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37. 외유(2)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09

737. 외유(2)

 

(2055)외유-3

 

 

통역을 들은 나카무라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머리만 희미하게 끄덕이고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걸 읽고 나서 내 피에도 일본 사람 피가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한참 위쪽 할머니가 당해서 말입니다.”

이토가 열심히 통역을 했는데 그의 얼굴도 굳어져 있다.

 

술잔을 쥔 조철봉이 한 모금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또 일본이 조선을 36년간이나 지배했지요. 36년간이나 말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 나간 조선인이 또 수십만명 죽었다는건 다 아실 거고.”

이제는 이토나 나카무라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조철봉이 말한다.

“그렇게 해놓고 손바닥만 한 섬 독도를 내 것이라고 우겨대니 이거 원.”

혀를 찬 조철봉이 입맛까지 다셨다.

“조선 사람들은 당하기만 하고 살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자꾸 그러시면 곤란하죠. 누가 임진왜란 때 코 떼어간 배상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식민지 시절에 죽은 목숨값 내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난 독도 문제만 나오면 기어코 조선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일본 사람 심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습니다.”

이야기가 길었고 통역도 길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철봉도 열이 올랐으며 옮기고 들은

 

이토나 나카무라의 표정도 굳어져 있다.

 

이윽고 통역은 듣고 난 나카무라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한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조 의원님.”

“죄송합니다.”

해놓고 조철봉이 진지하게 묻는다.

“그, 독도가 일본에 그렇게 중요한 섬입니까?”

“중요하다기보다도 다케시마는.”

나카무라가 다케시마라고 발음하는 것을 들은 조철봉이 이토의 통역을 듣기도 전에

 

길게 숨을 뱉는다. 조철봉도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독도 문제를 명쾌하게 결론 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나카무라가 독도는 한국 영토가 맞다고 해준다면 당장에 역적으로 몰릴 것이었다.

 

국익을 위해서는 증거나 역사 조작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든지 전쟁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국과 국민의 영웅이 된다.

 

타민족과 타국인의 행복을 위해 제 조국과 민족을 버리는 놈은 미친놈뿐이다.

그때 나카무라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영토 문제는 가장 미묘합니다.

 

아주 민감한 문제여서 잘못 처리하면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서로 오해가 일어납니다.”

이토가 차분하게 통역했고 나카무라의 목소리는 더 신중해졌다.

“조 의원님 말씀대로 양국관계가 악화되지 않는 범위에서

 

서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입니다.”

맞는 말이었고 이런 말을 들은 한국 측 인사들은 동의했을 것이었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앞에 앉은 나카무라를 보았다.

 

나카무라가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의 시선을 받는다.

 

인간관계가 그렇다. 신세를 진 사람한테는 모진 말을 못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적이다.

 

신세를 져놓고 뒷머리를 친다면 그놈은 소문이 나서 매장당하게 될 것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나카무라 의원님 한번 나서 보시죠.”

이토가 주섬주섬 통역했을 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임진왜란에 대한 보상으로 독도를 아예 포기하자고 말입니다. 안 될까요?”

안 될까요? 라고 물은 것은 물론 나카무라가 받을 충격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있다.

 

아마 이런 말은 처음 들었을 테니까.


 

 

(2056)외유-4

 

 

 

“앗하하하.”

그때 통역을 들은 나카무라가 호탕하게 웃었으므로 조철봉도 따라 웃었다.

 

그러자 최갑중도 웃고 마지막으로 이토도 웃었다.

 

넷이 한바탕 웃고 나니까 모두 개운한 표정이 되었다.

“자, 여자를 부릅시다.”

나카무라가 호기있게 말하는 모습이 마치 진주만 침공을 결정한 일본 장군처럼

 

조철봉에게는 보여졌다.

 

물론 그 장군 이름이 무엇인지는 조철봉이 알 리가 없다.

 

어쨌든 나카무라는 노련했다.

 

벨을 눌러 나타난 마담을 향해 짧게 지시한 나카무라가 조철봉을 은근한 시선으로 본다.

“조의원님, 북한 고위층하고 인맥이 돈독하다고 들었습니다.”

차분한 표정이 된 나카무라가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려 말을 잇는다.

“그 인맥을 이용해서 만남을 주선해 주시지요. 내가 그 신세를 잊지 않을 테니까요.”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나카무라의 시선을 받고 천천히 머리를 끄덕인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주면 받는 법칙이 통용된다.

 

받은 것이 없는데도 주기만 한다거나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다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카무라의 호의는 조철봉이 내놓을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좋습니다. 누구를 소개시켜 드릴까요?”

조철봉이 묻자 나카무라가 목소리를 낮췄다.

“국방위원장.”

“외유 끝나고 나서 추진해보겠지만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넣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나카무라가 환하게 펴진 얼굴로 말했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여자 넷이 들어왔다.

 

모두 양장 차림이다. 주인 마담은 따라오지 않았는데 넷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더니 손님 옆에 앉는다.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망설이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조철봉의 옆에는 머리를 어깨 위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앉았는데 부드러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유진입니다.”

목소리도 밝다.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반갑다. 재일교포라면서?”

“네, 할아버지 고향이 전라도 정읍입니다.”

여자가 맑은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불빛을 받은 눈동자가 반짝였고 그 순간 조철봉의 식도가 좁혀지는 느낌이 왔다.

 

스물대여섯 되었을까?

 

과연 이놈은 얼마나 섹스를 좋아할까?

 

그때 나카무라가 말했고 이토가 통역했다.

“조의원님, 나카무라 의원님께서 교외의 별장을 빌려주시겠답니다.

 

빌라인데 비어 있으니까 그분하고 거기 가시는 것이 낫겠다고 하시는데요.”

“아아.”

감동한 조철봉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외국에 나갔을 때도 체면을 차려야 될 것이다.

 

호텔방에 여자를 데리고 갔다가 사진이나 찍히면 되겠는가?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이토에게 말한 조철봉이 힐끗 최갑중과 파트너를 훑어보았다.

“넌 그냥 호텔방으로 가도 되겠다.

 

사진 찍혀도 니 마누라한테만 당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최갑중이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을 때 서유진이 큭큭 웃는다.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서유진을 보았다.

 

이왕이면 일본여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오늘만 날인가?

 

기회가 또 있을 것이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39. 외유(4)  (0) 2014.10.09
738. 외유(3)  (0) 2014.10.09
736. 외유(1)  (0) 2014.10.09
735. 외도(11)  (0) 2014.10.09
734. 외도(10)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