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 전향 (8)
(1902)전향-15
그날 밤 조철봉은 이강준과 함께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즐기지만 적당한 선에서 그쳤던 조철봉이다.
담배도 6년쯤 전에 딱 끊었는데 조철봉으로서는 금주 금연을 한답시고
발광(이건 조철봉식 표현이다)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조철봉의 친구 하나는 항상 철학자나 정치인이 한 말,
또는 책에서 읽은 문자를 외웠다가 써먹는 놈으로 대만의 어떤 철학자가
인간이 왜 스스로에게 자꾸 제약을 가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 말을 필요할 때마다 인용했다.
법은 물론이고 도덕, 윤리, 하다못해 동네의 풍습,
가훈에까지 구속을 받고 살면서 또 스스로 금주, 금연, 금욕 하는 게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럴듯했지만 좀 시간이 지나자 우스워졌다.
그놈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도박과 경마에 빠져 이혼을 당하고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로 요양소에 들어가 있다.
조철봉은 안 한다고 마음먹으면 안 한다. 가차 없다.
담배도 6년 전에 문득 담배가 진정제 역할을 한다는 누구의 말을 신문에서 우연히 읽은 후에
그날부터 끊었다.
담배 없이 진정해보지 뭐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갑씩 18년 동안 피웠던 담배였다.
집 안의 탁자 위에 담배와 재떨이를 그대로 둔 채 사흘쯤 안 피우고 나서 치웠다.
끊는다고 작정한 즉시로 눈앞에서 다 치우는 쇼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담배 생각이 나면 그냥 움직였다.
생각이 간절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땐 ‘이런 거 하나 내 맘대로 못한다면 짐승이지 사람이냐’ 그렇게 되물었다.
금단 현상이 와서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지만 견디었다.
조철봉에게 이쯤은 작업할 때 고등학교 교가를 거꾸로 부르는 것에 비교하면
정말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혁대를 풀어놓고 술을 마셨다.
조철봉도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참고 참다가 어느 날 대포를 연거푸 발사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될 것이다.
가끔 이렇게 마시고 가끔 대포도 쏴야 기가 뚫린다.
“아니, 오늘은 이렇게 마시기만 하실 겁니까?”
폭탄주를 10잔쯤 마셨을 때 마침내 이강준이 물었다.
이강준도 장선옥의 망명으로 분위기가 고양된 상태여서 조철봉과 비등하게 마셨다.
그런데 마시다 보니까 뭔가 허전한 것 같았다. 웨이터한테 부르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놓았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강준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빙긋 웃었다.
“아니, 이 실장님이 재미를 붙이신 것 같네요. 여자 부를까요?”
“아, 그래서 제가 여기로 장소를 정했다는 거 아닙니까?
웨이터한테 미리 부탁도 했고요.”
붉어진 얼굴을 펴고 이강준이 웃었다.
“그래요. 저도 재미를 붙였습니다.
이곳만큼 자본주의 체제의 장단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장소가 없죠.”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탁자 밑의 벨을 누르자
웨이터는 5초도 되지 않아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자.”
조철봉이 딱 한마디를 했을 때 웨이터가 줄줄 말했다.
“세 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계올시다.
20대 후반인데 오피스걸입지요.
쭉쭉빵빵, 즉석 가능, 신분 보장됩니다.
그런데 이곳에 자주 나오죠. 용돈 버는 겁니다.”
“다음은?”
엄격한 입사 면접관처럼 조철봉이 묻자 웨이터는 말을 이었다.
“30대 초반의 유부녀, 역시 쭉쭉빵빵, 섹시합니다.
즐기는 타입이지만 용돈도 필요하겠지요.”
(1903)전향-16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웨이터는 단골에게 거짓말을 안 한다.
들통이 나면 거래가 끊기기 때문이다.
특히 조철봉 같은 특급 손님에게 사기를 쳤다가는 그야말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럼 마지막은?”
조철봉이 묻자 웨이터가 정색했다.
“예, 40대 이혼녀 팀인데 팽팽합니다. 섹시는 기본이고 쩐이 많습니다.
즉석 가능하고 이차도 물론.”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조철봉이 웨이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강준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강준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첫 번째하고 세 번째가 부담이 없겠는데요?
조 사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두 번째가 낫겠는데.”
그 순간 웨이터가 거들었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두 번째가 그 재미도 알고 쭉쭉빵빵인 데다 스릴이 있죠.”
“스릴이라니?”
조철봉이 눈썹을 모으고 웨이터를 보았다.
물론 알면서도 묻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낫겠다는 말도 분위기를 띄우려는 수작이다.
조철봉도 첫 번째나 세 번째를 고를 작정이었다.
그때 웨이터가 시선을 내리고는 우물거렸다.
“요즘 애인 없는 유부녀가 없거든요.”
“인마, 여기 나오는 여자만 봐서 그래. 내 마누라는 애인 없어.”
그래놓고 조철봉이 이강준을 보았다.
이강준은 싱글거리고 있다.
“이 실장님, 첫 번째로 하십니다.”
“맘대로 하세요.”
“그럼 데려와.”
조철봉이 말하자 웨이터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더니
30초도 안 되어서 아가씨 둘을 앞세우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아가씨였다.
오피스걸, 쭉쭉빵빵, 섹시, 용모도 미인 축에 든다.
“거기 앉으세요.”
하고 웨이터가 먼저 긴 머리 아가씨를 이강준 옆자리에 안내하더니
파마머리의 아가씨를 조철봉의 옆으로 데려왔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다.
언젠가 조철봉은 웨이터한테서 손님의 표정만 보면 좋고 싫고는
백발백중 맞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철봉이 겪어본 바에 의하면 사실이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저, 그럼.”
조철봉의 옆에 아가씨가 앉았을 때 웨이터가 허리를 펴고 물었다.
“합석하실까요?”
이미 합석한 상태인데도 그렇게 물은 것은 여자들 테이블의 술을
이쪽으로 가져와도 되겠느냐는 뜻이다.
즉 여자 술값도 이쪽에서 내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웨이터는 이제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나갔다.
놈씨들이 여자들에게 만족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방에 넷이 남았을 때 조철봉과 이강준은 각각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번 이강준을 겪어본 터라 조철봉은 제 파트너한테만 신경 쓰면 되었다.
이강준은 저 혼자 노는 스타일이었다.
“이름이 뭐야?”
조철봉이 묻자 다소곳이 앉아있던 여자가 시선을 들었다.
다행히 서클렌즈를 끼지 않아서 눈동자가 적당했다.
“오지현요.”
“이름 예쁘구나.”
요즘은 부모들이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짓는다.
조철봉이 제 자식 영일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가보았더니 여자애들
이름이 다 예뻐서 모두 탤런트가 될 애들 같았다.
조철봉 시절만 해도 이름 끝자가 ‘자’ ‘순’ ‘희’가 안 붙으면 여자 같지도 않았었다.
조철봉이 오지현의 시선을 받고 입을 열었다.
“난 조철봉이야.”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61. 전향 (10) (0) | 2014.10.05 |
---|---|
660. 전향 (9) (0) | 2014.10.05 |
658. 전향 (7) (0) | 2014.10.05 |
657. 전향 (6) (0) | 2014.10.05 |
656. 전향 (5) (0) | 2014.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