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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떴다, 조철봉 (3)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4

679. 떴다, 조철봉 (3)

 

 

(1941)떴다, 조철봉-5

 

 

“으으음.”

위원장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러고는 정색한 위원장이 조철봉을 본다.

“하룻밤에 대여섯번이란 말인가?”

“예, 위원장님.”

“그럼 그동안 안 싸겠군.”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어떻게 참는가?”

“예, 가끔은….”

“뭔가?”

젓가락을 내려놓은 위원장이 마치 핵실험 발사 결과를 듣는 것 같은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좌우의 노인들은 아직도 벽의 금강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봉우리를 열심히 세는 것 같았다.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고등학교 교가를 거꾸로 부르기도 합니다, 위원장님.”

“고등학교 교가를?”

따라서 말한 위원장의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왜 하필 고등학교 교가인가?”

“유행가는 쉬워서 금방 거꾸로 부를 수가 있거든요, 위원장님.”

“그렇군.”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결정한 것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어.”

“예에?”

하고 조철봉이 되물었고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졌다.

 

겉으로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세는 것 같았어도 귀는 모두 이쪽에다

 

집중시키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부위원장이라는 노인이 즉각 맞장구를 쳤고 나머지도 한마디씩 했다.

 

그때 위원장이 조철봉에게 물었다.

“어때? 해 보겠는가?”

“하겠습니다, 위원장님.”

대답은 금방 했지만 조철봉은 기분이 찜찜했다.

 

조금전까지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위원장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조 의원, 오늘 밤 여자하고 말이야.”

“아, 아닙니다, 위원장님.”

질색을 한 조 의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그러고는 머리까지 젓고 나서 덧붙였다.

“잘 아시겠지만 전 참는 데 선수입니다.

 

위원장님, 넣고도 참고 넣지 않고도 잘 참습니다.”

“으으음.”

위원장의 목구멍에서 다시 신음 같은 탄성이 울리더니

 

곧 입을 벌리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노인들도 따라 웃었다.

 

위원장이 웃음을 그치자 노인들의 웃음도 일제히 그쳤다.

“이봐, 나도 인간이야.”

다시 불쑥 위원장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이런 성품의 인간을 겪어본 적이 있다.

 

착상이 기발하고 머리가 좋다.

 

상대방의 약점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데 용의주도하기도 했다.

 

옛날 조철봉이 자동차 영업사원이었을 때 고객으로 만난 몇 명이 이런 성품이었던 것이다.

 

위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한다네. 난 오늘 동무한테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

조철봉은 위원장의 시선을 맞받았다. 진심이다.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지만 지금 위원장의 눈을 보면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때 위원장이 말을 잇는다.

“내가 조 의원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직 말 안 했어.

 

그건 믿음이야.

 

조 의원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불러온 것이라네.” 

 

 

(1942)떴다, 조철봉-6

 

 

“이 부총무십니다.”

하고 김경준이 전화기의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막으면서 말했을 때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수석부총무 이경필이다.

 

조철봉이 남북의원협의회를 제안하겠다고 했을 때 비웃던 자.

 

그날 의원총회에서 조철봉이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이경필이 뒷자리에서 웃는 모습도 방영되었다.

다만 부대표 안상호만이 조철봉을 위로해주었다.

 

물론 속으로야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겠지만 겉은 정중했고 차분했다.

 

그러고는 조철봉의 등을 토닥이면서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게 정치인이다.

 

속을 내보이지 않고 아픈 데, 가려운 데를 어루만지고 긁어 주는 것이 정치인인 것이다.

 

우습다고 실컷 웃고 저 잘났다고 뽐내고, 위세 부리는 놈이 오래가는 꼴 못 보았다.

 

조철봉은 기다리고 있는 김경준한테서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아, 조 의원.”

이경필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쫓기는 놈 같다.

 

열띤 목소리로 이경필이 말을 잇는다.

“뉴스 봤는데, 이거 어떻게 된 일이오?

 

내가 오늘 아침에 통화하려고 얼마나 애쓴지 압니까?”

쉴 틈도 없이 말이 이어진다.

“그런 일 있으면 나한테라도 보고를 해주셔야지,

 

어떻게 그런 일을 혼자서 진행시키고 있단 말이오?”

“…….”

“조 의원 듣고 있습니까?”

“그래서.”

마침내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 지시를 하나씩 받아서 일을 진행시켜야 된단 말이오?”

“아니, 조 의원.”

놀란 이경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갑자기 위원장이 만나자고 하는데 한국당 부총무 허락을 받아야 되었단 말이지요?

 

내가 오늘 오전에 위원장하고 만나기로 되었는데 그 말을 전하지요.”

“아니, 이보쇼.”

“당신은 남북의원협의회 제안에 비웃었던 자야.

 

내가 제안할 때 당신이 낄낄거리고 웃는 장면도 다 찍혔지 않소?”

“아니, 그러니까.”

“당신한테는 이야기할 필요 없으니까 통화 끝냅시다.

 

부대표께 보고를 할 테니까.”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철봉이 김경준을 보았다.

“부대표한테 연락해.”

“예, 의원님.”

정색한 김경준이 어깨를 부풀리면서 다시 전화기를 든다.

 

김경준도 통쾌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부대표 안상호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금방 연결이 되었다.

“아아, 조 의원.”

안상호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래, 뉴스는 보았는데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갑자기 위원장이 보자고 하셔서.”

하고 조철봉이 상황을 차근차근 말해주자 다 듣고 난 안상호가 소리내어 웃었다.

“우리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조 의원이 국회를 대표해서 위임장을 받아오세요.

 

30분 내로 당대표와 상의해서 조 의원께 대표권을 위임한다는 공문을 보내드리지요.”

그러더니 다시 웃었다.

“오늘 계속해서 조 의원이 위원장하고 어깨동무한 사진이 방영되고 있어요.

 

조 의원은 떴어.”

“감사합니다. 부대표님.”

안상호가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조 의원은 앞으로 큰일을 하게 되실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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