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81. 떴다, 조철봉 (5)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6

681. 떴다, 조철봉 (5)

 

 

(1945)떴다, 조철봉-9

 

 

“완전히 떴군.”

신문을 구겨버린 임기택이 잇사이로 말했지만 목소리는 힘이 풀렸다.

 

이쪽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앞쪽에 보좌관이 앉아 있었어도 그런다.

 

워싱턴의 징글벨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기세도 간 곳 없다.

 

어깨를 늘어뜨린 임기택이 말을 잇는다.

“김정일이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조종하기 쉬운 놈으로 고른 거야.

 

언론은 그걸 다 알면서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어.”

했지만 앞에 앉은 보좌관 하병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돌아온 조철봉은 한국당 대표 서윤석에게 보고를 하고 나서 인터뷰까지 마쳤다.

 

TV에 나온 조철봉의 태도는 의연했다.

 

바로 이틀 전만 해도 우스꽝스럽게 연출되었던 모습이 싹 바뀌어서 진중한 자세가 나갔다.

 

조철봉은 내일 당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때 보좌관 하병호가 입을 열었다.

“여기, 남북의원협의회에 소속될 한국당 의원의 예비 명단입니다.”

하고 하병호가 복사지를 내밀었다.

“50명 정원 중 한국당은 35명, 민족당이 10명, 기타가 5명으로 확정되었더군요.”

서두르듯 복사지를 받아든 임기택이 훑어 보더니 곧 신음 같은 헛기침을 뱉는다.

 

그러고는 복사지를 탁자 위에 던졌다.

“이게 뭐야? 다 쓰레기 같은….”

했지만 하병호는 외면했다.

 

물론 복사지에 적힌 한국당 의원 70명 중에 임기택의 이름 석자는 없다.

 

오늘 오전에 당 대표가 한국당 의원 175명 중에서 남북의원협의회에

 

가입할 신청자를 모았더니 175명 전원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신청했던 것이다.

 

민족당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당 지도부에서는 175명 중 우선 정원으로 예정한 35명의 2배수인 70명을

 

선정했는데 임기택은 그 70명 중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거, 조철봉의 장난이지?”

하고 임기택이 쉰 목소리로 묻자 하병호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 오후에 조철봉 의원하고 당 지도부가 모여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조철봉은 한국 의원을 대표해서 남북의원협의회 구성을 결정하고 귀국했지만

 

스스로 한국측 의원단 부총무를 맡았다.

 

당 대표는 물론이고 민족당 대표까지 조철봉이 의원단 총무는 맡아야 한다고 했어도

 

극력 사양한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이 실세인 것은 당연했다.

 

민족당 거물들까지 조철봉에게 공공연히 로비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임기택의 시선이 다시 탁자 위에 팽개친 복사지로 옮겨졌다.

 

제 이름이 없으니 쓰레기 같다고 매도했지만 명단의 70명은 모두 한국당 거물들이었다.

 

포함되지 않은 의원이 바로 쓰레기였다.

“응?”

그 순간 임기택의 눈이 커졌다.

 

명단 끝쪽에서 임유훈, 강진봉 두 의원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 사람들.”

여기까지 말하고 난 임기택이 어금니를 물고는 소파에 등을 붙였다.

 

임유훈, 강진봉은 비례대표 30번, 33번으로 조철봉의 바로 앞쪽 순서여서 신세가 비슷했다.

 

둘 다 초선이고 기업체 사장, 학원이사장 출신으로 지금까지 어느 모임에도 초대받지 못했던

 

인사들이었다.

 

조철봉이 포함시킨 것이다.

“으음, 조철봉이, 이 새끼.”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하병호가 받았다.

 

잠시 응답하던 하병호가 눈을 치켜뜨고 임기택을 본다.

“의원님, 조철봉 의원인데요.”

그 순간 놀란 임기택이 벌떡 상반신을 세웠다.

 

그리고 심호흡부터 했다. 

 

 

(1946)떴다, 조철봉-10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인 임기택이 응답했다.

 

목소리에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 임기택입니다.”

“저, 조철봉입니다.”

“아이구, 조 의원님, 고생하셨지요?”

표정도 간절했으므로 보다 못한 하병호가 외면했다.

 

그때 조철봉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렸다.

“예비 명단을 보니까 임 의원이 빠져 있더군요.

 

그래서 궁금한 김에 전화드린 겁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눈썹을 모은 임기택이 긴장했다.

 

온몸이 굳어져 있다.

 

빠진 건 조철봉한테 찍혔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조철봉이 남북의원협의회 구성을 제의했을 때

 

미친 짓이며 북한 측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임기택이 한 말이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었었다.

 

망할 놈의 인터넷, 인터넷 댓글이 제일 무섭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임 의원처럼 유능하신 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참여할 의향이 계시다면 제가 힘은 없지만 추천해 드리겠는데요.”

“아아아.”

탄성과 신음이 뒤섞인 소음이 임기택의 입에서 터졌다.

 

그러고는 임기택이 전화기를 움켜쥐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신세 잊지 않겠습니다. 조 의원님.”

“그럼 승낙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참, 조 의원님.”

“예.”

“제가 잠깐 잊었는데 저희 바른정치를 위한 모임에서

 

조 의원님을 가입시키자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

“그래서 제가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의원님이 전화를 주셨구만요.”

“아아.”

“제가 미력하지만 회장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회장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래서 진즉부터 저는 조 의원님을 부회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요.”

“거기 부회장에 엄상수 의원이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런데 부회장 자리가 둘이거든요,

 

이 기회에 조 의원님이 부회장으로 오신다면 모두 환영할 것입니다. 당연하죠.”

맞는 말이다. 지금 바른정치를 위한 모임에서는 남북의원협의회 예비 후보에

 

포함된 의원은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이제 겨우 임기택이 끼워졌다.

 

조철봉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렸다.

“그건 나중에 상의드리기로 하고 어쨌든 예비 명단에 포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의원님.”

워싱턴 징글벨대학 박사 출신인 임기택이 정과 성을 다한 인사를 드리고 있다.

“조 의원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바로 눈앞에 보좌관 허병수가 앉아 있었으며 5분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니,

 

이새끼 저새끼를 찾던 조철봉에게 임기택은 온몸을 던져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통화가 끝났을 때 전화기를 내려놓은 임기택이 앞에 앉은 하병호를 보았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입에서는 딴소리가 나왔다.

“조철봉이 완전히 들떠있구만.”

눈만 껌벅이는 하병호를 향해 임기택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치켜세워주니까 어쩔 줄을 모르는구만 그래.”

머리를 끄덕여보인 하병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실을 나왔다.

 

의원실 문을 닫은 하병호가 잇사이로 말한다.

“똥개 같은 놈.”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83. 떴다, 조철봉 (7)  (0) 2014.10.08
682. 떴다, 조철봉 (6)  (0) 2014.10.08
680. 떴다, 조철봉 (4)  (0) 2014.10.08
679. 떴다, 조철봉 (3)  (0) 2014.10.08
678. 떴다, 조철봉 (2)  (0) 201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