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92. 중개인 (4)

오늘의 쉼터 2014. 10. 8. 13:29

692. 중개인 (4)

 

(1967)중개인-7

 

 

 “무, 무슨 말씀을.”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안유철이 더듬거렸다.

 

한 손을 뭔가 잡으려는 듯 휘저으며 안유철이 말한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도대체.”

“우린 그 증거가 다 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 김동남의 시선이 이제는 안상호에게로 옮겨졌다.

 

안상호의 얼굴도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있다.

 

이건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북측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안유철의 간첩 행위를 이 자리에서 폭로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안상호가 김동남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다.

 

김동남이 지금 말을 꾸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일 것이다.

 

그때 김동남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예. 그러시죠.”

안상호가 엉겁결에 대답했고 이번에는 안유철이 입만 딱 벌린 채 나서지 않는다.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김동남이 말을 잇는다.

“출국자와 군 귀순자 현황은 내일 회의때 보시기로 하지요.”

“아, 추, 출국자와 귀, 귀순자 현황을 말씀입니까?”

반색을 한 안상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얼굴이 붉어졌으며 두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북측은 이미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예. 내일 협의를 하도록 하십시다.”

김동남이 말했을 때 안상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기자단에 발표해도 되겠습니까?”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발표하면 한국은 난리가 날 것이다.

 

탈북자, 국군포로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들에게 출국자나 군 귀순자 따위의 호칭은 아무것도 아니다.

 

북한측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현황을 파악하여 협상에 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그 발표를 하는 안상호는 당장에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백발백중 당선될 것이

 

분명했다.

 

이 페이스로 나가면 차기 한국당 대선 후보까지 될지 모른다.

 

김동남이 안상호의 간절한 시선을 받더니 빙긋 웃는다.

 

그러더니 시선이 아직도 굳어진 채 풀리지 않는 안유철의 얼굴로 옮겨졌다.

“안유철 의원이 우리측 공작원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았다는 내용은 발표 안 하셔도 됩니다.”

“아앗.”

먼저 안상호의 놀란 듯한 외침이 울렸다.

그러더니 안상호가 열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알겠습니다. 그건 발표 안 할 겁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안유철이 이번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섰지만 김동남의 시선을 받더니

 

얼어붙었다.

 

김동남이 차분한 표정으로 안유철을 응시한 채 말했다.

“북남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겁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북측 공작원을 남측 대표단 일원으로 마주보며 협상을

 

진행해야만 되겠습니까?”

“그, 그러믄요.”

마침내 안상호가 동조했고 안유철은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어금니를 문 듯 볼의 근육이 단단해져 있었다.

 

그러고는 곧 회의가 끝났으므로 조철봉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맨 뒤에 회의장을 나왔다.

그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통전부장 양성택이 다가와 섰다.

 

웃음띤 얼굴이다.

양성택이 조철봉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말했다.

“놀라셨지요?

 

이쨌든 오늘밤 8시에 방으로 모시러 갈 테니까 기다리고 계시라우요.” 

 

 

 

 

(1968)중개인-8

 

 

호텔방으로 돌아온 조철봉은 최갑중과 김경준을 불러 회의 중에 일어난 사건을

 

말해주었다. 물론 안유철 사건이다. 그러자 최갑중이 대뜸 말한다.

“그거, 시범케이스로 당한 겁니다.”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보더니 최갑중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 나서 말을 잇는다.

“다른 놈들한테 시범을 보이는 거죠.”

그제야 알아들은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생각은 들었다.”

그러자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안유철의 이용가치가 떨어졌거나 제거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어쨌든 그 사건으로 코가 꿰어있는 놈들은 잔뜩 긴장하게 되겠습니다.”

그때 최갑중이 묻는다.

“안 대표가 기자회견을 한다는데요. 의원님은 참석하지 않으십니까?”

“난 없어도 돼.”

“생색내는 자립니다.

 

납북자, 국군포로 현황을 북한 측이 내일 통보해주기로 했다는 것만 해도

 

이번 방문단은 엄청난 성과를 올린 겁니다.

 

그 주역이신 분이 방문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불참하시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이 친구가 보좌관이 되더니 말이 길어졌구먼.”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김경준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나, 오늘 오후 8시에 누가 데리러 올 거야.”

“그러면.”

김경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위원장님이.”

“통전부장이 슬쩍 말해주더군.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야.”

“의원님 혼자 말씀입니까?”

“그런 것 같아.”

“잘됐습니다.”

김경준이 제 일처럼 좋아하더니 문득 생각난 듯이 정색하고 말한다.

“아마 위원장은 의원님께 이번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의 대가를 말해주실지 모릅니다.”

“괜히 술 마시자고 부른 건 아닐 거야.”

조철봉도 굳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다.

“나 같은 놈을 내세우는 이유도 차츰 드러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날 저녁 7시45분이 되었을 때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철봉은

 

통전부 직원의 안내를 받고 호텔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벤츠에 올랐다.

 

라운지에서는 마침 안상호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어서 이번에 방북한 의원이

 

모두 개선장군 같은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는데 조철봉만 빠졌다.

 

물론 다 개선장군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방문단 부대표 안유철은 초점 없는 시선으로 TV를 바라본 채 가만있었는데

 

항상 TV 카메라만 오면 가만있다가도 말하는 시늉으로 입을 벙긋거리고

 

손을 까불던 위인이어서 이상하긴 했다.

 

그러나 안상호의 회담 중간보고를 듣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수천만 시청자들은

 

안유철의 심각한 표정 따위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안상호의 발표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명칭을 출국자와 군귀순자로 바꾸었지만

 

그 현황을 내일 회담 때 제출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획기적이었고 회담은 대성공이다.

 

벤츠 안에서는 통전부장 양성택이 앉아있었는데 차가 출발했을 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안유철은 제가 통일사업에 큰일을 한 것처럼 행세하고 건방져졌어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양성택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저런 동무가 오히려 더 골치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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