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84. 떴다, 조철봉 (8)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8

684. 떴다, 조철봉 (8)

 

 

(1951)떴다, 조철봉-15

 

 

‘한양’은 이태원의 주택가 끝쪽에 위치해 있어서 겉만 보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간판도 없는 데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층 벽돌 건물이었다.

 

지붕은 청기와를 붙였지만 일부분만 보여서 표시가 나지 않았다.

 

높은 담장에다 철제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조철봉이 탄 차가

 

일차로 일방 통행길로 내려왔을 때 담장 중간에 뚫린 주차장 셔터가 스르르 올라갔다.

차가 들어서자 셔터는 금방 소리 없이 내려갔다.

 

주차장은 넓었다.

 

이미 10여대의 고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데도 빈자리가 반도 더 남았다.

 

기다리고 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방에 닿았을 때

 

조철봉은 다시 감동한다.

 

나무바닥 복도를 걸어 미닫이문을 연 순간 넓은 온돌방이 드러난 것이다.

 

안쪽에 놓인 병풍과 넓은 사각형 상, 그리고 허리받침대가 놓인 앉은뱅이 의자,

 

이게 얼마 만인가?

 

조철봉이 첫 손님이었으므로 빈 상 윗자리에 앉았을 때 마담이 들어왔다.

 

50대쯤의 한복 차림으로 풍만한 체격이다.

“어서오세요, 조 의원님.”

마담이 웃음 띤 얼굴로 옆자리에 앉더니 곧장 시선을 준다.

 

당당한 태도, 그러나 예의 바르다.

“주인 되는 박영덕입니다.”

자기소개를 했을 때 역시 40대쯤의 여자 둘이 쟁반에 맥주와 안주를 가져와 조철봉 앞에 놓는다.

“여긴 오늘 시중을 들 김 마담, 오 마담입니다.”

박영덕이 말하자 마담들이 제각기 공손하게 절을 했다.

 

박영덕이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한다.

“조 의원님, 잠깐 복도로 나오시면 위쪽에 쉬실 방이 있습니다.

 

파트너 데리고 나오셔도 되고 쉬실 방에서 다른 애를 부르셔도 됩니다.”

“허어.”

마침내 조철봉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상황이다.

 

파트너가 처음에는 마음에 들었다가 정나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는 바꾸기도 귀찮아서 남은 시간을 언짢게 보내야만 한다.

 

더구나 예의를 지켜야만 하는 좌석에서는 마음고생이 큰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해소책을 그야말로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파트너를 방에 놔두든지 어쩌든지 하고 빈방에서 다른 여자를 불러 놀고 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럼 방에는 카탈로그나 그런 것 있습니까?”

정색하고 조철봉이 묻자 마담 하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웃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예, 비디오테이프가 있으니까 보시고 고르시면 됩니다.”

“아아,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이 모셔서 영광입니다.”

“내가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하고 조철봉이 입을 떼었다.

 

그러나 말을 뱉고 나서 바로 후회가 되었다.

여자들이 존경스럽다는 시선을 보내면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입 안의 침을 삼킨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때보다도 분위기가 좋구먼요.”

처음에는 위원장이 한 말에다 몇가지 살을 붙여서 거드름을 피울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뱉고 나니 상대가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내놓아도 감동을 받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놀라는 척하겠지만 말이다.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이 여자들 앞에서는 그냥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낫다.

 

천국에서 쇼를 하면 되겠는가? 

 

 

 

(1952)떴다, 조철봉-16

 

 

조철봉이 맥주 한 병을 다 마셨을 때 당 대표 서윤석과 부대표 안상호,

 

정책위의장 이대동 셋이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모두 웃음 띤 얼굴, 분위기가 좋다.

“어이구, 먼저 와 계시는구먼.”

호인풍의 서윤석이 조철봉의 손을 잡으면서 반긴다.

 

떠들썩했지만 정돈된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잠깐 나갔던 박영복이 아가씨 넷을 데리고 소리 없이 들어온다.

 

치맛자락이 방에 끌리면서 마치 미끄러지는 것 같다.

 

아직 교자상은 비어 있었지만 박영복은 엄숙한 표정으로 아가씨들에게 말했다.

“자, 앉아라.”

그러자 아가씨들이 제각기 사내 옆에 앉는다.

 

미리 지정을 해준 것이다.

 

조철봉은시침을 뚝 떼고 앞에 앉은 서윤석의 말을 듣는 척했지만 옆에 앉은 아가씨한테서

 

풍기는 향내를 맡았다.

 

문 쪽에다 등을 보이고 앉았기 때문에 아가씨 얼굴은 못 보았다.

 

그때 뒤쪽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종업원들이 마담의 안내를 받으며 쟁반에다 요리를 받쳐 들고 등장했다.

 

그러고는 아가씨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교자상에 온갖 산해진미를 내려놓는다.

 

조철봉은 아직 머리를 돌리지 못하고 상 위로 움직이는 손들만 보았다.

 

질서가 정연했다.

 

종업원들까지 모두 10쌍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엉키지 않고 두 번 손길이 가지도 않는다.

 

평소에 훈련을 받은 티가 났다.

 

그래서 요리는 순식간에 놓여졌고 종업원들은 소리 없이 물러갔다.

“얘들아, 인사해야지.”

잠깐의 정적도 허락하지 않는 박영복의 지시, 조철봉은 속으로 감탄한다.

 

사내 넷의 서먹한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손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전 김애숙입니다.”

하고 회장인 서윤석의 옆에 앉은 아가씨가 공손하게 절을 했다.

 

일어섰다가 앉으면서 머리를 깊게 숙이는 절,

 

그 다음에는 시키지 않아도 안상호와 이대동의 파트너가 인사를 했으며

 

맨 나중이 조철봉의 파트너였다.

“유하연입니다.”

유하연, 그때서야 조철봉이 머리를 비틀고 제 파트너를 본다.

 

그 순간 조철봉은 가슴이 미어지면서 식도가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어서 코끝이 찡하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그러고 보니 귀도 울리고 있다. 아름답다.

 

조물주는 전지전능하시다.

 

미인을 창조하시는데도 어찌 이렇게 모두 다 다르게 만드신단 말인가?

 

유하연은 맑고도 또렷한 눈, 쌍꺼풀이 없는 데다가

 

그 빌어먹을 서클렌즈도 끼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눈동자를 내보이고 있다.

 

곧은 콧날, 적당한 입술, 누구는 입술을 부풀려서 풍선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세상에 뜨거운 김치찌개 먹다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 유하연이 일어나면서 잠깐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쳤다가 양쪽이 동시에 비껴났다.

“조 의원, 오늘은 조 의원을 위한 자리요.”

하고 서윤석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정신을 차렸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당 대표부는 북한 위원장을 만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박영복과 마담 둘이 상의 3면에 끼어앉아 제각기 티 안 나게 분위기를 맞춰 주었으므로

 

조철봉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서윤석은 박영복의 말에 소리 내어 웃고 있다.

 

두 마담은 제각기 안상호와 이대동의 시중을 드는 것 같았지만

 

조철봉을 홀가분하게 만들어 주려는 의도였다.

 

그때 옆에 앉은 유하연이 조철봉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의원님,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유하연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조철봉은 먼저 침부터 삼킨다. 아무렴. 있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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