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 숙청 (12)
(1886)숙청-23
조철봉이 청진을 나왔을 때는 밤 10시 반이었다.
55도짜리 인삼주를 둘이 딱 절반씩 나눠 마신 터라
조철봉은 물론이고 김성산도 술기운으로 얼굴이 벌겠다.
둘은 각각 파트너와 함께 나왔는데 김성산이 이렇게 조철봉과 함께
이차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옥희가 데려다줄 겁니다.”
제 파트너와 함께 차에 오르면서 김성산이 말했다.
“미인계 쓰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옥희가 옆에 있는 데도 그렇게 말한 김성산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김성산이 탄 차가 떠났을 때 조철봉과 김옥희는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조철봉의 차였다.
김옥희가 조선족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주었는데 청진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앞에서 차를 보낸 조철봉과 김옥희는 3층으로 올라왔다.
5층짜리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축 아파트여서 깨끗했고 외관도 좋았다.
302호실의 문을 연 김옥희가 먼저 들어서더니 전등을 켰다.
그러자 20평형쯤의 아파트 내부가 드러났다.
가구나 집기는 잘 정돈되었고 베란다 유리창에는 분홍색 커튼이 덮여져 있다.
“술 더 드시겠어요?”
소파에 앉은 조철봉에게 주방 쪽으로 다가가면서 김옥희가 물었다.
김옥희는 청진을 나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운전수에게 위치를 알려준 것 외에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김옥희의 뒷모습을 보았다.
코트를 벗고 원피스 차림이 된 김옥희의 종아리가 눈이 부시도록 희다.
“그래. 한잔 더 마셔야겠어.”
조철봉이 불쑥 말했다.
생각하지 않고 말부터 나온 경우가 될 것이다.
김옥희가 잠자코 주방 위쪽 선반에서 위스키병을 꺼내더니
쟁반에다 마른안주를 담아 가져왔다.
차분한 표정이었고 동작도 안정되어 있었다.
“여기 혼자 있는 거야?”
청진에서 들었지만 조철봉이 다시 묻자
앞자리에 앉은 김옥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사장님이 얻어주셨습니다.”
“청진 사장이 말야?”
“네.”
“윤달수씨는 잘 알지?”
“네.”
그러고는 김옥희가 조철봉을 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윤달수씨가 청진 관리를 맡았다가 이번에 교체되었죠.”
“그랬구나.”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김옥희가 재빠르게 술병을 집더니 잔에 술을 채운다.
발렌타인 17년이었다.
윤달수가 청진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옥희를 조철봉에게 보낼 수가 있었다.
그때 김옥희가 입을 열었다.
“그날 말씀이죠.”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옥희의 얼굴이조금 붉어졌다.
눈동자도 흔들렸다.
“그날, 내실에서.”
“내실에서 왜?”
“사진을 찍으려다가 실패했습니다.”
“사진?”
했다가 조철봉이 풀썩 웃었다.
촬영 장치를 말한 것이다.
내실에 카메라를 숨겨놓고 조철봉과 김옥희의 섹스 장면을 녹화하려고 했다는 말이었다.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김옥희를 보았다.
“알고 있었어?”
“아뇨. 나중에 알았습니다.”
김옥희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1887)숙청-24
“윤달수가 말이지?”
조철봉이 묻자 김옥희는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다.
“네, 어떻게든 유혹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실패했군.”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놓고 김옥희가 머리를 들고는 웃었다.
불빛에 반사된 두 눈이 반들거리고 있었다.
한모금에 위스키를 삼킨 조철봉이 다시 물었다.
“오늘도 김성산 사장한테서 지시를 받지 않았어? 오늘 내용은 뭐야?”
“그냥 잘 모시라고만 말씀 들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사진 찍는 거 아냐?”
김옥희 말을 흉내낸 조철봉이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어디에다 숨겨놨지? 저기 형광등 옆에 구멍이 뚫린 데 아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얼굴이 금방 하얗게 굳어진 김옥희가 그쪽을 보면서 머리를 저었다.
“여기까지 장치해놨을 리는 없습니다.
여긴 다른 사람이 아무도 온 적이 없거든요.
제가 산 지도 열흘밖에 안되었고.”
“찍히면 어때?”
조철봉이 저고리를 벗으면서 말했다.
“까짓것, 실컷 보라지. 아마 섹스 교범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지 마세요.”
와락 얼굴이 붉어진 김옥희가 조철봉을 쏘아보며 말했다.
“오늘밤 조 사장님 모시라고 하기에 제가 물어 보았다구요.”
“누구한테?”
“가게 사장한테요.”
“참, 사장이 누구지?”
“박명호 동지라고.”
“뭐 하다가 여기 온 놈인데?”
“보위부 소좌라고 들었습니다.”
“그자가 뭐라고 했는데?”
“사진 찍을 거면 제가 꼭 그렇게 만들 테니까 솔직히 말해달라고 했지요.
과업을 달성하겠다구요.”
“그랬더니?”
“웃으면서 아파트 안에는 장치가 없으니까 하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흠, 그래?”
그러자 김옥희가 덧붙였다.
“자기 생각엔 안 하는게 낫다고까지 하더군요.”
“왜?”
그러자 김옥희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자기가 날 처음 안고 싶다구요.”
“음, 나쁜 놈.”
눈을 부라리며 말했던 조철봉이 턱을 내밀었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어금니가 물려졌다.
“진짜 처녀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느냔 말이야.”
조철봉이 잇사이로 묻자 김옥희가 정색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구요.”
“윤달수는 그것을 큰 자랑으로 알 텐데.”
“사장님은 어떠세요?”
눈을 크게 뜬 김옥희가 조철봉을 보았다.
“처녀가 좋으세요?”
“난 별로야.”
“왜 별로죠?”
“글쎄, 그것이….”
그 순간 조철봉의 가슴이 뛰었고 목이 메었다.
감동, 성적 감동이 온 것이다.
그러자 자극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르면서 온몸에 활기가 일어났다.
김옥희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처녀는 성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반응이 더디고 호흡이 맞지 않아.”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섹스는 서로 즐기는 거야. 여자도 남자한테 즐거움을 줘야 한다구. 그런데 처녀는 미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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