목소리로 의례적인 인사를 끝내더니 입을 다물었다.

 

어서 본론을 꺼내라는 무언의 요구였다.

 

조철봉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은 듣던대로 허식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박 의원님, 제가 아직 구체적인 검토는 하지 않았지만 당을 하나 만드시지요.”

뜬금없는 말에 박준수는 가만 있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새로운 분위기가 절실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

 

 악습에 젖은 전문적인 정치꾼들 때문에 새롭게 시작하려는 신인들까지 좌절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자금에 관련된 비리는 근절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당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 의원.”

마침내 박준수가 말했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굳어져 있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더 긴장한 것 같다.

“이해는 갑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좀 당혹합니다.”

맞는 말이다. 박준수와는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것이다.

 

조철봉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면 이런 말도 내놓지 않았다.

 

접촉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심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시겠죠,

 

하지만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릴 분이 의원 중에 계시다는 것으로 위안이 됩니다.

 

저는 박 의원님을 당수로 모시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발전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박 의원님만 동의하신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박준수가 조금 조급하게 조철봉의 말을 잘랐다.

“조 의원님 성의는 고맙지만 저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현 조직으로도 충분히 조 의원님이 기대하시는 경지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거든요.”

“그건 이상론이죠. 현실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당을 그렇게 쉽게 만들고 깨는 것이 아닙니다.

 

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만들어졌고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정치는 썩었습니다.”

“그런 악습을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지요. 너무 성급하십니다.”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박준수가 대번에 그러자고 하거나 기쁜 내색을 보였다면 바로 실망했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 의원님.”

“조 의원님.”

그러자 박준수의 목소리가 약간 부드럽게 느껴졌다.

 

박준수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베트남에 계시다고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여행 잘 다녀오시고 귀국하고 나서 한번 뵙기로 하지요.”

“뭐, 저는 비례대표니까 당 바꾸고 나서 의원직 그만두면 되겠습니다.”

“글쎄, 그것이.”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해 의원직 버려도 됩니다. 그동안 의원님도 좀 검토를 해 주시지요.”

그러고는 통화를 끝냈을 때 조철봉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개운했다.

 

남북한의원협의회에 가입한 의원들 중 몇명이 호응해 줄지는 알 수 없다.

 

의원협의회에 가입하려고 갖은 아부를 다 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는

 

제 손익계산부터 할 것이었다.

 

어쨌든 신당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고 불안했다.

 

 

 

 

(2085)결단-8

 

 

오전 회의를 마치고 현지법인 사장 박기태와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전화기를 내민다.

“사장님,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를 받은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양 선생입니다.”

긴장한 조철봉이 전화기를 귀에 붙인다.

 

북한의 통전부장 양성택이다. 통전부장은 통일전선부장을 줄인 말인데

 

북한의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대남사업비서 소속이 되었지만 비서가

 

통전부장을 겸한 양성택이다.

 

양성택이 대남사업 실무총책이며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인 것이다.

“예, 조철봉입니다.”

조철봉이 말했을 때 수화기에서 양성택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구, 거기서 재미 좋으십니까?”

“아아, 예.”

양성택의 밝은 목소리에 조철봉의 얼굴도 환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십니까?”

“제가 6시쯤 다시 전화를 드리지요,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러지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하면서 전화가 끊겼을 때 옆에 앉아있던 박기태가 시선을 주었으므로 조철봉이 말했다.

“아, 한국에서 일 때문에.”

뒤에 선 최갑중한테도 들으라는 소리였다.

 

양성택의 신분을 감춰두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그래서 조철봉은 저녁 약속을 안하고는 최갑중과 함께 호텔방에 앉아 양성택의 전화를 기다렸다.

 

6시 정각이 되었을 때 최갑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들으나마나 양성택이다.

 

응답을 한 최갑중이 바로 조철봉에게 전화기를 넘겨 주었다.

 

조철봉을 확인한 양성택이 말했다.

“조 의원님, 내가 지금 평양식당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저하고 저녁이나 같이 하시죠.”

“평양식당 말입니까?”

놀란 조철봉이 다시 묻는다.

 

평양식당은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조철봉도 서너 번 가 보았다.

 

한국 관광객들의 관광코스로 정해질 만큼 식사 중 공연도 수준급이었고

 

냉면 맛이 좋은 식당이었다.

 

양성택이 어느새 호찌민시로 날아온 것인지 얼떨떨했어도 거절한 이유는 없다.

 

조철봉과 최갑중이 평양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7시10분이었다.

현관에 서있던 여지배인이 둘을 보더니 곧장 안쪽 밀실로 안내했다.

 

홀에는 한국 관광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철봉은 이곳이 북한 영역으로 느껴졌다.

 

종업원들은 친절했고 수준도 높았다.

 

조철봉은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한국 관광객 여자 몇명이 북한 종업원 앞에서 갑자기

 

자가용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옆자리에서 들은 것이다.

 

새로 산 중형차 이야기를 했는데 분명히 북한 종업원이 들으라는 의식적 행동이 역력히 보였다.

 

그때 조철봉은 종업원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을 보고는 얼굴이 후끈거려서 몸을 돌려야만 했다.

 

지배인이 안내한 방은 주방 옆의 특실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양성택이 조철봉을 보더니 반색을 하고 일어선다.

 

양성택은 낯선 사내와 둘이 조철봉과 최갑중을 맞는다.

 

인사를 마친 넷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50대쯤의 사내는 통전부 참사 한길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 의원님, 갑자기 찾아와 놀라셨지요?”

웃음띤 얼굴로 양성택이 묻더니 곧 제말에 제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뵙고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전화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전화 도청은 어지간한 심부름센터에서도 다 한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54. 결단(6)  (0) 2014.10.09
753. 결단(5)  (0) 2014.10.09
751. 결단(3)  (0) 2014.10.09
750. 결단(2)  (0) 2014.10.09
749. 결단(1)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