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 중개인 (6)
(1971)중개인-11
“자, 이제는 좀 놀지.”
하고 위원장이 말했을 때였다.
어떤 장치가 되었는지 바로 옆쪽 벽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또 다른 방이 드러났다.
100평쯤 되는 방 중앙에 원탁이 놓였고 이미 술과 안주가 차려져 있다.
그리고 원탁 옆에 한복 차림의 여자 여섯이 웃음 띤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위원장이 일어나 그쪽으로 옮아가자 모두 잠자코 따른다.
이번에는 원탁에 의자가 6쌍이다.
모두 자리잡고 앉았을 때 위원장이 조철봉에게 말한다.
“오늘 실컷 놀아봐.”
“예, 위원장님.”
이제는 어떤 짓을 하라고 해도 할 것이다.
조철봉이 각오를 다진 것과는 반대로 위원장이 노인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진지했다.
조철봉은 마주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노인 하나는 위원장 옆으로까지 다가가 귀를 기울여 듣고는 돌아왔다.
간간히 핵, 미국, 식량 소리가 들렸지만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저기요.”
하고 옆자리의 여자가 입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은 깜짝 놀랐다.
옆자리 여자가 말을 건 것이다.
얼굴은 힐끗 보았지만 똑바로 주시하지 않아서 그저 둥근 윤곽만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미인이다.
그러나 분위기 때문인지 전혀 감동을 받지 않았다.
위원장한테서 엄청난 감동을 연타석으로 받은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여자를 보았다.
여자와 50센티쯤의 간격을 두고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조철봉은 여자의 검은 눈동자에 박힌 제 얼굴을 본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위원장 동지께서 피곤하시면 언제든지 일어나 가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앵두같이 붉고 탐스러운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지만 조철봉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위원장은 이제 좌우의 노인들에게 손을 흔들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가끔 낮게 웃음소리도 들렸다.
조철봉의 표정을 본 여자가 말을 잇는다.
“차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하고 모란봉 초대소에 들러 오늘밤에 주무시고 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명명백백히 다 알아들었지만 조철봉은 여자에게 시선을 준 채 아직 입을 열지 않는다.
여자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래서 마치 남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 것도 조철봉의 반응이 늦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때 여자가 다시 말했다.
“제가 싫으시면 초대소에 다른 여자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고르셔도 됩니다. 선생님.”
“그럴 수가.”
마침내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이제 위원장의 의도는 알겠다.
할 말은 다 했으니 옆에 앉은 파트너하고 떠나라는 말씀인 것이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위원장을 보았지만 시선이 오지 않았다.
다른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한명도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다시 한번 긴 숨을 뱉은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원장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그러자 옆쪽 노인과 이야기를 하던 위원장이 어느새 알아채고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인사를 받는다.
그러고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으므로 조철봉은 몸을 돌렸다.
여자가 옆에 바짝 붙어 따른다. 키도 크고 소리 없이 걷는 모습이 마치 미끄러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얼굴 옆모습의 선도 곱다.
이쪽은 통통한 용모를 미인으로 친다던데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선이 가늘다.
조철봉의 가슴이 슬슬 뛰었다.
(1972)중개인-12
모란봉 초대소, 말로만 듣던 곳이었지만 조철봉은
초대소 규모나 시설을 감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밤이기도 했지만 뻥 뚫린 시내 차도를 맹렬하게 달려 10분도 안 되었을 때
초대소에 도착한 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10미터도 걷지 않고 건물 안으로 안내되었기 때문이다.
방 안으로 들어와 섰을 때에야 제정신이 났고 눈에 초점이 잡혔다.
초대소 방은 아파트 식이었는데 평수로 치면 70평쯤은 되었다.
온돌방 하나에 침실 하나, 거기에 거실이 넓었고 주방은 없었지만
식탁이 놓여있으며 욕실은 컸다.
특급호텔 특실보다 더 잘 정돈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방이었다.
차 타고 오면서 여자는 제 소개를 했다.
오민주, 24세, 평양이 고향이며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는 것이다.
직업은 통역관, 창광거리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북한 상류층 아가씨다.
“목욕하세요.”
하고 오민주가 다가와 저고리를 벗겨 주었으므로 조철봉은 벽시계를 보았다.
밤 10시반, 아직 이른 시간이다.
“민주씨는 여기 자주 와봤어?”
저고리를 벗은 조철봉이 넥타이를 풀면서 물었다.
“아뇨, 여기 처음입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 넥타이를 받아든 오민주가 앞에 서서 기다렸다.
“나야 이런 경우가 많은데다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민주씨는 괴롭겠다.”
셔츠를 벗어 넘겨준 조철봉이 바지 혁대를 풀면서 말했다.
“괴롭긴요? 보람 있는 일인데요.”
여전히 오민주가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보람 있다니? 뭐가?”
바지를 건네준 조철봉이 오민주 앞에 정면으로 섰다.
이제는 팬티에 양말만 신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오민주가 대답했다.
“조국을 위한 일이니까요.”
“진심이야?”
“그럼요.”
“조국을 위해 내 몸을 희생한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양말을 벗어 던지고 몸을 돌렸다.
욕실 문을 열자 다섯명이 들어가도 될 만한 장방형 욕조가 놓여있고 물은 이미 가득차 있었다.
팬티를 벗어 던진 조철봉은 거침없이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물 온도는 적당했다.
약간 뜨거운 온도를 좋아하는 조철봉에게 딱 맞았다.
머리만 내놓고 몸을 담근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제 긴장감은 풀렸다. 슬슬 오민주에 대한 색욕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누가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오민주가 들어섰으므로 조철봉은 숨을 멈췄다.
오민주는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젖가슴을 아기 손바닥만한 천으로 가렸기 때문에 젖꼭지만 보이지 않을 뿐
나머지는 통째로 드러났다.
그리고 팬티도 겨우 골짜기만 덮었을 뿐 끈으로 묶어졌다.
한국에서도 이런 비키니 스타일은 구경하지 못했던 터라
조철봉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저도 들어가도 돼요?”
다가온 오민주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다.
말을 했다가는 재채기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욕조 안으로 들어온 오민주가 조철봉 옆에 나란히 앉더니 가늘게 숨을 뱉었다.
“아, 좋아.”
오민주는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 올려서 목이 길게 드러났다.
시선이 마주치자 오민주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순간 조철봉은 식도가 좁혀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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