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46. 외유(11)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15

746. 외유(11)

 

(2073)외유-21

 

 

그로부터 정확하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문의 벨이 울렸다.

 

조철봉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최갑중이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제가 박정주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하면서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사내 하나가 방으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아 있던 조철봉이 일어나 사내를 맞는다.

 

사내가 내민 명함에는 국제산업 일본 지사장 임윤식이라고 찍혀 있다.

 

인사를 마친 그들이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임윤식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임윤식은 단정한 용모에 눈도 또렷했다.

 

조철봉을 향한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회장님께서 심부름을 보내셨습니다.”

머리만 끄덕인 조철봉을 향해 임윤식이 말을 잇는다.

“이번 저희 회사가 기대하는 큰 공사가 있지만 의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셔도

 

전혀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조철봉이 눈만 껌벅였다. 예상과는 다른 발언이다.

 

그때 임윤식이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숫자가 여러 개 적힌 쪽지였다.

“여기 시빌은행에 입금된 50만달러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입니다.

 

제임스 칸이라는 이름만 대시고 비밀번호만 써내시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출금이 가능합니다.

 

이걸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으므로 방안에는 10초쯤 정적이 덮였다.

 

그동안 최갑중은 침을 한 번 삼켰고, 헛기침을 한 번 했으며 임윤식은 두 번 눈을 깜박였지만

 

조철봉은 쪽지를 내려다본 채 눈썹 한 개 흔들지 않았다.

 

이윽고 시선을 든 조철봉이 임윤식을 보았다.

“조건이 없다고요?”

“예, 의원님.”

임윤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인수증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받고 나면 어떻게든 받았다는 표시는 해드려야겠지요? 전화나 또는 사람을 시켜서라도.”

“그, 그것은.”

침을 삼킨 임윤식이 조금 당황한다.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만.”

“내가 가만 있으면 임 지사장님이 가지신 것으로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를 저은 임윤식이 정색하고 덧붙였다.

“어떤 연락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갑중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서울 박정주 회장께 연락해.”

“예, 의원님.”

긴장한 최갑중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서둘러 전화기의 버튼을 누른다.

 

전화가 연결되는 동안 조철봉과 임윤식은 각각 딴전을 보았다.

 

임윤식은 조금 초조한 표정이다.

 

곧 전화가 연결되었으므로 조철봉은 송수화기를 귀에 붙였다.

“아이고, 웬일이십니까?”

이번에는 박정주가 그렇게 묻자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여기 지사장이 와계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50만달러 보내셨다는데.”

그러자 박정주는 침묵했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 성의를 받은 것으로 하고 그냥 도로 가져가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저는.”

“확실하게 해드리려고요. 그리고 받지는 않더라도 적극 후원해 드리지요.”

“아니, 조 의원님.”

“여러가지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철봉이 빙긋 웃는다. 돈유혹을 견뎌야 남자다. 

 

 

(2074)외유-22

 

 

베트남, 조철봉이 베트남에 올 적마다 느끼는 감정은 젊음이다.

 

통계에 의하면 베트남의 8천만 인구 중 70퍼센트가 1975년 이후에 출생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월남 전쟁이 끝난 해가 1975년이다.

 

전쟁이 끝나고 출생한 젊은이가 인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공항에 마중나온 마키는 이제 30대 중반으로 오성현지 법인 산하의 제3의 의류공장 사장이

 

되어 있었다.

 

마키는 월남전이 한창일 때 한국인 아버지와 월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리고 마키 동생 수엔은 어머니가 월남인과 재혼해서 태어났지만 한국을 동경했다가

 

결국 조철봉의 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어 독립해 나갔다.

 

결혼도 해서 아이가 둘이라고 한다.

“마티, 요즘 경제가 어떠냐?”

차가 공항에서 출발했을 때 조철봉이 앞에 앉은 마키에게 불쑥 묻는다.

 

마키는 공항으로 나오라는 조철봉의 연락을 받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보통 조철봉이 베트남에 오면 현지법인 사장 박기태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산하의 13개 계열사 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저를 나오라고 했으니

 

의아하기보다 불안했을 것이다.

 

마키가 몸을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잘 됩니다, 의원님.”

“인마, 난 의원으로 묻는 게 아냐. 오성그룹 사주 입장에서 묻는 거다.”

조철봉이 웃지도 않고 나무라자 마키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희망이 있습니다, 회장님.”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마키가 먼저 헛기침을 하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잇는다.

“모두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 발전에 탄력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으음.”

“자신감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옆에 앉은 최갑중을 보았다.

 

최갑중은 별로 감동한 것 같지가 않다. 딴 생각을 하다가 시선을 받은 듯 당황하고 있다.

 

조철봉이 다시 마키에게 묻는다.

“네가 운영하는 공장 인원이 몇이야?”

“1523명입니다.”

“작년에 흑자는 얼마나 내었지?”

“265만달러 순이익을 냈습니다, 회장님.”

미리 브리핑 준비를 한 것처럼 묻자마자 술술 대답한다.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마키, 넌 연봉을 얼마 받지?”

“예, 연봉이 10만달러 정도 됩니다.”

그래 놓고 마키가 얼른 덧붙였다.

“베트남에서는 최상급층에 들 것입니다.”

“그 정도면 한국에서도 그렇다.”

“모두 회장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너도 독립해 나가라.”

불쑥 조철봉이 말하자 이제는 최갑중도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마키는 얼굴빛까지 변해 있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네 회사에 그룹에서 투자한 금액이 500만달러 정도 된다.

 

너한테 그중 20%인 100만달러의 지분을 줄 테니까 네 회사처럼 운영해 보아라.”

그리고 덧붙였다.

“나머지 지분은 네가 돈을 모아서 사야 될 것이다.”

“회장님, 저는.”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마키가 말문이 막혔는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조철봉이 외면하고 말한다.

“네가 품고 있는 희망, 자신감이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거다, 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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