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85. 떴다, 조철봉 (9)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9

685. 떴다, 조철봉 (9)

 

 

(1953)떴다, 조철봉-17

 

 

 

그때 서윤석이 머리를 들더니 조철봉에게 말했다.

“조 의원, 김 위원장한테 핵 나눠 갖자는 제의는 잘하신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서윤석이 말을 잇는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없는 일이지만 위원장의 반응을 보면

 

핵에 대한 해결방안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상호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되면 영웅이 되는 거죠.”

이대동도 거든다.

“까놓고 말해서 최소한 차차기 주자는 되는 겁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깨진 조철봉이 눈을 껌벅이며 셋을 둘러보았다.

 

차차기 주자라니, 띄워놓아도 분수에 맞게 띄워야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화가 무척 솟구쳤다.

 

사기를 치려면 상대방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가라앉은 상태에서는 세상 없어도 일을 진행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적당히 띄워야 한다.

 

사기의 기본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차차기라니,

 

세상에, 조철봉은 제 분수를 안다.

 

머리에 든 것도 모자라고 국가에 대한 개념도 없으며 국민과 헌법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지금까지 모은 재산을 한번 멋지게 사회에 환원시켜 보겠다는 의욕 하나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응모했다가 운 좋게 끝번으로 당선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차차기라니, 카바레 웨이터들은 찍어줄지 모르지만

 

내가 뭘 내놓고 대권에 도전한단 말인가?

 

부질없는 짓이다. 2, 3초 동안이었지만 조철봉의 머릿속에 수백개 단어와

 

상념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세 사내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구체적으로 이 인간들이 나를 부른 의도나 듣도록 하자.

“저한테 뭘 원하십니까?”

그러자 이대동이 금방 대답한다.

“국군포로나 납북자 송환입니다.

 

둘 중 하나만 성사시켜도 대박이 될 겁니다.”

정색한 이대동이 조철봉을 노려보았다.

“우리 한국당에서 먼저 송환 위원회를 구성하는 겁니다.

 

조 의원은 위원회 간사를 맡으시고 북측에 절충을 해주시면 합니다.

 

만일 그 일이 성사가 되면.”

그러자 안상호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받는다.

“남쪽 가족들의 한이 풀릴 뿐만 아니라 한국당 지지율,

 

나아가 대통령의 인기도 하늘로 솟을 겁니다.”

“이 분위기를 살립시다.”

하고 서윤석이 거들었으므로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었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감동을 먹은 것도 아니다.

 

정치는 계산이다.

 

국리민복을 추구하지만 계산 없는 무데뽀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몇 달 안 되는 초짜 의원인 조철봉도 그쯤은 아는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여자들을 보았다.

 

마담 이하 여자들은 제각기 딴전을 피우고 있었지만 다 들었다.

 

하긴 이 내용이 국가 비밀은 아니다.

 

경쟁 상대인 민족당 쪽에 흘러들어가도 별 지장은 없다.

 

언론사도 마찬가지. 그리고 ‘한양’의 여자들은 입단속이 철저한지도 모른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해 보지요.”

그러자 부대표 안상호가 바로 말을 받는다.

 

“내가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겁니다.”

그러고는 눈으로 정책위의장 이대동을 가리켰다.

“이 의장이 실무 총책인 위원회 총무를 맡으실 것이고.”

조철봉은 간사인 것이다. 그때 술잔을 든 서윤석이 호탕하게 웃는다.

“자, 한국당 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조철봉 의원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1954)떴다, 조철봉-18

 

 

건배를 세 번쯤 하고 나서 넷은 각자 놀았다.

 

모인 목적은 달성한 터라 분위기는 고양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관심이 여자에게로 옮겨졌다.

 

유하연은 스물여섯, 고향이 서울이고 대학을 마친 후에 1년 동안 무역회사에 근무하다가

 

‘한양’으로 직장을 옮겼다고 했다.

 

세 거물들과 대화 도중에 틈틈이 유하연이 말해준 것이다.

 

유하연은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경험이 쌓일수록 노련해지는 반면에 감동이 작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조철봉으로서는 오랜만에 감동을 주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래, 이 직장은 다닐만 해?”

유하연이 ‘한양’을 직장으로 표현한 것이 신통했으므로 조철봉은 그렇게 묻는다.

 

보통 아가씨들은 밤에 나가는 이곳을 가게라고 부른다.

 

일년 열두달 나가면서도 알바 나간다고 하는 여자도 있다.

 

그러자 유하연이 대답했다.

“네, 보람 있어요.”

“보람?”

이것도 예상 밖의 대답이었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어떤 게 보람이지?”

조철봉이 묻자 유하연은 거침없이 대답한다.

“여긴 성공한 분들이 오죠.

 

기업, 정치 또는 관직에서요.

 

그분들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는 것 같아요.”

“사기꾼도 있을 텐데, 거물 사기꾼.”

“어쨌든 이곳에 올 정도면 그 방면에서도 성공하신 분이죠.”

“그런가?”

“물론 이곳에서 탈락한 분들도 있죠.

 

그분들을 보면 또 어떻게 살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거든요.”

“너, 공부 잘했겠다.”

“공부는 별로였어요. 대학도 2류였고.”

그때 옆자리에 앉은 이대동이 불쑥 조철봉에게 말했다.

“조의원, 좀 쉬고 오시오.”

“예에?”

놀란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을 때 이대동은 큰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웃었다.

“조의원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맘 놓고 노시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아니, 이 사람이.”

서윤석이 정색하고 나무랐지만 안상호는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적절한 때 처방을 내놓는다니까 정책위의장은.”

“그럼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사양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반쯤 허리를 굽히고 시선을 가운데다 두고 물었다.

“그럼, 그럼. 딱 한 시간 동안만 휴회하기로 하십시다.”

이대동이 말했다.

“그동안에 큰 국사는 없을 테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한 조철봉이 몸을 돌리자 유하연이 뒤를 따른다.

 

치맛자락을 치면서 살짝 내비치는 흰 버선끝마저도 섹시했다.

 

방을 나왔을 때 유하연이 앞장서더니 복도 끝 쪽 방문을 밀어 열었다.

 

그러고는 조철봉의 가슴에 시선을 주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다시 조철봉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방에 들어오라는 말이 꼭 어디로 들어오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선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온돌방에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이불은 들어가기 쉽도록 삼분지 일 정도가 젖혀져 있다.

 

뒤에서 문의 열쇠 잠그는 소리가 났으므로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과연 오늘 소원이 이루어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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