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91. 중개인 (3)

오늘의 쉼터 2014. 10. 8. 13:28

691. 중개인 (3)

 

(1965)중개인-5

 

 

평양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반이다.

 

차로 개성을 거쳐 평양까지 직행했는데

 

조철봉에게는 마치 서울에서 전주쯤 차로 달려간 것 같았다.

 

의원단을 태운 차량이 고려호텔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통전부장 양성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의원들을 양성택이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어서 오십시오.”

양성택이 먼저 한국측 의원대표 안상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차례로 악수를 나눈다.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여야 의원은 모두 7명, 그중 중량급 의원이 6명이었고

 

초선은 조철봉 하나뿐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이번 의원단의 간사를 맡았으니 대표 안상호 다음의 서열이다.

 

박수를 하던 양성택이 맨 끝에 서있는 조철봉 앞으로 다가서더니 히죽 웃었다.

“겸손하십니다, 그려.”

“제가 간사지만 초선입니다. 당연하죠.”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을 때 양성택이 바짝 다가섰다.

“오늘 오후에 회의 끝내고 모시러 갈 겁니다.”

옆에 서 있던 민족당 원내총무 안유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양성택은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준비하고 계시라우요.”

“누가 같이 갑니까?”

조철봉이 묻자 양성택이 다시 히죽 웃었다.

“조 의원 혼자십니다.”

그때는 의원대표 안상호도 다가서 있었으므로 다 들었다.

 

그러나 노련한 안상호는 빙긋 웃기만 했다.

 

호텔방에 짐을 내려놓은 조철봉은 보좌관 최갑중과 김경준을 불러 마주보고 앉았다.

 

남북한 의원 회담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므로 1시간쯤 시간이 있다.

“오늘밤에 위원장이 나를 초대했어.”

조철봉이 둘을 차례로 훑어보면서 말을 잇는다.

“의원들이 다 듣는 데서 양 부장이 말했는데 점점 부담이 된다.”

“뭐가 말입니까?”

최갑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묻는다.

“의원님을 신임하시니까 그렇죠.

 

이번 회담도 의원님 때문에 성사된 것 아닙니까?

 

혼자 부르시는 건 당연합니다.”

“이 병신은.”

했다가 조철봉이 헛기침을 하고 김경준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김 보좌관, 위원장이 나한테 뭘 바라고 있는 걸까?

 

차차기 대통령이네 그런 구름잡는 이야기는 하지말고 말해봐.”

“저는.”

입안의 침을 삼킨 김경준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본다.

“오늘 뭔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냥 만만하니까 의원님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나한테 어떤 이용가치가 있을까?”

“저희들도 모르는 가치를 위원장님이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설마 그럴라구.”

“위원장님 입장에서는 우리하고 다를지 모릅니다. 의원님.”

“어쨌건.”

하고 최갑중이 다시 나섰다.

 

조금 전에 욕을 얻어먹었어도 최갑중은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나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힐끗 눈치를 살핀 최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번에 다음에는 뭐, 그거, 좋은 일을 만들 거라고 하셨다면서요?”

여자 문제다.

 

조철봉이 다시 눈을 치켜떴지만 최갑중은 얼른 외면했고 김경준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 다음에는 여자하고 꼭 자라고 위원장이 말했었다.

 

 

 

 

(1966)중개인-6

 

 

 

회의는 주석궁의 소회의실에서 열렸는데 북측 대표는 노동당 상임위 부위원장

 

김동남이었고 차석이 통전부장 양성택이었다.

 

한국 측과 비교해서 서열이 높았기 때문에 안상호는 긴장했다.

 

김동남은 북한 권력 서열로 4위인 인물인 것이다.

 

안상호를 북한식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한국에서 10위권이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아서 북한 측이 한국보다 서열이 높은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자아, 우선 명칭을 조정하십시다.”

인사가 대충 끝났을 때 먼저 김동남이 입을 열었다.

 

70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 한때 숙청을 당해 돼지농장 관리자로 지방으로

 

쫓겨났다가 5년 만에 권부로 복귀했다니 등소평과 비슷하게 보였다.

 

김동남이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는 납북자라고 하는 모양인데 우린 귀순자로 부릅니다.

 

그러니까 이걸 조정해서 출국자로 하십시다. 어떻습니까?”

그러자 민족당 원내총무인 안유철이 대번에 찬성한다.

 

한국 측 대표 안상호를 무시한 행동이다.

“그거 괜찮습니다. 전 찬성합니다.”

김동남의 시선이 안상호에게로 옮겨졌다.

 

이번 의원단의 방북 명칭은 남북의원협의회의 안건 협의와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회담이었지만 북한의 요청에 따라 남북한 현안에 대한 의원단 협의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 측이 납북자란 호칭에 예민해져 있다는 표시였다.

 

그때 안상호가 말했다.

“좋습니다. 한국 측 대표 권한으로 찬성하겠습니다.

 

앞으로 남북한 당국자 간 회담 시에는 출국자로 통일하도록 정부에 건의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하고 안유철이 말을 받는다.

 

50대 중반의 운동권 출신으로 두 번의 수감 경력이 있으며,

 

미군철수 투쟁위 부위원장과 국보법 폐지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지난번 간첩단 사건 때는 현역의원 신분임에도 간첩단의 변호인을 자청해서

 

좌파 세력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그때 김동남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국군포로라고 남한 측에서 말하는데 우린 처음부터 포로가 없습니다.

 

모두 인민군에 귀순, 투항한 전사란 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군귀순자라고 호칭을 통일합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안유철이 나섰다.

 

안유철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지요.”

그때 모두의 시선이 김동남에게로 모였다.

 

한국 측 의원 7명, 북한 측도 7명이 각각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구도였다.

 

김동남과 안상호는 각각 중앙에 마주보며 앉았으며 차석인 안유철은 왼쪽 옆자리였다.

 

끝자리에 앉은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김동남이 빤히 안유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김동남의 시선을 받은 안유철이 처음에는 웃었다가 3초쯤 지났을 때

 

웃음기가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김동남의 표정이 정색한 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철봉 생각으로는 그렇게 5초쯤 지난 것 같다.

 

그러고는 김동남이 안유철을 향해 물었다.

“동무가 15년 전에 우리 대남공작원 이창훈 동지한테 남한 측 정보를 넘겨준 분 맞지요?”

“예에?”

눈을 크게 뜬 안유철이 외마디 소리처럼 물었을 때 김동남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 우리가 공작비로 15만달러를 준 것 같은데, 세 번에 걸쳐서 건네주었고 말입니다.”

그 순간 회담장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조철봉은 침을 삼켰다.

 

안유철은 간첩한테서 공작금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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