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 조의원(12)
(1935)조의원-23
“으으음.”
조철봉의 이야기를 듣고 난 김경준이 뱉은 신음소리다.
신음을 뱉고 난 김경준이 눈을 치켜뜨고 조철봉을 본다.
“의원님.”
김경준의 두 눈이 반짝였고 목소리는 떨렸다.
“의원님은 운이 트이셨습니다. 그야말로 운수대통입니다.”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의원님께서 지금까지 받으신 설움을 단 한방에 날리시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
김경준의 분위기에 휩쓸린 듯 마침내 조철봉의 입도 열렸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는 거지.
그 잘난 호바드 박사와 징글벨 대학 출신들한테서 말야.”
“의원님은 한국 대통령한테서 격려 말씀을 들으신 데다
북한 위원장하고도 독대를 하게 되신 겁니다. 이런 우연이 없습니다.”
그 순간 조철봉의 얼굴에 희미하게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간 것을 김경준은 보지 못했다.
김경준이 혼잣소리처럼 말을 잇는다.
“어쨌든 의원님의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로 그거야.”
이제는 정색한 조철봉이 김경준을 보았다.
“강진수가 날 불러낸 건 우연이 아냐.
내가 참관인으로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강진수가 여기에 왔는지도 몰라.”
김경준이 긴장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위원장 독대 카드를 갖고 말이지.
그런데 내 이용가치는 뭘까?
나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도 그런 제의를 받으면 누가 거부하겠어?
그런데 왜 나를 택한 것이지?”
“그건 차츰 알게 되시겠지요.”
하더니 김경준이 머리를 저었다.
“다른 거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의원님, 이건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군.”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그때서야 소파에 등을 붙였다.
김경준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말이 맞다.
이런 제의를 거부할 위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다음 날, 강진수가 예상한 대로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각각 본국의 지시를 받은 양측 대표는 일주일 후에 평양에서
마지막 합의를 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회의가 끝날 무렵, 잠깐 회의실 밖 복도로 나와 있던 조철봉은 다가오는 강진수를 보았다.
강진수는 조철봉을 만나려고 나온 것 같다.
“저도 담배 한 대 피울까요?”
하면서 강진수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조철봉은 국산 담배를 건네주었다.
“북·남 간 의원 모임을 하나 만들어 보시지요.”
조철봉이 내민 라이터에 담뱃불을 붙인 강진수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남한에서 그렇게 제의를 해 보시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했다가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면 당장에 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당에서도 미친놈 대접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 간 의원 모임은 없었고 그럴 체제도 아니었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일단 제의를 해놓고는 미친놈 취급을 받으면서 평양으로 온단 말이지요?
그럼 위원장님이 날 불러서 격려해 주시고….”
그러면 당장에 뜬다.
대통령 후보다.
(1936)조의원-24
베이징에서 돌아온 조철봉은 먼저 한국당 수석부총무 이경필을 찾아가 귀국보고를 했다.
조철봉이 회담 때 발언 한번 못 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도 이경필은 정색하고 듣는 척한다.
보고를 마친 조철봉이 문득 머리를 들고 이경필을 본다.
의원회관의 이경필 의원실 안이다.
이경필은 조금 전부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
“저기, 부총무님.”
조철봉이 긴장하고 이경필을 보았다.
“제가 요즘 줄곧 생각한 것입니다만,
남북 간 의원 협의회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데요?”
“예?”
자꾸 손목시계를 보던 이경필이 갑자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조철봉에게 물었다.
“뭐라고요?”
“남북 간 의원 협의회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걸 만들면 어떨까 하고.”
“우리야 국회의원이 있지만 북한은 그게, 그것이.”
말을 그친 이경필은 짜증이 치민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노동당 대의원이 있죠.”
“글쎄, 뜬금없이.”
그러더니 이경필이 갑자기 심호흡을 했다.
화를 삭이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조 의원, 의욕은 좋은데 북한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아니, 쓸데없는 짓이라고 조롱만 받을 겁니다.
그게 필요했다면 지난 정권에서 진즉 만들었겠지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그만둡시다.”
“제가 내일 의원 모임에서 그런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의원 모임에서요?”
눈을 둥그렇게 떴던 이경필이 어깨를 내리고 길게 숨을 뱉으면서 말한다.
“조 의원, 내가 생각해서 말씀 드리는데 그런 말씀 안 하시는 것이….
우리 한국당 의원들은 같은 식구니까 괜찮지만 말요.
하지만 민족당 의원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왜요?”
“뜬금없는 발의고,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들어줄 것 같습니까?
지난 정권에도 없었던 일인데 말요. 더구나.”
더구나 다음에 이어질 말은 조철봉도 이을 수 있었다.
더구나 조철봉 같은 초짜 비례대표 끝번의 발의가 먹힐 것 같으냐는 말일 것이다.
당 대표는 물론 대통령이 제의해도 들어 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때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한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어도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떠 보시겠다면.”
마침내 쓴웃음을 지은 이경필이 말했다.
“해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저는 바빠서.”
하고 이경필이 서둘러 일어섰으므로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한국당 당선자 모임에서 조철봉은 남북 의원 협의회 구성을 제안했다.
모두 시쳇말로 뻥한 얼굴이 되어서 조철봉을 바라보았는데 몇 명은 수군대며
웃기도 했고 임기택 의원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머리까지 저었다.
의원들의 반응이 하도 냉담했고 어이없어하는 사람들까지 있었기 때문에 부대표 안상호가
서둘러 단상으로 나와 조철봉의 어깨를 감아안고 같이 내려와야 했다.
조철봉은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의원들이 자신을 완전히 미친놈 취급 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임기택과 박성규 등은 조철봉을 힐끗거리면서 노골적으로 웃는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회의원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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