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 떴다, 조철봉 (7)
(1949)떴다, 조철봉-13
“그 발상은 좋지만.”
국정원장 김광덕이 말한다.
이곳은 강남 힐사이드 호텔 지하의 룸살롱 레드힐. 청와대에서 나온 조철봉은
지금 김광덕과 룸살롱의 방안에 앉아 있다.
상석에는 조철봉과 김광덕이 앉고 좌우에 1차장 서한호와 정보실장 이강준이 앉았다.
둘은 남북합자사업을 할 때부터 안 인사들이다.
김광덕의 말이 이어졌다.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6자회담에 참가한 나머지 4개국이 일제히 반대할 테니까요.
한국은 북한과 함께 고립됩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광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하지만 핵을 공동 보유하게 되면 남북한 관계는 급속하게 가까워지겠지요.
북한에 대한 호의가 증폭되고 경계심이 풀리며 이른바 보수 세력은 위축될 겁니다.
반대로 친북 반미 세력이 기세를 올리게 되겠지요.”
“그것 참.”
눈을 껌벅이며 듣던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그걸 대선 전에 터뜨렸다면 대선 판도가 바꿔질 수도 있었겠네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고 김광덕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만일 그때 남북한 의원협의회가 있었다면 거기서 북한측이 제의한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슈화되었을 겁니다.”
“으음.”
조철봉의 입에서 신음이 뱉어졌다.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술잔을 든 김광덕이 말을 잇는다.
“위원장은 지금 그 제안을 우리가 논의하고 있다는 것도 알 겁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도 알겠지요.”
한모금 위스키를 삼킨 김광덕이 조철봉을 향해 갑자기 얼굴을 펴고 웃었다.
“어쨌든 조 의원께서는 스타가 되셨습니다.
선택받은 위치가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찜찜하네요.”
했지만 조철봉은 따라 웃었다.
핵의 공동 보유에 대한 대박 꿈이 일순간에 깨졌지만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발상이 즉흥적이었는데다 밀고 나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되지 않으면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조철봉 스타일이다.
국제정세와 국가간의 역학관계,
남북간 체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자신을 알고 있는 터라 일을 크게 벌일 생각도 없다.
그때 김광덕이 말을 잇는다.
“조 의원께서 왜 선택되었는지 이유는 알고 계시죠?”
“저를 믿는다고 하시더군요.”
술잔을 쥔 조철봉이 금방 대답했다.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김광덕을 보았다.
“물론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내가 남북합자사업으로 북한 측 인사를 좀 안다는 이점도 있었을 것이고.”
“조 의원께서 남북의원협의체 제안을 하신 것이 원인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정색한 김광덕이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대선 전에 그런 협의체가 있었다면,
그때 핵 공동 보유가 그 협의체에서 제안되어 나왔다면 대선 판도는 바뀌었을 겁니다.
그것에 대한 미련을 위원장이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는 김광덕이 똑바로 조철봉을 본다.
“앞으로 협의체는 다른 용도로 이용될지 모르죠.
하지만 우리 측도 소득이 있습니다. 아주 큰 소득.”
김광덕이 술잔을 들고 건배하는 시늉을 한다.
“조 의원과 위원장과의 관계 말이죠.
이제 앞으로 조 의원은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많아지실 겁니다.”
따라 술잔을 든 조철봉이 심호흡을 했다. 그것도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 독대가 신분 상승에 절대적이라는 것도 안다.
(1950)떴다, 조철봉-14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조철봉은 단 한번도 오입을 한 적이 없다.
오입이란 아내 이외의 여자와의 섹스를 말하는 것이니 사실이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본인이 사절한 것이다.
북한에 갔을 때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마음놓고 해도 되었다.
위원장이 직접 권한 경우였으니 누가 뭐라겠는가?
다음날 오후, 조철봉이 최갑중과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말했다.
“참 안타깝다.”
“예? 뭐가요?”
놀란 최갑중이 눈을 크게 떴다.
사무실 안이었다.
방금 회의를 마친 터라 탁자 위에는 서류가 흩어져 있고
여럿이 있다 간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았다.
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거 말야.”
“그거라뇨?”
“내가 그거 안한 지 두달째다.”
그때서야 알아챈 갑중이 어깨를 늘어뜨렸지만 먼저 입맛부터 다셨다.
혀 차는 소리보다 조금 약한 소리가 났다.
“그건 당분간 좀 참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요즘은 사람들이 다 알아보지 않습니까?”
“영일 엄마가 지금 7개월이야.”
“예. 압니다.”
“북한에서 하고 올 걸 그랬어.”
“그러게 말씀입니다.”
“인마, 남의 일 말하는 것처럼 그러지 말어.”
“예. 의원님.”
고분고분 대답은 했지만 갑중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어깨를 펴고 시선도 곧다. 그것을 본 조철봉이 한숨을 뱉었다.
“방법 없을까?”
“뭐가 말씀입니까?”
“소문 안내고 탈없는 여자.”
“없습니다.”
갑중이 단호한 표정으로 머리를 젓는다.
“여긴 프랑스가 아닙니다. 의원님.”
“왜 하필 프랑스냐?”
“그쪽은 여자 문제가 드러나도 별 영향이 없더군요.
그런데 한국은 다릅니다.”
“다르긴 뭐가 달러?”
“영상이 뜨면 만회하기 힘듭니다.”
“인마, 그러니까”
눈을 치켜떴던 조철봉이 곧 길게 숨을 뱉었다.
대상이 있어야 욕구가 증가되는 법이다.
말을 하다보니 기가 죽었고 대상도 없는 형편이라 어느덧 의욕도 떨어졌다.
그러나 오후 6시경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당 부대표 안상호의 전화를 받고나서 생기가 되살아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안상호는 당대표 서윤석, 정책위원회 의장인 이대동과 함께 넷이서
저녁 겸 술을 한잔 마시자고 초대를 했기 때문이다.
초대 장소를 들은 조철봉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요정 ‘한양’이다. 내로라한 시절을 보냈던 조철봉이었지만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던 곳,
정치인도 거물급만 출입하는 곳이며 공무원은 장관급,
대기업 회장들이나 간다는 요정인 것이다.
‘한양’은 술값도 비밀이었고 아가씨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지
단 한번도 실명 확인이 된 적이 없다.
그만큼 보안에 철저한 곳이었다.
조철봉의 저녁 행사 이야기를 들은 갑중이 진심이 우러난 표정으로 축하를 해줄 정도였다.
그곳에서는 얼마든지 될 것이었다.
“소원성취 하십시오.”
조철봉이 차에 오를 적에 문을 열어주면서 갑중이 낮게 말했다.
얼굴 표정도 진지해져 있어서 누가 그말을 들었다면 부모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빌겠다는
인사 정도로 알았을 것이었다.
조철봉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간다.
술 마시면 머리 빗는 버릇이 있어서 빗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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