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45. 외유(10)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15

745. 외유(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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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그 사이에 최갑중은 통역 이토와 연락을 하더니

 

조철봉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이토가 나카무라 의원의 전갈을 말씀드린다는군요.”

최갑중에게 경성일보에 폭로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나카무라 의원실이었던 것이다.

 

조철봉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을 때 이토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쪽에서 다 조처를 해놓았으니까요.”

“아, 그래요?”

건성으로 대답한 조철봉에게 이토의 말이 이어졌다.

“딱 잡아떼시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것 같으니까요.”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그런데.”

“예, 의원님.”

“나, 지금 호텔로 가는 중입니다.”

“예? 그러면.”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정면 승부를 할 겁니다.”

“그, 그러면.”

놀란 이토가 더듬거렸을 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쪽에선 걱정하실 거 없다고 전하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러고는 통화를 끝냈고 호텔로 가는 동안 이토는 다시 연락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나카무라가 저는 할 만큼 했으니

 

어디 두고 보자면서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조철봉은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이쪽 저쪽에서 터지면서 길을 막듯이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은 조철봉에게 뭘 묻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제 모습을 찍히려고 오히려 조철봉보다 카메라에 더 신경을 썼다.

 

꼭 카메라만 비치면 열심히 말하는 시늉을 했던 어떤 국회의원같았다.

 

TV시대가 만든 병자들이다.

 

조철봉은 호텔 회의실로 기자들을 모았는데 머릿수가 이십여명이나 되었다.

 

물론 그중에 경성일보 기자도 끼어있다.

 

최갑중이 소리질러 질서를 잡고 질문순서와 인원을 정한 후에 곧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사실입니까?”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기자가 그렇게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눈을 부릅떴다.

“전혀.”

“그 여자분과 같이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다정히 붙어 서 계시던데요.”

“나도 사진은 보았는데 붙어 서 있다고 다 그런 상상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고는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곧 경성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어젯밤에도 들어오시지 않으셨던데요.”

“방에 있었습니다.”

“방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그렇게 말한 기자를 찬찬히 보았다.

“벨을 눌러 보았습니까?”

“네. 두 번이나.”

“몇시에?”

“저기. 그.”

하고 기자가 말을 더듬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짓는다.

 

영화를 찍으라고 해도 찍겠다.

 

거짓말이라면 내가 국회의원 중에서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이놈들아, 내가 속이기 제일 어려운 부류가 누군지 아니?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놈들아,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놈들 앞에서는 내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타 내겠다.

 

조철봉의 시선이 옆쪽 사회석에 서있는 최갑중과 마주쳤다.

 

최갑중도 어깨를 펴고 서 있다. 이제야 조철봉의 의도를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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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마친 조철봉은 최갑중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잘 끝냈습니다.”

소파에 앉았을 때 최갑중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방송에 나가겠지만 아마 많이 편집을 할 걸요?

 

하지만 꼬투리 잡힐 건 하나도 없습니다.”

조철봉이 잠자코 듣기만 했으므로 최갑중이 눈치를 보았다.

“형님, 뭐 걸리시는 일 있습니까?”

“아니.”

머리를 저은 조철봉이 문득 묻는다.

“다음 스케줄이 어디였지?”

“미국입니다. LA부터 뉴욕까지 미국 일정이 5박6일이죠.”

“변경시켜.”

“어, 어디로 말입니까?”

놀란 최갑중이 자리를 고쳐 앉는다.

“호텔 예약까지 다 해놓았는데요. 그리고 모임 일정도.”

“취소시켜.”

“그럼 어디로 가시려고.”

“베트남 사업장.”

그러자 최갑중의 얼굴에 생기가 떠올랐다.

 

눈이 반짝였고 입술 끝이 위로 치켜진다.

“그럼 사업장에 연락을 하지요.”

“거기서 쉬었다가 귀국할 거다.”

정색한 조철봉이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을 이었다.

“거기라고 국회의원 신분은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쉬면서 생각도 좀 해볼 거다.”

“알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최갑중이 서둘러 방을 나갔다.

 

베트남에 설립한 조철봉의 사업장은 현지법인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전문 경영인이 맡아 착실하게 성장했다.

 

운수회사와 관광회사, 거기에다 이제 중국에서도 인건비 비율이 높아져 채산이 맞지 않는

 

대규모 의류회사까지 설립해놓은 터라 고용 인력이 2만명 가깝게 된다.

 

그러나 이익금은 끊임없이 현지에 재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그룹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어도

 

조철봉의 개인적인 재산 축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조철봉은 베트남 생각에서 깨어났다.

 

잠깐 베트남 여자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아플 때는 여자 생각이 제일이다.

 

호텔방으로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를 귀에 붙인 조철봉이 응답했을 때 곧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박정주올시다.”

국제산업의 박정주 회장이다.

“아이고, 웬일이십니까?”

조금 놀란 조철봉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여자 사건이 신문에 보도된 후에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표시였다. 옆에서 말이라도 걸었다가 오염이라도 될까

 

염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쯤으로 서운해하거나 실망할 조철봉이 아니다.

 

그런데 박정주의 전화는 예상 밖이다. 그때 박정주가 말했다.

“이쯤은 일도 아닙니다.

 

조 의원님, 이쪽 상황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니까 기운 내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여론도 오히려 그 사진을 보도한 경성일보측에 비판적입니다.

 

국회의원은 술집에도 못 가느냐는 댓글이 더 많습니다.”

그러더니 박정주가 낮게 웃는다.

“뭐, 오히려 인기가 더 올라간 것 같던데요. 요즘은 그런 세상입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조철봉이 진심으로 말했을 때 박정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제 직원을 보냈습니다. 한 시간쯤 후에 방으로 찾아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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