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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떴다, 조철봉 (1)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3

677. 떴다, 조철봉 (1)

 

 

(1937)떴다, 조철봉-1

 

 

 그러나 그 비웃고, 조롱하는 분위기는 조철봉이 평양으로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TV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조철봉의 모습을 화면에 잡고는 자막까지 넣어서 방송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조철봉 당선자, 남북한 국회의원 모임을 주선한다고 했다가 웃음거리가 되다.’

 

그러고는 조철봉의 놀란 표정을 찍었으니 보는 사람은 다 웃었다.

 

코미디였다.

“두고 보십시다.”

분이 난 김경준은 조철봉을 비웃거나 하다못해 동참한 자들까지 메모를 해놓고 식식거렸다.

 

만일 조철봉이 지금 작전 중이 아니었다면 의기소침했을 김경준이다.

 

김경준은 이 기회에 적과 아군, 또는 인간성까지 구분해낸 다음에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조철봉이 북한 통전부 부부장 대리인 강진주하고 작전 중이라는 것은 김경준과 최갑중까지

 

셋만 아는 비밀이다.

 

그러던 며칠 후 경제회담 한국측 대표단은 평양으로 출발했다.

 

이제는 공식 회담이 되어서 회담 명칭도 ‘남북한 제17차 경제합의에 대한 추진 확인 회담’으로

 

꽤 길었는데 쉬운 말로 표현하면 간단했다.

 

‘제17차 경제회담대로 물건 보내기’였다.

 

평양 고려호텔에 여장을 푼 조철봉이 김경준과 최갑중을 방으로 불러들였을 때는 오후 2시반이다.

“회담은 오늘 오후 5시에 시작할 거야.”

조철봉이 말하자 최갑중이 먼저 눈썹을 찌푸렸다.

“아니, 내일 오전 아닙니까?

 

오늘 저녁에는 북한 대표단 초청으로 모란봉 극장에서 쇼를 보고요.”

쇼가 아니고 음악회였지만 조철봉은 못 들은 척했고 이번에는 김경준이 묻는다.

“대표단에서 연락이 왔습니까?”

“아니, 북한측에서.”

그래 놓고 조철봉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대표단에서 연락이 오겠지.”

그렇다면 조철봉은 대표단보다 먼저 변경된 스케줄을 통보받은 셈이다.

 

그러자 김경준이 코웃음을 쳤다.

“임상섭 대표가 의원님을 슬슬 피하는 눈치가 훤하게 보이더군요.

 

아마 저희들끼리는 의원님 씹어대고 있을 겁니다.”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고 있겠지요.”

최갑중도 맞장구를 쳤다. 눈을 치켜뜬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민족당 간부들이 회의 중에 의원님 이야기를 하고 웃었다는 기사 보셨지요?”

“예. 봤습니다. 그것도 기사라고 민주일보에서는 사진까지 났던데.”

김경준의 목소리도 열기를 띠었다.

“웃는 얼굴들로 말입니다.

 

딴짓들을 하면서 웃는 걸 우리 의원님 이야기로 웃는 것으로 만들어 놓고 말이죠.”

“다 그런 거야.”

하고 조철봉이 말을 막았으므로 둘은 먼저 서로의 얼굴부터 보았다.

 

그러고는 제각기 정색했는데 최갑중의 콧구멍이 희미하게 벌름거렸다.

 

그때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 일에 일희일비하면 안돼. 그게 정상이야.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원수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돼.”

그러고는 조철봉이 이만 드러내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카메라 렌즈가 비치니까 갑자기 가만있던 의원이 입을 짝짝 벌리면서

 

열심히 말하는 시늉을 했어. 소리도 안 내고 마치 금붕어처럼 말야.”

조철봉이 갑자기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그걸 보고 소름이 끼치면서 그 의원이 존경스러워졌다. 보통 사람은 못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표단일 것이다.” 

 

 

 

 

(1938)떴다, 조철봉-2

 

 

오후 5시에 시작된 회의는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농담까지 주고 받았는데 회의 진행 속도도 빨랐다.

 

한국쪽에서는 퍼주기로 작정을 한 터라 날짜만 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회담때와 같은 분위기의 인물들이 남북한 양쪽에 하나씩 있었다.

바로 조철봉과 강진수였다.

 

둘은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서로 멀뚱거리고만 앉아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어색한 것 같지는 않았다.

 

회담은 6시반 쯤이 되었을 때 분위기가 최고조에 올랐다.

 

시멘트의 선적일을 한국측이 한달 당겨 주기로 합의하자 북측 대표인 외교부 부부장 한정철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때 잠깐 회의실 밖으로 나갔던 북한측 대표 강진수가 들어왔다.

 

강진수의 표정은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있었다.

 

한정철이 웃음띤 얼굴로 맞았지만 강진수는 그냥 외면했다.

 

그것은 강진수의 비중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과 같다.

 

조금 무안한 표정이 된 한정철이 작게 헛기침을 했고 방안 분위기가 쑤욱 가라앉았다.

 

그때 제자리로 돌아온 강진수가 선 채로 앞쪽에 앉은 조철봉에게 말했다.

“조 의원님, 오늘 저녁에 위원장 동지께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하셨습니다.”

그 순간 북한측 대표단은 일제히 통나무처럼 굳어졌지만 한국 대표단은 서로의 얼굴부터 보았다.

 

그리고 강진수와 조철봉까지 번갈아 보았다.

 

아직 말뜻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그때 강진수가 말을 잇는다.

“지금 출발하셔야겠습니다. 준비하시지요.”

“저기….”

한국측 대표단 일원인 통일부 협력국장 김창호가 나섰다.

 

김창호가 긴장한 듯 눈을 크게 뜨고 강진수에게 묻는다.

“저기, 저희들도 같이 갑니까?”

“어딜요?”

하고 강진수가 멍해진 얼굴로 묻자 김창호는 헛기침을 했다.

“초대하셨다면서요. 그래서….”

“누굴 초대했다구요?”

그렇게 되묻더니 강진수가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의 존경하는 위원장 동지께서는 조철봉 의원 한분만을 초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따로 식사를 하시지요.”

머리를 돌린 강진수가 다시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조 의원님, 일어나시지요. 주석궁에서 위원장 동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철봉이 일어서자 한국측 대표 임상섭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섰다.

 

그러고는 조철봉을 본다. 다급해진 표정이다.

“조 의원님.”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임상섭이 입안에 괸 침을 삼켰다.

“저기, 미리 약속이 있으셨습니까?”

임상섭이 물었을 때 대답은 강진수가 했다.

“위원장 동지께서는 조 의원님이 제의하신 북남간 의원 교류에 대해서

 

신선한 발상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방안이 조용해졌고 강진수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저녁 위원장 동지께서 조 의원님과 식사를 마치시면

 

내외신 기자에게 발표를 하실 겁니다.

 

그래서 남한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주석궁으로 갑니다.”

강진수가 조철봉에게 눈짓을 하더니 발을 뗐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 모아졌다.

 

조철봉이 강진수의 뒤를 따라 나가다가 문 앞에서 몸을 돌려 임상섭에게 말했다.

 

태연한 표정이다.

“그럼 밥 먹고 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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