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35. 외도(11)

오늘의 쉼터 2014. 10. 9. 10:03

735. 외도(11)

 

(2051)외도-21

 

 

“안녕하세요.”

이성문의 와이프가 일어서서 인사를 한 순간 조철봉은 호흡을 조정했다.

 

40대 초반, 단정한 용모, 몸매도 날씬하다.

 

똑바로 조철봉을 응시하는 두 눈도 맑다.

 

이만하면 이성문 이상 가는 남자를 만날 자격이 충분한 여자였다.

“반갑습니다.”

머리를 숙여보이면서 그렇게 인사를 했지만 뱉고 나니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마주보고 앉았을 때 조철봉이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손을 들어 되었다는 신호를 하고 돌려보냈다.

 

둘은 이미 커피잔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조철봉이 먼저 앞에 앉은 이성문을 보았다. 꺼칠하다.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고 입을 조금 벌렸다가 닫는다.

 

물에 빠져서 익사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지금 놈은 짚이든 실이든 물에 떠있는 건 다 잡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뱀을 잡도록 해주마,

 

그것도 독사를. 조철봉은 입을 열기 전에 옆에 앉은 이성문의 와이프를 다시 보았다.

 

여자는 시선을 약간 비스듬히 돌려 조철봉의 왼쪽 어깨를 보는 중이다.

 

 차가운 표정, 네가 무슨 개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너희들이야 다 한통속. 소원이라니 마지막으로 들어주기는 하겠다라고

 

얼굴에 역력히 쓰여 있다.

 

조철봉이 입을 연다.

“저놈이 제수씨를 사랑하는지 어쩐지 전 모르고 지금 그걸 이야기할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둘은 가만 있었지만 이성문의 초조한 기색이 약간 심해졌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뭣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내가 저놈한테 들어서 압니다.

 

저놈이 밤일을 못한다면서요?”

여자의 시선이 조금 더 옆쪽으로 비껴졌고 어디서 덜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를 기울여 보니까 이성문이 발끝을 떨고 있다.

 

그것이 탁자에 부딪쳐 그 소리가 난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말을 듣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지 아십니까?

 

죄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구먼요.

 

저놈이 밖에 나가서는 딴 여자하고 그짓을 할 때는 선수처럼 뛰거든요.”

“어? 어?”

하고 이성문의 비명, 그러나 말은 뱉지 못한다.

 

여자가 시선을 돌려 조철봉을 보았는데 눈동자의 초점이 딱 잡혔다.

 

그러나 아직은 표정이 없다.

 

조철봉이 마치 국정연설을 하는 대통령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저놈이 밖에 나가서는 잘 섭니다.

 

며칠 전에도 나무막대기처럼 세워서는 제 파트너를 기절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기 와이프하고는 안 되는 겁니다.”

“야. 야.”

했지만 이성문은 이미 기운을 잃었다.

 

다리를 떨지도 않고 출입구 쪽을 기웃거리는 것이 도망갈 것 같다.

 

조철봉이 똑바로 여자를 보았다.

“하루에 세 여자하고도 했답니다.

 

와이프하고는 안 서니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요.

 

저런 놈이 진짜 미친 놈이죠.”

그러고는 조철봉이 혼자 머리를 끄덕였다.

 

 “잘 하신 겁니다. 헤어지셔야죠.

 

세상에 어떤 여자가 그것도 안 되는 놈하고 산단 말입니까?

 

더구나 밖에서는 하루에도 세 명씩이나….”

“그만요.”

갑자기 여자가 입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은 말을 멈춘다.

 

이성문은 이제 외면한 채 얼굴을 보이지도 않는다.

 

여자가 눈을 치켜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그러더니 일어서며 이성문에게 말한다.

“갑시다, 여보. 더러워서 오래 못 있겠어요.”

 

 

 

 

(2052)외도-22

 

 

 

다음날 오전 10시쯤에 조철봉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오른다.

 

공항으로 떠나는 것이다. 차에는 앞자리에 최갑중, 뒷자리에 조철봉과 김경문이 나란히 탔다.

 

의원이 되고 나서 첫 장기 외유였지만 조철봉의 심사는 평온했다.

 

오랜만에 압박감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도 느껴지는 터라 얼굴에는 생기까지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최갑중은 한술 더 떴다.

 

골프 여행을 떠나는 놈처럼 알록달록한 셔츠에 골프바지에다 캐주얼화를 신었다.

 

정장 차림으로 나온 조철봉을 보고 나서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잠그긴 했지만

 

여전히 들뜬 얼굴이다.

 

차가 출발했을 때 김경문이 말한다.

“제가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의원님의 이번 외유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만요.”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에게 김경문의 말이 이어졌다.

“너무 튀니까 적이 많아진 느낌이 듭니다.

 

대놓고 말하진 못해도 보좌관들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런 거 겁나는 건 아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수양이 필요해.”

하마터면 수양 대신에 원기충전 따위의 단어를 쓸 뻔했으므로 조철봉은 헛기침을 했다.

 

또한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밀고 나갔던 대북관계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이성미의 제안도 있었지만 조철봉에게는 사업가적인 육감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

 

그 육감이 이성미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내가 일본에만 있지는 않을 거야.”

창밖을 내다보면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일본에서 열흘쯤 있다가 미국, 유럽까지 돌아보고 올 테니까.”

“아아, 예.”

김경문이 정색한 얼굴로 끄덕였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계획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미리 손을 써 놓겠습니다.”

“뭐, 화상통신 시대니까.”

“여기 염려하실 건 없습니다.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의원님.”

“김 보좌관만 믿어.”

그때 바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낸 조철봉은 이성문의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오후에 제 마누라하고 마지막으로 찾아왔다가 곤욕을 치르고 나갔으니

 

아마 지금쯤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러 나왔을 것이다.

 

발신자 번호를 잠깐 내려다보던 조철봉이 결심한 얼굴로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 너냐?”

하고 조철봉이 미리 방패를 내밀 듯이 딱딱한 목소리로 묻는다.

 

웃고 나섰다가 불의의 대접을 받고 무안해진 경험을 쌓다보면 이렇게 된다.

 

그때 이성문이 말했다.

 

소리치는 것처럼 목소리가 크다.

“얀마, 고맙다.”

“그렇게 비꼴 건 없고.”

힐끗 옆쪽에 시선을 준 조철봉이 핸드폰을 귀에 딱 붙였다.

“끝날 땐 확실하게 하는 거야. 인마.”

“근데 나 어저께 됐어.”

“어저께 도장 찍었단 말이냐?”

“확실하게, 두 방.”

무슨 말인지 아리송해진 조철봉이 이맛살을 찌푸렸을 때

 

이성문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이어졌다.

“어저께 마누라가 바로 집에 들어가자고 하더니 글쎄,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바지를 벗기더란 말이다.

 

그랬더니 이놈이 벌떡 서지 않겠어?

 

그래서 두 방이나 쐈단 말야. 이 자식아, 넌 내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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