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72. 조의원(8)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30

672. 조의원(8)

 

(1927)조의원-15

 

 

“그거, 생색도 안나는 일인데요.”

조철봉의 말이 끝났을 때 김경준이 말했다.

 

응접실에는 조철봉과 최갑중, 비서관 박동일까지 넷이 모여 앉았는데

 

방금 남북 경제협의회에 옵서버로 참가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눈만 크게 뜬 조철봉에게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비공식 회담이라 언론에도 나중에야 결과나 뜰 뿐이고 그거.”

“그거라니?”

조철봉이 묻자 김경준은 입맛부터 다셨다.

“지금까지 10여차례 그 회담을 했지만 계속 당하기만 해서요.

 

솔직히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슨 얘기야?”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된통 바가지를 쓰니까요. 회담에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김경준이 설명을 했다.

 

장관급회담에서 기본 합의된 내용을 점검, 보완하는 것이 비공식 회담인 것이다.

 

따라서 합의 사항을 지키지 못한 질책은 다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내막을 안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고 최갑중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우리한테 일을 준 것이군.”

하고 최갑중이 혼잣소리까지 했다.

 

김경준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의원님이 참석 안 하셔도 됩니다.

 

옵서버 역할이니까요.

 

부총무는 경험 쌓으라고 했지만 그런 경험 쌓지 않으셔도 됩니다.

 

체면만 깎이게 되실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한국당에서는 그 회담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럼 민족당은?”

“그 사람들은 가끔 나갔지요.”

“이번에도 나갈까?”

“제가 듣기로는 이번에는 안 나간답니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정색하고 김경준을 보았다.

“나갈 테니까 김 보좌관이 준비해줘요.”

“예? 참석하신다고요?”

김경준보다 먼저 최갑중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 왜, 안 나가셔도 된다는데.”

“시끄러.”

해놓고 다시 조철봉이 정색했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 내보낼 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당신들은 아직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

셋은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듯이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리가 무서워져. 겁도 나고. 그, 3D란 거 있지? 그게 뭐더라?”

하고 조철봉이 먼저 최갑중을 보았다가 무안한 표정이 되어 시선을 김경준에게로 옮겼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와락 눈썹을 모으고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사람 약 올리느냐는 시늉이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경준이 대답한다.

“예, 디피컬트(Difficult), 데인저(Danger), 더티(Dirty),

 

그러니까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맞아.”

해놓고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나는 내 분수를 알아. 그러니까 한국당에서 3D에 해당되는 일부터 맡아서 할 거야.

 

생색이 안 나도 좋아. 까짓것.”

그러고는 생각난 듯 덧붙였다.

“그럴수록 더 좋지.”

그러자 최갑중이 먼저 머리를 끄덕였다.

 

조철봉의 말뜻을 금방 이해한 것이다.

 

생색이 안 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을수록 좋을 것이었다.

 

며칠 전 칭다오로부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조철봉은 한숨을 계속 내뱉었다.

 

한 시간동안 아마 30번은 뱉었을 것이었다.

 

오입하려다가 못하고 나오는 심정은 최갑중이 잘 안다. 

 

 

(1928)조의원-16

 

 

욕실에서 나온 김경준이 응접실 소파에 앉았을 때 유지연이 다가와 섰다.

“커피 줄까?”

“아니, 됐어.”

김경준이 머리를 젓자 유지연이 옆에 앉는다.

 

밤 11시10분. 오늘도 김경준은 10시반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표정은 어두웠고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참.”

하고 김경준이 목소리를 더 낮추더니 눈으로 현관쪽 방을 가리켰다.

“오늘은 선미가 일찍 들어왔네?”

머리를 끄덕여 보인 유지연이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조 의원 어때? 까다롭지는 않아?”

“아니, 별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요즘은 잠잠해졌어. 비꼬는 글도 없어졌고.”

“다 그런 거야.”

“그래도.”

했다가 말을 멈춘 유지연이 가늘게 숨을 뱉는다.

 

20평형 아파트 안이어서 두 발짝만 떼면 안방이고 하나뿐인

 

딸 선미의 문간방은 세 발짝 앞이다.

 

고2짜리 선미는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어가는 수재였으므로 두 부부의 희망이자 자랑이다.

 

잠시 좁은 집안에는 정적이 덮였다.

 

선미의 방도 조용하다.

 

김경준이 들어왔을 때 문을 열고 인사만 하고는 다시 들어간 것이다.

 

그때 유지연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를 죽여서 겨우 알아들었다.

“저기, 대출 알아봤어?”

“응, 그런데 어려워.”

김경준이 외면한 채 대답했다.

 

유지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음 달이면 아파트 계약기간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계속 눌러 살려면 전세금 3천만원을 더 줘야 한다.

 

집주인이 3년 동안 형편을 봐주었기 때문에 집을 비우든지 3천만원을 더 내고

 

전세 계약을 다시 해야만 한다.

 

그때 김경준이 입을 열었다.

“선미, 과외 못간 거지?”

조심스럽게 묻자 이번에는 유지연이 외면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표시였다.

 

김경준은 길게 숨을 뱉었다.

 

다시 집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형편이 이렇게 된 것은 김경준이 5년 전에 정치잡지를 발행한 것이 원인이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월간 정치잡지를 창간했던 김경준은 6개월 만에

 

15억원 가까운 빚을 지고 사업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그때부터 학원 강사, 국회의원 인턴사원, 택배일까지 하면서 빚을 갚았는데

 

유지연은 지난달까지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

 

그때 유지연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조 의원한테 어떻게 안될까? 그 사람 돈 많다던데.”

“안 돼.”

한마디로 말을 자른 김경준이 머리까지 저었다.

“그 사람, 어떻게 돈을 번 사람인지 알아? 그런 사람한테서는 안 돼.”

“월급 담보로 대출은 안 돼?”

“그것도 당장은 어렵겠어.”

“집주인이 오늘 찾아온다고 했는데 안 왔어.”

유지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떡하지? 당신한테 걱정 안 시키려고 했는데 집주인이 화가 나서

 

오늘 만나서 결정을 하자고 했어. 집 비우라고.”

“…….”

“시골로 이사 갈까? 당신은 여기서 하숙을 하든지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그러자 유지연의 시선이 문간방으로 옮겨졌다.

“선미한테 미안해서 미치겠어. 쟤가 과외비 없어서 못 가는데도 아무말 안 해.”

그때 벨이 울렸으므로 둘은 깜짝 놀랐다.

 

집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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