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93. 중개인 (5)

오늘의 쉼터 2014. 10. 8. 13:29

693. 중개인 (5)

 

 

(1969)중개인-9

 

 

“오, 어서와.”

연회실의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위원장이 조철봉을 맞는다.

 

테이블에는 몇 시간 전에 북측 대표로 회담을 했던 김동남과 다른 두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조철봉과 양성택이 앉자 모두 6명이 되었다.

 

원탁 위에는 이미 저녁식사가 차려졌으므로 젓가락만 들면 되었다.

 

위원장은 벌써 한잔 마셨는지 눈 주위가 붉었다.

“이봐, 조 의원, 든든히 먹어 두라구.”

하고 위원장이 말하면서 웃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만 숙여 보였다.

 

주위에 둘러앉은 인사들도 모두 묵묵히 식사를 한다.

 

밥에 나물국, 생선구이와 양념 불고기가 놓인 한정식상이었는데 조철봉의 입맛에 딱 맞았다.

 

한상에 5천원짜리 전주 한정식상이 가짓수는 더 많았을 것이다.

 

조철봉이 밥 한그릇을 깨끗이 비웠을 때 위원장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이봐, 술은 한국산 소주로 할까?”

“예, 위원장님.”

조철봉의 대답을 들은 위원장이 빙긋 웃었다.

 

위원장이 벨을 눌렀을 때 한복 차림의 여종업원들이 소주병을 들고 들어 오더니

 

각자의 잔에 술을 채운다.

“자, 북남 화합을 위하여.”

위원장이 소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고 모두 ‘위하여’를 외쳤다.

 

노인들이었지만 목소리가 우렁찼다.

 

한입에 소주를 삼킨 위원장이 잔을 내려놓더니 조철봉을 지그시 보았다.

 

방 안은 다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 의원, 북남의원협의회도 조직되었고 이제 출국자와 군 귀순자도 본인이 원한다면

 

남한으로 송환시킬 작정이야.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이산가족도 내려 보낼 테니까 조 의원이 그 일도 주선해보라구.”

“이, 이산가족을 말, 말씀입니까?”

놀란 조철봉이 말까지 더듬었다.

 

납북자 국군포로에 이어서 이산가족까지 남쪽으로 보내준다면 남한은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다.

 

이산가족만 해도 수십만이다.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난 분이 많다고 하지만 남한에는 아직도 네 집 걸러 한 집꼴로

 

북쪽에 친인척이 있는 것이다.

 

조철봉의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했다.

 

이렇게 되면 절반은 통일된 것이나 같다.

 

그 역사적 과업을 내가 선두에 서서 해내는 것이다.

 

그때 위원장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왜 그렇게 겁이 난 얼굴이 되었나?”

“저, 저기.”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조철봉이 기를 쓰고 말한다.

“저 같은 놈한테 이런 큰일을 맡겨 주시는 것이 저는, 좀.”

“그럼 누구, 다른 사람 있나?”

“아, 아니, 그것보다도, 위원장님.”

“조 의원도 비례대표 34번, 꼴찌지?”

“예에? 예. 그, 그렇습니다.”

“겨우 국회의원 배지를 붙이고 나서 괄시를 많이 받았지?”

“예? 예.”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목이 메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숙였다.

 

그 수모는 말도 못한다.

 

남북한 의원 교류를 얼떨결에 뱉었다가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던가?

 

민족당에서도 병신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위원장이 말한다.

“조 의원이 북남의원 교류를 제외한 것이 내 의중하고 딱 맞았던 것이 그 첫째 이유고.”

다시 술잔을 든 위원장이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맨 꼴찌 의원을 내세워 대업을 이끄는 것이 동무뿐만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지.” 

 

 

 

 

(1970)중개인-10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이 가늘게 숨을 뱉었다.
 
어느 누구한테 이 대업을 맡겨도 상관없을 터였다.
 
어차피 핸들을 쥔 쪽은 북한이다.
 
시킨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대학생 하나를 골라 내세워도 되는 일이다.
 
그때 한모금에 소주를 삼킨 위원장이 다시 묻는다.

“오늘 회담할 때 안유철이 당하는 꼴을 보았지?”

“예? 예.”

다시 긴장한 조철봉을 향해 위원장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놈이 은밀하게 통전부장한테 저한테 실적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거야.
 
북조선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 보상을 해달라고 말이지.”

조철봉은 눈만 치켜떴고 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인간은 친미 보수 세력보다도 더 쓰레기야.
 
이중 쓰레기지. 난 차라리 보수 꼴통이 그런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해.”

“아아, 예.”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제거될 인간들이지. 베트남하고 같은 경우가 될 거야.”

“…….”

“그건 그렇고.”

술잔을 쥔 위원장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주위의 노인들은 긴장한 채 숨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조 의원은 북남의원협의회 부총무에다 출국자,
 
군귀순자 송환협의회 부총무도 맡고 있지?”

“예, 위원장님.”

“내일 우리측 대표가 조 의원을 북남 이산가족귀향협의회의 한국측 대표로 추천하고
 
성명 발표를 할 거야. 그건 한국 대통령도 말릴 수가 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예에? 예, 위원장님.”

다시 목이 메인 조철봉이 머리를 숙였을 때 위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출국자와 군 귀순자 명단을 내일 발표하겠지만 송환에 대해서는 언급 안할 거야.
 
그러니까 남한 의원들은 내일 회담 끝나고 다 돌아가 줘야겠어.”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위원장이 빙긋 웃는다.

“조 의원은 여기 남아. 이산가족 협의를 한다는 명분으로 말야.”

“예, 위원장님.”

“그랬다가 사흘쯤 후에 출국자, 군 귀순자를 모두 데리고 돌아가는 거야.
 
그럼 영웅이 될 거야.”

“위원장님.”

“내가 그 장면을 TV로 볼 테니까 의젓하게 연출해야 돼.”

“예에. 위원장님.”

“이산가족귀향협의회의 남한측 국회의원은 50명 정도가 적당할 거야.
 
사회 유명인사 100명쯤하고 150명으로 구성하도록 해.”

“예, 위원장님.”

“우리도 그 정도 인원으로 구성할 테니까.
 
우리측 위원장은 김동남 동무가 맡게 되었어.”

그러자 김동남이 앉은 채로 조철봉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인다.
 
답례를 한 조철봉이 위원장에게 묻는다.

“이산가족 귀향은 언제쯤 성사가 되겠습니까?”

“그것도 극적 장면을 연출해 보자구.”

위원장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본다.

“북남 화해가 목적이니까 말야. 난 남한 인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거야.”

“아아, 예.”

“나는 이것으로 남한 인민들에게 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지금까지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싶단 말이지.”

조철봉은 숨을 들이켰다.
 
역사적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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