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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떴다, 조철봉 (4)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5

680. 떴다, 조철봉 (4)

 

 

(1943)떴다, 조철봉-7

 

 

조철봉의 사진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과 나란히 둘이서 찍은 독사진,

 

김동남 북한의원단 대표하고 위원장 좌우에 서서 찍은 사진,

 

사진기자들은 신바람이 났다. 더구나 위원장은 북남의원협의회를 제안한 조철봉 의원을

 

칭찬하는 말까지 해주어서 조철봉은 완전히 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역사상 이렇게 뜬 의원은 의정사상 처음일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팔자가 바뀐다는 표현이 이런 경우였다.

 

하루종일 수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서 조철봉은 주석궁의 회의실로 돌아와서도

 

눈앞에서 불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외교부 차관 임상섭 이하 경협대표단이 이번 북한 방문단의 주역이었지만

 

기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바람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회담도 오전 중에 끝났지만 조철봉 때문에 귀국하지도 못하고

 

호텔방에 박혀 TV만 보는 중이다.

“우리 노동당 대의원은 저쪽 방에 있지만 갈 때 인사나 하라구.”

자리에 앉은 위원장이 눈으로 옆쪽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때? 정신이 하나도 없지?”

“예? 예.”

조철봉이 건성으로 대답하자 위원장이 웃었다.

 

그러자 좌우에 앉은 김동남과 통전부장 양성택이 따라 웃는다.

“팔자 고치는 거, 어떻게 보면 쉬운 일 같지 않나?”

하고 위원장이 불쑥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긴장했다.

 

눈의 초점을 잡고 위원장을 본다.

“글쎄요, 저는.”

“정치도 그래. 마음을 비우면 쉬운 거야.”

어느덧 정색한 위원장이 말을 잇는다.

“통일도 그렇지, 어려운 일 아냐.”

긴장한 조철봉은 숨까지 죽였을 때 위원장은 풀썩 웃는다.

“북진통일은 어렵겠지?”

그렇게 묻고 난 위원장이 바로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 적화통일도 어렵고.”

조철봉은 위원장 좌우의 두 거물도 긴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둘 다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위원장의 말이 방을 울렸다.

“그래, 당분간 평화공존이야.

 

서로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거야.”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다 맞는 말이다.

 

핵도 체제가 불안했기 때문에 만들었을 것이다.

 

남한이 잘 살수록 북한이 불안해지는 건 당연하다.

 

어깨를 편 조철봉이 위원장을 보았다.

“위원장님, 거시기.”

“뭔가?”

위원장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조철봉을 본다.

 

지금은 잠시 쉬는 시간이다.

 

이제 북남의원협의회는 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창설되었으며

 

한국 국회의 대표권을 위임받은 조철봉이 서명을 했다.

 

위원장의 격려사와 기자회담까지 다 끝난 것이다.

 

위원장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핵 말씀입니다.”

“핵?”

하고 위원장이 되물었는데 마치 비명 같았다.

 

그순간 좌우의 두 거물이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얼굴빛도 똑같이 누렇게 굳어졌다.

 

그때 조철봉이 이를 악물었다가 풀고는 말했다.

“그 핵을 나눠주시죠.”

위원장은 눈만 치켜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한국한테 절반만 뚝 떼어서 보내주시죠.

 

그럼 양쪽이 똑같이 핵을 갖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방안은 조용했다.

 

두 거물은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위원장은 눈만 껌벅인다. 

 

 

(1944)떴다, 조철봉-8

 

 

“그렇군.”

하고 위원장이 말했을 때는 1분이나 지난 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좌우의 두 거물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으며 조철봉은 침을 두 번이나 삼켰다.

 

위원장이 굳어진 얼굴로 조철봉을 본다.

“내가 얻어올 생각만 했지 나한테도 줄 게 있다는 것을 생각 못 했군.”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위원장의 목소리는 방을 울렸다.

“아주 엄청난 선물이 될 텐데 말야.”

그것이 선물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조철봉이 아직 계산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문득,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뱉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부터 북한 핵은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

 

한국인 중 초등학생까지 포함해서 북한 핵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북한 측은 수백만명을 한꺼번에 살상할 수 있는 핵을 보유했다.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주적 상태인 국가가 핵을, 그것도 비핵화 약속을 깨고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위협이며 압박이다.

 

미군의 위협에 대한 자위용이라거나 남한까지 지켜주기 위한 방어용이라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남한 국민은 극소수다.

 

그 극소수는 친북, 반미 또는 반역 세력이 될 것이다.

 

그때 다시 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말야.”

정색한 위원장이 똑바로 조철봉을 본다.

“조 의원, 고스톱 칠 줄 아나?”

“예에?”

했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조철봉이 헛기침부터 했다.

 

이제는 조철봉도 위원장 스타일에 길이 들었다.

 

뜬금없는 화제로 긴장을 풀지만 곧 부드럽게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놀라지 않고 대답해야 대화가 술술 이어진다.

“예. 좀 칩니다. 위원장님.”

“고를 계속 부르면 상대가 긴장하게 되는 거 알지?”

“예. 압니다. 위원장님.”

“동무는 고를 한번 불렀어. 아주 크게.”

“예. 그, 그렇지요.”

“또 부르면 다른 놈들이 모두 긴장해서 서로 패를 나눠줘.

 

청단이나 홍단, 또는 고도리 패를 말야.”

“예? 예.”

“그러니까 이번 판은 그대로 먹어. 피박 쓴 놈도 있을 테니까 말야.”

“예.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다음 판에 다시 고를 불러. 이번 핵 문제로 말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위원장님.”

감동한 조철봉의 목이 다시 메었다.

 

무슨 말인지 조철봉이 모르겠는가?

 

이번 판의 남북의원협의회 구성만으로도 조철봉은 아마 고스톱 점수로 300점은 났을 것이다.

 

위원장은 이번 판은 그냥 그 패로만 먹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핵 패는 다음 판에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위원장이 조철봉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과연 내가 사람을 잘 보았어.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뛰어나.”

“가,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동무, 정말 여자 필요하지 않나?”

“예?”

했다가 침을 끌어모아 마른 입 안을 적신 조철봉이 겨우 삼키고는 위원장을 보았다.

“위원장님. 다음 기회에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나한테 노래 거꾸로 부르는 기술도 좀 전수해주고 말야.”

“예. 위원장님.”

그러자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자, 다음에 또 내가 부를 테니까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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