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 중개인 (10)
(1979)중개인-19
“아니.”
하면서 조철봉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은 옆으로 다가온 여자가 유하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인이다.
조물주는 위대하시다.
수백만명의 미인을 모두 다른 모습으로 내놓으시다니.
그때 조철봉의 표정을 본 한양의 대표 박영복이 말한다.
“재영이는 할아버지가 6·25때 납북 당하셨다네요.
그래서 조 의원님이 오신다니까 꼭 만나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어허.”
하고 대통령실장 유세진이 먼저 감탄한다.
눈을 가늘게 뜬 유세진이 아직도 조철봉 옆에 서있는 아가씨를 보았다.
“부럽군. 조 의원님 인기가 이렇게 높을 줄 몰랐습니다.”
이미 이야기는 끝낸 터라 유세진과 김광준의 표정은 밝다.
아가씨들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김광준이 조철봉에게 슬쩍 묻는다.
“내일 그 사건이 터질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그쪽은 다른 언급이 없던가요?”
그 사건이란 안유철에 대한 일을 말한다.
사건이 터진다는 것은 언론에 보도된다는 뜻이다.
김광준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통전부장한테 실적을 달라고 요구했다는군요.
열심히 일했으니까 보상 차원에서 말이죠.”
“으음.”
긴장한 김광준을 향해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위원장은 그런 인간이 친미 보수보다 더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베트남처럼 가장 먼저 제거될 인간들이라고요.”
“으으음.”
다시 신음을 뱉은 김광준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렸으므로 유세진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활기 띤 목소리로 말한다.
“자아, 자. 오랜만에 아가씨들이 따라주는 술 마셔보자꾸나. 정말 오랜만이다.”
그때 조철봉의 옆에 앉은 아가씨가 잔에 술을 채워주며 인사를 했다.
“서재영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서재영을 똑바로 보았다.
서재영의 검은 눈동자도 이쪽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다. 눈썹도, 콧날도, 입술도 엷고 눈도 가는 편이다.
계란형 얼굴에 살집도 별로 없다. 목 밑으로는 한복에 가려 윤곽을 볼 수 없었지만
얼굴과 연장선상인 몸도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다.
그때 서재영이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으므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요염하다. 정색한 얼굴은 요조숙녀 같더니만 웃는 순간에 화사해졌다.
눈이 더 가늘어졌고 엷은 입술은 깨끗하게 치켜 올라간다.
“으음.”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은 조철봉은 침을 삼켰다.
식도가 좁혀지는 느낌이 오면서 갑자기 재채기까지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철봉이 은근한 표정으로 묻는다.
“할아버지가 납북되셨다고?”
“네. 아버지가 할머니 배 속에 계실 때요.”
서재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유세진과 김광준은 각각 파트너하고 떠들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얼핏 들어도 대화는 겉돌았다.
이것 물었다가 금방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둘다 조철봉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오늘은 조철봉이 주빈이다. 그때 서재영이 열심히 말을 잇는다.
“어제 평양에서 우리 대표단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하고 할머니는 펑펑 우셨어요.”
(1980)중개인-20
술좌석이 끝났을 때는 10시 반쯤이었으니 적당한 시간이었다.
“자아, 그럼 저는 먼저.”
하고 유세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광준과 조철봉을 번갈아 본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김광준이 따라 일어서며 말하자 한양 대표 박영복이 유세진을 배웅하려고 먼저 나간다.
방 안에는 김광준과 조철봉이 남았다.
“제가 다시 연락 드리지요.”
하고 김광준이 정색한 표정으로 말한다.
“조 의원님은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 조심해야지요. 특히.”
잠깐 말을 그치고 옆에 선 서재영에게 시선을 주었을 때 김광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여기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정말입니까?”
“초대소보다 더 안전합니다.”
그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동시에 같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김광준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광준이 파트너 팔을 잡더니 말한다.
“그럼 저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아, 예.”
엉겁결에 대답한 조철봉을 놔두고 김광준이 파트너와 함께 방을 나간다.
그러자 방 안에는 조철봉과 서재영 둘이 남았다.
“별관으로 안내해드릴게요.”
하고 서재영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하마터면 네가 별관을 알아? 할 뻔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서재영이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팔을 잡는다.
“쉬고 가실 거죠?”
“쉬다니?”
“아이, 참.”
하면서 서재영이 조철봉의 한쪽 팔을 두 팔로 감아 안는다.
“가세요.”
누가 마다하겠는가?
본관 밀실에서 별관까지 비밀 통로가 나 있었는데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내려가
지하도를 30미터쯤 직진하자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별관이다.
별관 2층의 방에 들어섰을 때 서재영이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여기 처음 아니시죠?”
“그건 왜 물어?”
“전 처음이라 그래요. 아까 별관 위치를 전해 들었는데 겁이 나서 혼났어요.”
“왜 겁이 나?”
저고리를 벗어 건네주며 묻자 서재영은 수줍게 웃는다.
“여긴 VIP용이거든요.”
“그럼 넌 VIP를 한번도 모셔보지 못했단 말이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거든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셔츠를 벗은 조철봉이 몸을 돌려 서재영을 똑바로 보았다.
“싫으면 그만둬도 돼. 그래도 내가 대가는 줄 테니까.”
“네?”
얼굴을 굳힌 서재영이 조철봉을 마주 보았다.
눈을 크게 뜨고 있어서 눈동자가 반짝인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섹스 말이야.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대신 이야기나 하다가 가자.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져서 그런다.”
그러고는 바지를 벗어던진 조철봉이 욕실로 다가가면서 말한다.
“그렇지만 네가 싫다는 뜻이 아니야.
너같이 섹시한 애는 처음 보았지만 억지로 하기가 갑자기 싫어져서 그래.”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조철봉은 문득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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