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41. 외유(6)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11

741. 외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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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최갑중이 고른 장소는 긴자에 위치한 룸살롱 ‘르네상스’, 조철봉도

 

도쿄에 긴자가 있다는 건 알았다.

 

서울의 명동 같은 곳,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일본인 관광단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 왔다는

 

것을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한국인 남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어린애였을 테니까, 이 일본인 관광단 대부분은 남자였다.

 

이쯤되면 뭐, 짚이지 않으시는가? 그 관광단을 이렇게 불렀다. 섹스관광단.

싸고 질좋은 한국인 여자가 가깝게 있었으니 섹스 관광은 불 일어나듯 잘 되었다.

 

한국은 외화벌이도 되었고, 그리고 20년이 지나 한국 남자들이 중국으로, 태국, 베트남으로까지

 

관광을 떠난다.

 

그 관광단을 현지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지만 지난 일을 까맣게 잊는 것도 문제다.

 

제 부모 세대가 섹스 관광단을 맞는 수모를 겪으면서 닦아놓은 현재를 깔보면 안 된다.

‘르네상스’는 섹스 관광단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가던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식 룸살롱이다.

 

말하자면 적진에 역으로 침투한 특공대 역할과 같다. 어쨌든 발상도 훌륭했고 멤버도 짱짱했던

 

덕분에 르네상스는 긴자 최고의 룸살롱이 되었으며 지금은 제2대 사장 오영순 여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최갑중은 서울에다 연락을 하고 연줄을 찾는 소동을 부린 끝에 예약을 해 놓았는데

 

오영순 여사는 일행 여섯을 VIP룸으로 안내했다.

 

조철봉과 나카무라, 요시다와 스즈키, 그리고 보좌관 최갑중과 통역 이토까지 여섯이다.

“영광입니다.”

50대 중반쯤의 오영순이 정색하고 그들에게 인사했다.

 

한복 차림의 오영순은 품위가 있었으며 미인이다.

 

알고 보니 요시다가 이곳 단골이었으므로 분위기는 금방 부드러워졌다.

 

자리잡고 앉았을 때 오영순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애들이 일본어 다 잘 합니다. 그럼 애들 데려오지요.”

“그러시죠.”

대답한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마치 한국에 있는 기분입니다.”

“그러셔야죠. 긴장 풀고 드셔도 됩니다.”

따라 웃은 오영순이 방을 나갔을 때 요시다가 말했다.

“저 마담이 보스지요. 빅 보스입니다.”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그러자 최갑중이 조철봉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조금 전에 저한테 연락이 왔었습니다.

 

형님께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시느냐고 묻기에 알아서 잘 하라고 했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을 때 이번에는 나카무라가 말했다.

“이 집이 전통이 있는 집이더군요. 전 수상 세 분이 이집 단골이었답니다.”

“아예 누구는 애인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던데.”

스즈키가 말을 받았고 그것을 이토가 다 통역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종업원들이 술과 안주를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온다.

 

한국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탁자 위에 내려놓는 안주가 특별했다.

 

싱싱한 회에 요리가 먹음직스러웠고 따로 마른 안주도 있다.

 

안주만 보아도 입에 침이 고였으므로 조철봉은 머리가 끄덕여졌다.

중국식 룸살롱과도 분위기가 다르다. 술과 안주를 내려놓은 종업원들이 물러갔을 때

 

곧 다시 방문이 열리더니 오영순이 아가씨 여섯과 마담 둘을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어느새 조철봉의 옆으로 아가씨 하나가 다가와 앉았지만 눈이 부셔서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룸살롱에 들어왔을 때 이 순간이 가장 에너지가 많이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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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라고 합니다.”

옆에 앉은 아가씨가 제 소개를 했으므로 조철봉은 정신을 차렸다.

 

미인이다. 짧은 머리, 선명한 눈동자, 솟은 코, 단정한 입술에 계란형 얼굴.

 

이 기준이 언제부터 전해져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철봉은 미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유별나지 않고 남들과 같다고 믿는다.

 

제가 미인이라고 평가한 여자는 남들도 거의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수지가 고르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가끔 조철봉은 일본 영화나 비디오를 보면서 왜 저렇게 덧니가 난 일본여자들이 많은가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다큐 필름, 관광단의 여자도 그랬다.

 

그것이 밉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귀여웠다.

 

그러나 조철봉에게는 그 덧니가 일본 여자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수지의 고른 이를 보고

 

한국녀임을 실감한 것이다.

 

나카무라 일행은 놀 줄 아는 부류였다.

여자들이 옆에 앉자 일제히 제 파트너와의 밀담에 열중했는데 그것도 자연스러웠다.

 

조철봉에게 일부러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 같지가 않은 것이다.

 

눈치를 보던 이토도 파트너와 이야기를 시작했고, 최갑중은 진즉 넋이 빠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 언제 왔니?”

이런 대화는 손님마다 똑같겠지만 어쩔 수 없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 놓는 것보다는 낫다.

 

조철봉이 묻자 수지가 잔에 양주를 채우면서 대답했다.

“2년 되었네요.”

그러더니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룸살롱 1년쯤 나갔다가 여기로 옮겼어요. 그러니까 선수 생활은 3년이네요.”

“선수생활?”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수지를 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수지가 다시 방긋 웃었다.

 

마치 흰 박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럼요, 선수죠. 이곳은 링이고.”

수지의 시선이 방 안을 찍고 나서 되돌아 왔다.

“원정경기에 나온 것이구요. 상대는 손님, 승패는 손님의 만족도로 평가되죠.”

“그럼 승률은 어떻게 되는데?”

술잔을 든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수지를 보았다.

“매일 링에 오르면 승패가 있을 것 아냐? 몇전 몇승이나 올렸어?”

“상대를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나눠서 말할까요?”

“아, 그렇겠구나. 말해봐.”

“대 일본인전은 백전백승, 한번도 진 적이 없죠.”

“대 한국인전은?”

이제는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수지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한쪽 볼에만 보조개가 드러났다.

“승률은 대개 7할 정도.”

“3할이나 되는 놈들한테 패한 이유가 뭐야? 난 이해가 안되는데.”

“외국까지 굴러들어 온 것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는데?”

“일본인들하고 같이 밥 비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아, 동서지간 말이지?”

그러더니 조철봉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이해해줘야 돼. 한국남은 룸살롱을 만들어낸 원조분들 아니냐?”

“그래요. 자존심이 강하죠.”

조철봉이 수지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수지가 한국의 룸살롱 경력까지 묻지 않았는데도 말해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솔직한 표현으로만 생각했는데 여러 번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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