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48. 숙청 (9)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05

648. 숙청 (9) 

 

 (1880)숙청-17

 

 

 

윤달수는 외면한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장선옥이 평양을 떠나 교육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조철봉은 충격을 받았다.

 

원인이 불분명한 화가 치밀어올랐던 것이다.

 

장선옥을 돈으로 빼내겠다고 한 것은 즉흥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말을 뱉고 보니까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윤달수가 머리를 들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한번 알아는 보지요. 그런데 얼마 내시겠습니까?”

윤달수가 묻자 조철봉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3백만불.”

당장에 준비할 수 있는 자금이다.

 

그러자 윤달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성이 대단하시군요. 조사장님.”

“까놓고 말씀 드려서 정보 들었습니다.”

“압니다.”

머리를 끄덕인 윤달수가 정색했다.

“장 동무가 열심히 일은 했지만 결국 조사장님과의 관계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나한테 책임이 있으니까 책임져야죠.”

“그러면.”

젓가락을 내려놓은 윤달수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장선옥씨를 중국으로 데려와야겠군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조사장님께 인도를 해드려야 합니까?”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이제는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교육에서 풀어내 자유 의사에 맡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이곳 중국땅이 낫지 않겠습니까?”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머리를 끄덕인 윤달수가 조철봉의 술잔에 구렁이주를 따랐다.

 

술병 안에 든 구렁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하긴 한번 교육을 다녀오면 거의 놀게 되니까요.”

윤달수가 말을 이었다.

“당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윤달수가 벨을 누르자 1분도 안 되어서 김옥희가 다시 들어왔다.

“자, 김 동무도 한잔 해.”

윤달수가 김옥희에게 잔을 내밀면서 말했다.

“조사장님 잘 모셔야 돼. 무슨 말인지 알고 있지?”

“예. 압니다.”

다소곳한 표정으로 대답한 김옥희가 힐끗 조철봉을 보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시선이 마주쳤다가 떼어졌을때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김옥희의 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섞여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물건을 보는 눈이다.

 

지금까지 수백명 여자의 눈빛을 읽고 작업을 해온 조철봉이다.

 

아무리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말을 달콤하게 한다고 해도 눈은 속이지 못한다.

 

특히 조철봉한테는 그렇다.

 

조철봉이 언젠가 카바레에서 여자와 눈으로만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홀의 옆쪽 테이블에 앉은 여자였는데 이쪽은 셋, 그쪽은 넷이었다.

 

그때 조철봉이 대각선 자리에 앉은 그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눈으로 물었다.

“나하고 놀까?”

그러자 여자가 역시 눈으로 대답했다.

“그래, 좋아.”

조철봉이 두번째 시선을 잡고 눈으로 물었다.

“우리, 위쪽 호텔방에 갔다가 오자.”

여자가 눈으로 대답했다.

“그래, 가.”

시치미를 뗀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여자도 따라 일어섰다.

 

둘은 비상구 계단으로 나와 화장실 위쪽 호텔 입구로 들어갔는데

 

양쪽 일행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화장실 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1881)숙청-18

 

 

그런데 김옥희는 아니었다.

 

지금 김옥희의 눈빛을 말로 표현한다면 ‘여기 돌멩이가 있구나’쯤 될 것이다.

 

그러나 속모르는 윤달수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옥희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와 함께 구렁이술 한 병을 다 마셨을 때는

 

오후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 그럼 난 먼저 가볼 테니까.”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어진 윤달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조 사장님은 좀 놀다 가시지요.

 

그러시라고 내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조철봉은 당황했지만 김옥희는 오히려 차분했다.

 

윤달수한테서 언질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저도 가야 하는데.”

조철봉이 엉거주춤 따라 일어서자 다가온 윤달수가 어깨를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성의를 무시하면 안된다고요.”

그러더니 다시 앉은 조철봉의 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안쪽의 내실로 옮기시지요.”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국정원에서도 윤달수에게 미인계로 나명진을 붙여 주었지만 그 후의 상황은 모른다.

 

이진경으로 이름을 바꾼 나명진을 베이징 룸살롱에서 윤달수와 같이 만난 후부터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측이 그와 유사한 미인계를 쓰는 것 같다.

 

북한측 방법은 오히려 직선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잠시 후 윤달수를 배웅한 김옥희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조철봉은 밖에서 기다리던 이경애를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는 조철봉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의도적인데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리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실로 옮기시지요.”

김옥희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다.

 

시선이 또 마주쳤고 김옥희의 눈이 또 말했다.

“돌멩이가 좀 귀찮네.”

그 순간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웃음 띤 얼굴이었다.

“내실로 가서 뭘 하겠다는 거야?”

“술 드셨으니까 쉬시라고요.”

“김옥희씨하고 같이?”

조철봉이 물었을 때 김옥희는 시선을 내렸다.

“잘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입술만 달싹이며 김옥희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하더니 앞장을 섰다.

 

내실은 복도 끝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다시 가로로 이어진 복도의 왼쪽 방이었다.

 

방문을 열자 원룸 형식의 넓은 방이 드러났는데 벽에 붙여진 침대가 컸다.

 

먼저 방안으로 들어선 김옥희가 창으로 다가가 짙은 색 커튼부터 내렸다.

 

금방 방안이 어두워졌으므로 조철봉이 벽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씻으세요.”

하고 김옥희가 외면한 채 말한 순간이었다.

 

저절로 어금니를 물었다 푼 조철봉이 벽쪽의 의자에 앉아 김옥희를 보았다.

“김옥희씨, 그거 하고 싶어?”

조철봉이 불쑥 묻자 김옥희의 시선이 옮아왔다.

 

얼굴이 굳어져 있는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눈빛도 강하다.

 

그때 김옥희가 입을 열었다.

“전 상관 없습니다. 하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 지시를 받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내키지 않아도 다리를 벌려주겠단 말이죠.”

가슴이 울렁거린 조철봉의 입에서 그렇게 말이 나왔다.

 

장선옥의 상황에다 김옥희의 차가운 반응 등이 뒤섞인 결과일 것이다.

 

그때 김옥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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