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 조의원(9)
(1929)조의원-17
“누구요?”
문으로 다가간 김경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시간에 찾아온 집 주인한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자신한테 화가 난 것이다.
그때 문 밖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김경준은 잘 못 들었다.
그래서 문의 고리를 풀고는 왈칵 문을 열었다.
“아니.”
그 순간 김경준의 입에서 외침이 나왔다.
“아니, 의원님.”
조철봉이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 너무 늦었나?”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이 말했다.
“그래 너무 늦었군.”
제 말에 제가 대답했을 때 겨우 정신을 차린 김경준이 묻는다.
“웨, 웬일이십니까?”
“괜찮다면 잠깐 집안에 들어가게 해주겠어? 10분 안에 나가겠네.”
“들, 들어오시지요.”
누구라고 거절하겠는가?
비켜선 김경준은 그때서야 제가 가운 차림이라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그래서 조철봉을 들여놓고 안쪽을 보았더니 유지연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안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들어갔을 것이었다.
“누추합니다만 여기 앉으시지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권한 김경준이 굳어진 얼굴로 앞쪽에 앉는다.
“너무 늦었어.”
자리에 앉으면서 조철봉이 다시 말했을 때 안방에서 유지연이 나왔다.
외출복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왔는데 화장기가 없는 얼굴하고 안 어울렸다.
“아이고, 밤늦게 실례가 많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조금 과장된 표정으로 말하더니
유지연의 인사를 받고 나서 다시 앉았다.
유지연은 서둘러 주방으로 갔지만 황당한 모양이었다.
냄비 뚜껑을 열었다가 냉장고 문을 열고 닫았다.
주방이 바로 두 발짝 뒤여서 냉장고 안 냄새까지 다 풍겨왔다.
그때 조철봉이 입을 열였다.
“나도 오늘 오후에야 보고를 받아서 말이야. 그래서.”
그러고는 조철봉이 가슴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놓았다.
“여기 3억원이야, 인상된 전세금을 내든 새집을 얻건 김 보좌관이 알아서 써.”
그 순간 하얗게 얼굴이 굳어진 김경준을 향해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먼저 내 식구부터 챙기고 나서 바깥일을 해야지. 그게 내 사업 스타일이야.”
“의원님.”
하고 김경준이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지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국회의원 할 동안 성심껏 도와주면 돼.
그 대가를 먼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야.”
“의원님.”
“내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많이 도와줘야 돼, 김 보좌관이.”
“의원님.”
“그럼 난 이만.”
하고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냉장고 앞에서 굳은 것처럼 서있던
유지연이 다가와 조철봉의 앞에 섰다.
“의원님.”
유지연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은 유지연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아이고, 사모님한테서 처음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군.”
웃음 띤 얼굴로 말한 조철봉이 금방 정색했다.
“이제 됐습니다. 그럼.”
조철봉이 유지연을 향해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1930)조의원-18
외교부 차관 임상섭 앞에 다가선 이재영이 입을 열었다.
“한국당에서 옵서버로 조철봉 의원을 보낸다고 합니다.”
“조철봉?”
임상섭의 눈썹이 올라갔다.
붉고 윤기가 나는 얼굴, 굵은 눈썹과 또렷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이 다부진 인상이었다.
“조철봉이 누구야?”
했다가 임상섭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아, 그 카바레 자주 갔다가 대통령께 격려를 들은 작자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동북아국장 이재영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이재용과 임상섭은 이번 남북 비공식 경제협의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통일부 협력국장 김창호까지 셋이 한국측 대표단이다.
“도대체 그런 작자를 왜 보내는 거야?”
임상섭이 묻자 이재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조철봉은 안상호 계열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6월 전당대회에 대비한 안상호의 자파 의원 길들이기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조철봉이 내놓을 만한 경력이라고는 남북합자사업추진 정도니까요.”
“그까짓 합자사업.”
내뱉듯이 말한 임상섭이 머리를 들고 정색했다.
“그거 괜히 회담에 끼어들어서 콩이냐, 팥이냐 해대지 않을까?”
“조철봉이 며칠 전에 칭다오에 다녀갔습니다.
칭다오 영사관에서 보고를 해왔는데요.”
임상섭의 시선을 받은 이재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조철봉이 바닷가 별장에다 여자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벌이려다가 취소하고
호텔방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입니다.
영사관에서 의례상 안부 전화를 했더니 화들짝 놀라 옮겼다는군요.
그냥 놔두었다면 섹스 파티를 했을 겁니다.”
“저런, 저런.”
임상섭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거 터졌으면 한국당이 뒤집혔을 텐데. 그냥 놔두지 왜 전화를 했지?”
“국회의원이 와 있는데 연락 안 할 수가 있습니까?”
“문제야.”
다시 혀를 찬 임상섭이 이재영을 똑바로 보았다.
“이번 베이징에서는 아예 여자 하나를 붙여서 호텔방에 묶어둘 수가 없을까?
나중에 생색이나 내라고 하면서 말야.”
“연구해보겠습니다.”
“도대체 개나 소나 다 정치를 한다고 나섰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원,”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임상섭은 전화기를 들고 귀에 붙였다.
“예, 임상섭입니다.”
“차관님, 김창호입니다.”
이번에 한국측 대표단 일원이 된 통일부 협력국장 김창호였다.
김창호하고는 여러 번 남북회담 실무를 함께 챙긴 사이여서 임상섭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아, 김 국장. 마침 전화 잘 주셨소. 내 방에 이 국장도 와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 들으셨겠지요?”
“뭐요?”
해놓고는 임상섭이 앞에 선 이재영을 향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것 보라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때 김창호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당 34번 말씀입니다. 카바레 의원.”
“으흐흐.”
김창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상섭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겨우 참은 임상섭이 입을 열었다.
“마침 우리도 그 이야기를 하는 중이오. 하지만 신경 쓸 것 없어요. 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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