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60. 전향 (9)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28

660. 전향 (9) 

 

(1904)전향-17

 

 

그 순간 오지현의 콧구멍이 희미하게 벌름거렸다.

 

입은 꾹 다물었고 눈을 똑바로 뜬 상태에서 웃음을 참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본인은 표시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철봉은 안다.

 

조철봉의 조를 강하게 발음하면 그것이 철봉같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발음의 강약을 조절해 왔는데 오늘 조철봉은 술기운도 뻗치는 터라 강하게 나왔다.

 

 예상 했던 대로 콧구멍을 보니 분위기가 밝아지는 데 일조를 한 것 같다.

“회사 다닌다고?”

조철봉이 묻자 오지현은 피식 웃었다.

“알바 다녀요. 이곳저곳.”

“그래? 재밌어?”

“재미는요? 답답하죠.”

“답답하다니?”

“이런 데 와서 용돈 버는 것도요.”

“그렇군.”

솔직한 성품 같았고 거침없이 말을 뱉는 것이 귀여웠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둥근 얼굴형에 쌍꺼풀 없는 눈이 맑았고 눈초리가 조금 솟아서

 

다부져 보였지만 웃는 얼굴이 밝고 풍성했다.

 

조철봉의 기준으로 보면 웃을 때 눈이 그대로인 채 번들거리는 인간은 위선자일 확률이 높다.

 

웃을 때의 얼굴이 좋으면 만복이 온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은 모두 수백년의 경험에서

 

묻어나온 것이다.

 

조철봉은 잔에 술을 채웠다. 옆에 앉은 오지현이 그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다.

 

그것이 일부러 하는 짓이 아니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만족한 한숨이다. 경험이 많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얼른 제가 술을 따르려고 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뭘 하세요?”

하고 오지현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만족했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장소도 막론하고 싸잡아서 ‘오빠’라고 부르는 통에

 

언젠가는 조철봉이 육십이 넘은 선배를 모시고 룸살롱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0대 파트너한테 오빠라고 불린 선배가 화를 내는 통에 술도 못 마시고 나와야했던 것이다.

 

좀 까다로운 선배이긴 했다. 그러나 막내딸 또래가 ‘오빠’라고 불렀을 때

 

젊어 보이는 모양이라면서 좋아했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조철봉은 오지현이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른 것에 높게 점수를 주었다.

 

오지현의 점수는 점점 더 높아지는 중이었다.

 

조철봉이 오지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난 무역회사 한다.”

“그럼 아저씬 사장?”

“그런 셈이지.”

“아저씨 돈 많아요?”

“네 용돈 줄 만큼은 있어.”

“그럼 한 달에 두 번쯤 만나면 안 될까요?

 

아니, 세 번까지는 돼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이틀 겹쳐도 되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오지현이 시선을 맞받았다.

 

오지현도 정색하고 있다.

 

선생님과 유전자에 대해서 토론하는 분위기다.

“아저씨하고 연애 하는 거 말하는 건데.”

“연애?”

“네, 데이트요.”

그러더니 유전자 법칙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는 거요.”

“으음.”

마침내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다시 길게 숨을 뱉었다.

 

이번에는 황당한 한숨이다. 빠르다.

 

요즘은 반년마다 세대가 달라진다는 말도 있었는데 지금 실감하는 것 같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자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

 

그러니까 한 달에 말이다. 그렇지, 한 달에 세 번.” 

 

 

(1905)전향-18

 

 

“150만원”

오지현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 순간 조철봉은 감동했다.

 

조철봉은 자주 감동을 받는 인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평범한, 조철봉식으로 표현하면 말도 안 되는 일에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지나가는 차량도 없는데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미성년자로 보이는 학생에게 담배를 안 파는 구멍가게 아저씨,

 

갑자기 인사를 하는 이웃집 아이, 길을 물었을 때 멈춰서서 성의 있게 알려주는 아줌마한테서도

 

감동을 받는 것이다.

삭막하게 살다 보니까 당연한 일에 감동을 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렇다.

 

오지현이 부른 150만원은 한 달에 세 번 만나는 값으로는 적절한 가격이다.

 

그러나 만일 조철봉이 한국보다 아직도 인건비가 10분의1쯤으로 싼 중국에서

 

아가씨를 만나 같은 질문을 했다면 십중팔구 한화로 300만원은 불렀을 것이다.

 

한국 오지현급은 500 이하로는 안 내려간다.

 

그런데 오지현이 150을 부른 것이다. 적당한 가격이며 적절한 요구인데도

 

조철봉이 감동을 받은 것은 곧 오지현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흔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300이나 한국의 500 이상은 선수(?)들 기준이다.

보통 여자들한테는 제의할 기회도 없었으니 당연히 오퍼를 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늘 딱, 150으로 받게 되었으니 감동을 먹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오입쟁이가 선호하는 기호 1번은 평범한 여자다.

 

프로가 프로를 좋아한다는 말은 위선이며 허세며 사기다.

 

죽으려고 기를 쓰는 수작이다.

 

제명에 못 죽는다. 다시 조철봉식 견해를 빌리면 프로일수록 보통 여자를 더 밝힌다.

 

그래야 복서가 3분 뛰고 1분 링사이드에서 쉬는 형국이 되어 만수무강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조철봉이 지그시 오지현을 본다.

 

호흡을 조정했기 때문에 콧구멍도 벌름거리지 않았고 차분한 표정이 되어 있다.

“좋아, 주지.”

조철봉은 가라앉은 제 목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숨을 마시고 뱉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언제부터 시작하지?”

“오늘요.”

이번에도 오지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똑바로 조철봉을 보면서 오지현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뭐가?”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 말예요.”

“지장 없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문득 머리를 들고 오지현을 보았다.

“계산해줄까?”

“아뇨, 됐어요.”

정색한 오지현이 상반신까지 뒤로 젖혔지만 조철봉은

 

지갑을 꺼내 테이블 밑에서 10만원짜리 15장을 세어 내밀었다.

“자, 받아.”

그러면서 힐끗 앞쪽을 보았더니

 

이강준은 파트너에게 귓속말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파트너는 이강준에게 몸을 붙인 채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잘 나간다.

“받으라니까?”

조철봉이 재촉하자 오지현은 테이블 밑에서 수표를 받았다.

 

얼굴이 굳어져 있었으므로 또 조철봉은 행복해졌다.

“저기, 친구한테 잠깐 이야기하고 올게요.”

정색한 오지현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오지현이 이강준의 파트너를 부르더니 같이 방을 나갔을 때

 

조철봉도 만족한 표정으로 긴 숨을 뱉었다.

“잘된 것 같군요.”

이강준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을 때 조철봉은 커다랗게 머리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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