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56. 전향 (5)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25

656. 전향 (5) 

 

(1896)전향-9

 

 

“어제 혼자 집에 왔어.”

오전에 사무실에 들어선 최갑중에게 조철봉이 말했다.

“혼자 잤단 말이다.”

그제서야 최갑중이 눈을 크게 뜨고는 앞자리에 앉았다.

“아니, 왜요?”

조철봉과 장선옥이 회포를 풀도록 자리를 비켜준 최갑중이다.

 

최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난 이제 장선옥 안 만난다.”

놀란 최갑중이 몸을 굳혔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어제 장선옥을 본 순간에 느꼈어.”

“뭘 말입니까?”

“음모.”

그 순간 최갑중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소리내어 숨을 뱉었다.

 

최갑중이 누구인가?

 

조철봉보다는 못해도 눈치 빠르고 순발력 강하며 사기성 또한 뛰어난 인재다.

 

조철봉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장선옥이 딴 세상의 여자 같았다.”

“…….”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아. 그것이 장선옥에 대한 내 성의였으니까.”

조철봉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으로 끝이야.”

“그게 형님 마음 먹은 대로 될까요?”

불쑥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난 베이징을 떠날 거다.”

다시 놀란 최갑중이 이제는 입까지 딱 벌렸을 때 조철봉은 씩 웃었다.

“어제 장선옥한테 말했지.

 

너만큼 나한테 감동을 준 여자가 없다고.

 

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졌고 눈물이 철철 흘러나왔다고.”

“…….”

“널 위해서는 뭐든 다 내놓겠다고. 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랬더니….”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뜬 얼굴로 앞쪽 벽을 보았다.

 

제말에 제가 감동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장선옥은 감동을 먹은 것 같더라.

 

나중에는 주르르 눈물을 쏟더라니까.”

“…….”

“바로 이때야. 내가 사라질 때가 말이다.”

최갑중의 시선을 잡은 조철봉이 다시 씩 웃었다.

“공사 현장도 이제 다 장악했겠다,

 

합자사업도 궤도에 올라 있어.

 

이젠 내가 사라질 차례다.”

“어, 어디로 말씀입니까?”

“어딘 어디야? 한국이지.”

“그럼 저는….”

“넌 한국과 이곳을 왕래하면서 리베이트 챙겨야지, 인마.”

“그, 그렇긴 합니다만.”

“어떤 놈 좋은 일 시키란 말이냐? 리베이트는 꼭 챙겨야 돼.”

“그럼요.”

“난 오늘 오후 비행기로 떠난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최갑중 위쪽에 시선을 두고는 빙긋 웃었다.

“립 서비스를 해줄 곳이 아직 한 명 남아있어.”

“누굽니까?”

“김옥희.”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들면서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자마자 전화가 왔는데 오늘밤 집에 오라는 거야.”

버튼을 누르면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보고 싶어서 몸살이 날 것 같다고 말해줘야지.

 

오늘밤에 가겠다고 말이야.

 

그래야 갑자기 떠난 것이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1897)전향-10

 

 

“갑자기 발령이 난 것 같습니다.”

표정없는 얼굴로 강철국이 말했지만 목소리는 굳어 있다.

 

언짢은 기색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천리마무역 사무실 옆 건물의 커피숍에 장선옥과 강철국이 앉아 있다.

 

오전 11시반,

 

강철국은 사무실로 찾아오지 않고 커피숍으로 장선옥을 불러낸 것이다.

 

커피를 한모금 삼킨 강철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합자사업의 남한측 대표 임명권자는 남한 통일부장관이니까

 

내막은 알아봐야겠지만 이건 좀.”

갑작스러운 일이라 황당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강철국은 입을 다문 것 같았다.

 

거만한 인간이 가장 상처를 크게 받았을 때가 저보다 더 힘 있는 자 앞에서 무력해졌을 때다.

 

그것도 아랫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하면 처참해진다.

 

장선옥은 강철국이 바로 그런 경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감히 손도 내밀지 못하는 곳에서 내려진 인사조치,

 

그래서 일순간에 공작 목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남한 통일부장관을 원망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게 될 뿐이다.

 

장선옥은 외면한 채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조철봉은 갑자기 어제 오후에 서울로 돌아간 것이다.

 

이틀 전만 해도 일식집 동경에서 만났을 때 전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으니

 

급작스러운 인사 조치를 당한 것이다.

 

남한 체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장선옥은 조철봉이 북한에서처럼 끌려가

 

수용소에 넣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문제라면 오직 리베이트를 해 먹은 것이 적발된 경우일 것이다.

 

그때 강철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작전을 보류하도록 하지요.

 

우리도 상황을 파악하겠지만 장선옥 동무도 조철봉한테 연락을 해 보시도록.”

“네, 알겠습니다.”

장선옥이 외면한 채 대답했다.

 

어쨌든 조철봉한테서는 연락이 올 것이었다.

 

강철국이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김옥희 동무도 황당한 모양입디다.

 

어제 저녁에 집에 오겠다고 해서 저녁상까지 차려 놓았는데 갑자기 남한으로 돌아간 거지요.

 

전화도 해주지 않고 말이오.”

“소환된 것이 아닐까요?”

장선옥이 묻자 강철국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많지요.

 

그자가 자금을 빼돌린 증거를 수사기관에서 찾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 작전은 취소되어야겠지요.”

입맛을 다신 강철국이 옆쪽을 보았다.

 

지금까지 강철국은 한번도 장선옥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자, 그럼.”

자리에서 일어선 강철국이 말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무역 영업일을 하시라구요.”

몸을 돌린 강철국이 커피숍을 나가자 장선옥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 전의 커피숍은 한산했다.

 

손님은 안쪽 테이블에 앉은 한쌍의 남녀뿐이다.

 

커피잔을 든 장선옥이 식은 커피를 한모금 삼켰다.

 

그러자 문득 조철봉의 갑작스러운 귀국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철국한테서 그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가슴 한쪽에 개운해진 느낌이 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조철봉이 김옥희하고 잤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강철국은 질투심을 유발시켜 작전에 탄력이 붙도록 김옥희 이야기를 해줬겠지만

 

조철봉을 몰라서 하는 짓이다.

 

조철봉은 좋아서 섹스를 하는 인간이 아니다.

 

장선옥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일식당에서 조철봉이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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