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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떴다, 조철봉 (2)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4

678. 떴다, 조철봉 (2)

 

 

(1939)떴다, 조철봉-3

 

 

 

“여어, 조 의원.”

응접실로 들어선 김정일 위원장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불렀다.

 

기다리고 서있던 조철봉이 먼저 허리를 굽혀 절을 했을 때 다가선 위원장이 손을 내밀었다.

 

위원장 뒤에는 사진에서도 여러번 본 북한 고위층이 셋이나 더 서있다.

 

조철봉의 손을 쥔 위원장이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서울에서 물 좋은 카바레가 어디야? 내가 변장을 하고 조 의원 따라서 가보게 말야.”

“예. 그, 저.”

당황한 조철봉은 이마에서 진땀이 솟았고 목까지 메었다.

 

위원장 뒤에 선 고위층 셋은 못들은 것 같다.

 

얼굴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다.

 

지난번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비슷한 말을 했을 때는 근처에 있던 당 대표,

 대변인까지 다 웃었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 주기로 하고 자, 밥 먹으러 가자고.”

위원장이 조철봉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아 안았다.

 

그 자세 그대로 응접실을 나가면서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몸이 굳어져 있었으므로 눈동자만 굴린 것이다.

 

이 장면을 TV로 방영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이 사진 한방이면 뜬다. 당 대표로 추천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원장이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같이 걸어간 남한 인사가 있었는가?

 

낫싱, 전혀, 전무다.

 

이 사진 한방이면 신세가 트인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일어났다.

 

카메라 플래시, 복도 모퉁이를 돌자 대기시켜 놓았던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것이다.

 

섬광은 계속해서 터졌다.

 

수십명의 카메라맨 또한 이런 대특종 장면을 보자 흥분한 것이다.

 

누르고 또 누른다.

 

마치 기관포탄 세례를 맞는 전장 같다.

“자, 이제 가자고.”

잠깐 멈춰섰던 위원장이 조철봉의 어깨를 감은 손에 힘을 주더니 다시 옆으로 끌었다.

 

기자들은 감히 일센티도 따라오지 못했으므로 주위는 금방 조용해졌다.

 

옆쪽 복도로 들어선 위원장이 팔을 내리더니 조철봉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내일 아침에 방금 찍은 사진은 전 세계로 보도될 거네.”

조철봉은 눈만 깜박였고 위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조 의원, 동무는 이제 얼굴 팔려서 카바레 다 갔어.”

“예에?”

하고 조철봉이 외마디 소리처럼 물었지만 지금 그것 걱정할 상황인가?

 

조금 정신이 돌아온 조철봉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감동한 것이다.

 

지금 이 기분이라면 북한으로 국적을 바꾸라고 해도 바꾸겠다.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제의를

 

직접 위원장한테서 받고는 아니라고,

나는 헌법을 지키며 어쩌구 할 정신이 있는자가 있다면 인간이 아니다.

 

로봇이다.

 

인간은 감정이 있어야 된다.

 

감동을 받고 움직여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또한 후회하고 뉘우쳐야 발전이 된다.

 

주변 상황은 무시한 채 친일파 명단을 내놓는 인간들이 문득 이런 경우를 닥쳤을 때라면

 

어떤 처신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을 때 어느덧 조철봉은 식당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자, 앉자고.”

위원장이 원탁에 앉으면서 조철봉에게 자리를 권한다.

 

자리에 앉은 조철봉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원탁에는 이미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술병도 놓였다.

 

주위에 둘러앉은 사내는 위원장까지 모두 다섯명. 모두 엄숙한 얼굴,

 

사진에서 보던 고위층이다.

 

그런데 여자는 없다.

 

 

 

 

(1940)떴다, 조철봉-4

 

 

저녁 식사 자리여서 밥과 국, 찌개에다 생선구이도 놓여졌지만 차림새는 조촐했다.

 

전주식 한정식 백반을 먹어본 조철봉으로서는 오히려 전주식 상차림이 더 풍성했다.

 

어쨌든 찬 가짓수에 신경이나 쓸 여유가 있겠는가?

 

또 맛이나 제대로 볼 만한 상황인가?

 

건성으로 씹고 떠먹는 시늉을 했지만 조철봉은 제 입에 뭐가 들어갔는지도 잘 몰랐다.

“저기 말야.”

옆에 앉은 고위층과 낮게 이야기를 나누던 위원장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에게 말했다.

 

입 안의 음식을 꿀컥 삼킨 조철봉이 위원장을 보았다.

 

음식을 덜 씹고 삼켜서 식도로 돌멩이가 내려가는 느낌이 온다.

“내일 오전에 우리 의원들을 만나고 가게. 50명이야.”

위원장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의 노동당 대의원들이지.

 

대표는 여기 앉아있는 김동남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야.”

하고 위원장이 옆에 앉은 70대쯤의 노인을 가리켰다.

 

노인이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은근하게 웃는다.

“조 의원은 내일 김 대표한테서 위임장을 받게 될 거야.

 

한국의 의원들을 대표해서 말이지.”

그러고는 위원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리고 물론 나도 그전에 조 의원의 북남의원협의회 구성에 대한 제안을

 

환영한다는 발표를 하겠네.”

“감사합니다.”

마침내 조철봉이 앉은 채로 위원장을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이마에 국그릇이 닿았다.

“한국 측도 환영할 것입니다.”

“내가 왜 조 의원을 뜨게 만들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아나?”

 

하고 불쑥 위원장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입 안에 음식이 없었지만 침의 일부가 숨구멍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재채기가 터질 뻔했다.

 

조철봉이 붉어진 얼굴로 머리부터 저었다.

“모릅니다. 위원장님.”

“동무는 약점투성이야.”

위원장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지만 조철봉의 얼굴은 빳빳하게 굳어졌다.

 

다시 방 안에 위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잘난 의원들 틈에서 요즘 마음고생이 많지? 오라는 모임도 없고 말야.”

그 순간 조철봉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마치 어릴 때 헤어진 아버지를 35년 만에 만나

 

그동안 네가 얼마나 고생했느냐는 말을 듣는 것 같다.

“난 동무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도 대충 알고 있어.

 

그리고 중국에서 북남합자 회사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도 말야.”

그러고는 위원장이 정색했다.

“동무는 수단이 좋아. 아마 남조선 사회에서 그만큼 벌었다면 뇌물도 많이 먹였을 거야.

 

그런데 뇌물 사건이 한 번도 들통 나지 않았더군.

 

거기에다 여자를 그렇게 많이 건드렸어도 덤벼드는 여자도 없고,

 

그건 다 유부녀이기 때문인가?”

말이 조금 헛나갔지만 위원장이 물었으니 대답 안 할 수가 없다.

 

조철봉이 먼저 작게 헛기침을 하고 대답한다.

“아닙니다. 위원장님. 모두.”

“모두 뭔가?”

“만족시켜줬기 때문에.”

“만족이라니? 무엇을 말인가?”

하고 위원장이 되물었고 좌우에 벌려 앉은 노인들은 제각기

 

밥그릇을 내려다 보거나 벽에 그려진 금강산 그림을 보거나 했다.

 

그때 위원장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대답한다.

“예, 모두 하룻밤에 대여섯번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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