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38. 외유(3)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09

738. 외유(3)

 

(2057)외유-5

 

 

나카무라의 빌라는 예상했던 것보다 작았다.

 

도쿄 교외의 연립주택 2층이었는데 방 두 개에 손바닥만 한 거실에는 소파도 없었고

 

가구는 냉장고와 TV 그리고 앉은뱅이 식탁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조철봉에게는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문이 닫히고 집 안에 서유진과 둘이 남게 되었을 때 해방감으로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곳이 어느 구역인지도 모른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한시간반가량을 달려왔지만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던 것이다.

“씻으실래요?”

조철봉의 뒤로 다가간 서유진이 저고리를 벗기면서 묻는다.

 

서유진한테서 상큼한 향내가 났다.

 

밤 11시반, 주위는 조용하다. 집 안 창문을 꼭꼭 닫아 놓아서

 

바깥 소음이 들리지 않기도 했지만 이곳은 주택단지다.

 

집 앞은 1차선 일방통행로였고 차량 통행도 끊겨 있었다.

“같이 씻자.”

바지 혁대를 풀면서 조철봉이 몸을 돌려 서유진을 보았다.

 

바로 앞에 선 서유진이 시선을 받더니 싱긋 웃는다.

 

검은 눈동자가 불빛을 받아 요염하게 반짝였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조철봉의 팔을 잡아 욕실 쪽으로 밀면서 서유진이 말한다.

“밤은 길어요. 그러니까 서둘지 마시고.”

“허, 그래?”

얼굴을 펴고 웃은 조철봉이 욕실로 들어섰다.

 

욕실은 작았지만 욕조에다 구석에는 통나무로 만든 사우나 시설도 있다.

 

물론 1인용이다.

 

욕조에 물을 틀어 놓고 미리 들어가 앉은 조철봉은 차분하게 서유진을 기다린다.

 

언제나 이런 기다림은 에너지를 생성시킨다.

 

초조한 기다림은 스트레스를 발생시켜 소화불량에다 암의 전조 현상까지 일으키지만

 

지금은 가슴이 벅차기만 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초콜릿을 보면서 즐기는 기분, 갑자기 집이 무너지거나

 

혈압이 터지지 않는 한 초콜릿은 내 것이다.

 

욕조의 물이 반쯤 찼을 때 문이 열리더니 서유진이 들어선다.

 

알몸이다.

 

그런데 가슴이나 아래쪽을 전혀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선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상긋 웃기까지 했다.

 

조철봉이 조금 당황해서 시선을 돌리려다가 고정시켰다.

 

그러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건 보았을 것이다.

“제 몸 괜찮아요?”

한걸음 앞으로 다가선 서유진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아름답다.

 

세상에 여체만큼 아름다운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성(性)을 떠나서도 그렇다.

 

여체만큼 신비롭고 부드러우며 곡선이 아름다운 생명체는 없다.

“음, 좋구나.”

아름답다는 표현 대신 조철봉은 그렇게 말했다.

 

서유진의 가슴은 약간 작은 편이었다. 작은 반찬그릇만 했다.

 

그러나 배꼽 아래쪽은 달랐다. 아랫배가 두툼했으며 엉덩이는 풍만한 데다

 

골짜기는 무성하면서 깊다. 조철봉의 시선이 골짜기에 꽂혔다.

 

그러고는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네 거기가 원시림 같구나.”

“여기요?”

하면서 서유진이 힐끗 골짜기에 시선을 주더니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어느덧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너무 짙죠?”

그러고는 서유진이 욕조로 들어와 물을 튕기면서 앞쪽에 앉는다.

 

조철봉이 서유진의 다리를 잡아 자신의 양쪽 옆구리에 뻗어 놓았다.

 

그러고는 저도 다리를 뻗고 길게 숨을 뱉는다.

“아아, 이런 낙으로 사는 거지 뭐.”

일본에서의 첫날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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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은 일본 태생으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본인의 생활 양식에 익숙한 여자다.

 

부모가 한국인이며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도록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조철봉은 서유진이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피야 한국 혈통이겠지만 몸은 일본녀라고 불러야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서유진처럼 피만 한국계인 동포들이 재일동포뿐만인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동포, 러시아의 고려인,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동포,

 

미국뿐만인가?

 

1960년도에는 브라질 등 남미로 농업 이민을 많이 떠났다.

 

이제는 지구 구석구석에 한국인이 다 박혀 있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정치인들이 그러는데 그 식으로 말할작시면 지구 구석구석에 한민족이

 

박혀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유독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 몇백만, 일본·중국에 각각 몇백만씩, 전세계에 얼마,

 

이렇게 계산하면 금방 육칠백만이 된다. 엄청나다.

 

그 국민들이 각각 그 나라에서 쿠데타라도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면

 

세계의 절반, 내지는 4분의 3이 한민족의 영토가 될지도 모른다.

조철봉이 사업 사기는 뛰어난 반면에 정치에는 숙맥이다 보니

 

처음에 그런 말을 들은 순간 대번에 쿠데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까 부질없는 계산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전세계의 한민족 더하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도 알게 되었다.

 

미국은 수십, 수백의 인종이 모여 이뤄진 연방국이다.

 

그런데 성조기 깃발 아래 얼마나 단결되어 있는가?

 

그들 중에 국가가 우선이냐, 민족이 우선이냐 하고 따져 묻는 시민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외국에 한민족이 퍼져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정도로 생각해주면 된다.

 

이제 한국도 베트남, 몽골, 중국에서 신부를 맞아들여 시골에 가면 타 민족 신부가 많다.

 

민족 찾아쌓다가 나라 망한다.

 

나카무라한테도 말했지만 임진왜란때 왜군이 6년반 동안이나 조선팔도를 침략하여

 

무고한 백성 수백만을 죽이거나 끌고 갔는데 조선 여자를 가만두었겠는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은 어떻고?

 

이름만 조철봉, 나카무라일 뿐 다 섞였다.

 

나카무라와 유전자가 같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욕조에 앉은 조철봉이 감회 젖은 표정으로 서유진을 본다.

 

문득 서유진의 조상이 떠올랐고 다시 민족 문제까지 연상이 되었던 것이다.

“왜요?”

하고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서유진이 물었다.

 

발가락 끝으로 조철봉의 허리를 살살 간질이는 중이다.

“너, 애인 있어?”

조철봉이 묻자 서유진은 대번에 대답했다.

“네, 있어요.”

“동포냐?”

“아뇨.”

간단하게 대답했던 서유진이 문득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저, 귀화했어요.”

“응, 그래?”

“제 애인은 일본 남자고요.”

“잘했다.”

“거부감 느끼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나?”

조철봉이 정색하고 머리를 젓고 나서 서유진의 다리 한쪽을 집어 발등에 입술을 붙였다.

 

가지런한 발가락이 예뻤고 발톱도 잘 다듬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케냐 국적이면 어때? 그걸 따지는 게 더 이상하지.”

조철봉이 문득 오바마를 떠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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