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50. 숙청 (11)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07

650. 숙청 (11) 

 

 (1884)숙청-21

 

 

처녀 김옥희하고 그렇게 헤어진 지 닷새 후가 되는 날 오전,

 

조철봉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남북합자사업 북한측 대표인 김성산의 전화였다.

 

김성산이 누구인가?

 

6년 전에 조철봉이 처음 중국에서 룸살롱 사업을 시작할 때 동업자였던 인물이다.

 

조철봉보다 나이가 10여년 연상인데다 경륜도 그 만큼 더 풍부했고 무엇보다도

 

인품이 훌륭해서 조철봉의 존경을 받았다.

 

남북합자사업의 북한측 대표가 되면서 젊은 실세인 윤달수나 장선옥에까지

 

밀리는 분위기였지만 의연했다.

 

조철봉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김성산이 북측 대표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것이다.

 

그 김성산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조 사장, 오늘 저녁식사나 같이 하십시다.”

두말하지 않고 조철봉이 승낙하자 김성산은 시간과 장소를 정해 주었다.

“저녁 7시에 한식당 청진에서, 거기 아시지요?”

요즘 슬슬 김옥희가 궁금해지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청진을 잊을 리가 있겠는가?

조철봉은 기쁘게 승낙하고는 7시에 맞춰 베이징 동물원 옆의 청진을 찾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좌우로 벌려선 여종업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으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지만 김옥희는 보이지 않았다.

 

김옥희는 지배인급이었으니 절하는 종업원 사이에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안내를 따라 가면서도 조철봉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김옥희를 찾는 것이다.

 

홀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김옥희는 보이지 않았다.

 

조철봉이 안내된 방은 지난번에 윤달수와 들어간 끝이었다.

 

청진의 특실인 모양이었다.

“어이구, 조 사장, 오랜만입니다.”

조철봉이 10분 먼저 갔는데도 먼저 와 기다리던 김성산이 반갑게 맞았다.

 

조철봉의 손을 힘차게 잡고 흔들던 김성산이 자리에 앉으면서 은근하게 말했다.

“오늘 여자 둘 불렀습니다. 조금 후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어이구, 송구스럽습니다. 사장님.”

주문을 받으려고 종업원이 들어왔으므로 조철봉은 김성산에게 일임했다.

 

지난번처럼 개장국에 수육, 무침까지 시킨 김성산이 술은 인삼주를 골랐다.

 

그러나 알코올 농도는 55도나 되었다.

 

종업원이 나갔을 때 김성산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윤달수가 어제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놀란 조철봉이 들고 있던 물잔을 내려놓았고 김성산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중국으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숙청이다.

 

윤달수도 당한 것이다.

 

조철봉의 눈 앞에 나명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장선옥의 얼굴로 이어졌다.

 

그때 김성산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베이징에서 여자한테 살림 차려준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사기를 당했다고 하는군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성산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가 윤달수가 관리하던 공금을 들고 튀었습니다.

 

그 금액이 500만불이 넘어요.”

“…….”

“그래서 소환되었는데 책임 추궁을 당하고 재교육을 받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조철봉이 김성산을 보았다.

 

윤달수에게는 그 다음날 300만불을 보냈던 것이다.

 

그 300만불까지 나명진이 들고 튀었다는 말이 된다.

 

김성산이 정색하더니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감독관이었지만 꽤 썩은 동무였지요. 아마 평양에서 혼이 날 겁니다.”

다시 조철봉의 눈앞에 장선옥이 떠올랐다. 

 

 

 

 (1885)숙청-22

 

 

“거시기.”

하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김성산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멋쩍게 웃었다.

“저도 며칠 전에 윤달수씨한테 300만불을 보냈습니다만.”

김성산은 눈만 껌벅였는데 놀란 기색 같지는 않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장선옥씨가 재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빼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300만불로 합의를 하고 보냈는데 그렇게 돼서 황당하군요.”

“그렇습니까?”

입맛을 다신 김성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작자, 숨겨놓은 자금이 꽤 있겠는데.

 

그건 그렇고, 조 사장이 장선옥의 구명운동까지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압니다.”

정색한 김성산이 어깨를 치켰다 내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장선옥은 젊은 나이에 빨리 출세를 해서 적이 많았지요.”

“전 돈만 날린 셈이 된 겁니까?”

“윤달수의 죄는 가중되겠습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음식 그릇을 든 종업원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를 여자 두 명이 따라왔는데 그중 하나가 김옥희였다.

 

김옥희는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크게 떠 보였다가 곧 외면했다.

 

조철봉이 와 있는 줄 아는 눈치였다.

“어. 앉아.”

김성산이 여자들에게 부드럽게 말하자 김옥희는 조철봉 옆에 앉았다.

“알고 계시지요?”

눈으로 김옥희를 가리키며 김성산이 물었다.

 

시선을 내린 김옥희는 종업원들이 내려놓은 음식 그릇만 바라보는 중이다.

“예. 압니다. 지난번에 윤달수씨하고 여기서 만났을 때….”

조철봉이 털어놓았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목소리도 낮아졌다.

 

윤달수가 재교육이 아니라 총살을 당했다고 해도 눈도 깜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선옥을 빼내려던 작업이 물 건너갔다.

 

300만불만 떼인 셈이다.

 

김옥희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는 이미 지워졌고 얼굴을 봐도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김성산이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서 조 사장님을 뵙자고 한 건 윤달수 이야기가 주목적이 아닙니다.”

다시 정색한 김성산이 말을 이었다.

“북남합자사업이 앞으로 잘되려면 저하고 조 사장님이 서로 믿고 의지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칭다오에서 룸살롱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말씀이죠.”

김성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 벽을 보았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표정이었다.

“그땐 참 순수했지요.

 

서로 경계는 했지만 해보자는 의욕이 충만했는데.”

“김 사장님 같은 분만 계시다면 합자사업은 성공합니다.”

조철봉이 김성산의 말을 받았다.

 

진심이었다.

 

김성산은 외국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융통성이 있었으며 자본주의의 장점을 존중했다.

 

감추거나 억지 주장을 하지 않았다.

 

김성산이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약점이 많은 사람이 공격적인 겁니다.

 

그렇게만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조철봉은 시선을 내리고는 술잔을 쥐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김옥희가 술병을 들더니 술을 따랐다.

 

김성산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자주 만납시다.

 

앞으로는 윤달수 같은 작자가 우리 과업을 방해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장선옥 문제도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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