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41. 숙청 (2)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00

641. 숙청 (2) 

 

 (1866)숙청-3

 

 

 

 

중식당의 방에서 마주 앉은 정기윤과 오대식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싸우기 일보 직전이었다.

 

둘 다 눈을 치켜뜨고 있는 데다 오가는 말이 거칠었다.

 

그래서 주문 받으러온 종업원도 기다리라는 말에 두말 못하고 나가더니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자, 본론을 이야기합시다.”

컵을 거칠게 탁자 위에 놓은 오대식이 정기윤을 노려보았다.

“가져왔어, 안 가져왔어?”

다그치듯 말하자 정기윤이 잇새로 말했다.

“3만불, 받으려면 받고 싫으면 관둬.”

“뭐야?”

오대식이 탁자 위로 몸을 굽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4만불로 합의했지 않아?”

그날 결국 5만불에서 4만불을 내기로 둘이 합의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합의를 깨고 정기윤이 1만불이 깎인 3만불을 가져왔다. 제 맘대로.

“시발, 안 받아.”

하면서 오대식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어디, 내일부터 어떻게 되나 보자. 일이 제대로 되는가 보란 말야.”

“난 내일 사표 낼 거다.”

정기윤이 받아쳤다.

“그리고 사장한테 네 이야기 탁 털어놓을 테니까.”

그러고는 정기윤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너도 내가 돈 먹은 거 다 털어놔. 같이 가잔 말야.”

담배를 꺼낸 정기윤이 입에 물기만 하고는 말을 이었다.

“난 들통 나면 사표 내고 집에 가면 그만야.

 

한국에선 그렇다고. 다른 건설회사로 옮길 수도 있지.

 

내 경력이 있으니까. 근데, 넌 어떻게 될까?”

그러고는 정기윤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 바람에 입에 물고만 있던 담배가 떨어졌다.

“내가 네 이야기를 확 털어놓으면 우리 측에서 가만있을 것 같으냐?

 

너도 나처럼 사표 내고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시발놈이.”

오대식이 으르렁거렸지만 아직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정기윤의 말이 이어졌다.

“거, 뭐, 수용소로 가는 거 아냐?

 

총살된다고도 하던데, 내 생각에는 총살감 같은데.”

“이 시발놈이.”

와락 다가선 오대식이 정기윤의 멱살을 잡았다가 금방 놓았다.

 

정기윤이 일어서는 기세가 사나웠기 때문이다.

“시발놈아, 너한테는 3만불도 아까워. 내가 안 주려다가 겨우 갖고 왔는데.”

정기윤이 얼굴을 오대식의 얼굴 앞으로 바짝 붙였다.

“처먹고 끝낼래? 아니면 죽을래?”

하고 정기윤이 다그치듯 말하자 오대식이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시발, 내놔.”

“영수증하고 각서 써.”

기다렸다는 듯이 정기윤이 말하자 오대식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그건 안 돼.”

“안 되면 안 줘, 내가 시발 널 뭘 믿고 돈을 주겠어? 날 뭘로 보고 지랄야?”

“만일 네가 그 각서를.”

“그래,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각서를 공개할 거야.”

그리고는 정기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넌 돈 먹어본 경험이 적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국회의원도 다 영수증 쓴다.

 

너보다 천배는 위대한 사람들도 다 영수증 주고 돈 받는단 말야.”

그 말을 들은 오대식은 가만있었다. 

 

 

 

 

 (1867)숙청-4

 

 

다음날 오후에 오대식은 공사현장 사무실 한쪽에 만들어놓은 감독관 집무실에서

 

두 사내를 면접했다.

 

둘은 조선족으로 어제 자재부와 총무부 사원으로 채용된 사내였다.

“옌지에서 왔다고?”

인사 카드를 보면서 오대식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현장 인력은 될 수 있는 한 조선족이나 한족 출신들을 쓰기로 중국 당국과 합의가 되었고

 

채용 권한은 현장 소장한테 있다.

 

북한측도 조선족과 한족의 현장 인력 채용에 대해서는 한국측 현장 소장한테 일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 인력 감독관 감투를 쓴 오대식으로서는 채용 권한도 나눠 갖자는 주장이었다.

 

바로 어제 현장 소장 정기윤한테서 3만불을 받은 것은 이것과는 별도의 일이다.

 

그 3만불은 현장 소장이 인건비와 소모품비에서 떼어먹은 돈을 나눠 가졌을 뿐이었다.

“자재부와 총무부에 채용되었는데, 누구 추천을 받았지?”

오대식이 찌푸린 얼굴로 묻자 총무부에 발령받은 이수동이란 이름의 사내가 똑바로

 

오대식을 보았다.

“근데 공사 조직도를 보면 감독관 직책이 없던데 지금 우리를 왜 불렀는지 모르겠군.

 

감독관이 뭘 하는 직책이오?”

“뭐라고?”

기가 막힌 오대식의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선족은 물론이고 한족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고분고분 감독관 오대식의 지시를 따랐던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이런 건방진.”

오대식이 손끝으로 이수동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 날 뭘로 보고 까불어?”

“앞으로 조선족하고 한족 노동자들은 건드리지 말어.”

차갑게 말한 이수동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오대식 앞의 책상에 내려치듯이 놓았다.

 

복사한 서류였다.

“자, 그거 복사해서 공사장 벽에다 주욱 붙여 놓을까?

 

아니면 평양으로 보내드릴까?”

종이를 본 오대식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굳어졌다.

 

바로 어제 소장 정기윤한테서 3만불을 받고 써준 영수증이었던 것이다.

 

그 영수증이 이놈 손에 들어가 있다니.

“너, 소환되면 바로 총살당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찍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수동이 말하자

 

오대식은 벌떡 일어섰지만 다음 행동은 하지 못했다.

 

그때 이수동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말했다.

“병신이 육갑 떨고 있네. 인마, 넌 쥐약 먹은겨.

 

이젠 우리 말 듣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구.”

그러자 이수동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뱁새가 황새 걸음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단 말 못 들었어?

 

어디 남한 사람들하고 같이 해 처먹자고 대드는 거야?

 

남한은 돈 몇억 처먹어도 몇달 살다가 나와서 다른 공사장으로 가면 그만여.

 

걔들은 그런 경우가 쌔고 쌨어.

 

만날 신문에 나오는 거 몰라?

 

 하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어디 감히 인민의 고혈을 사기쳐 먹니?

 당장에 총살이지.”

그러자 옆에 선 사내가 거들었다.

“그러니까 넌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해. 가끔 우리가 용돈 줄 테니까. 알았어?”

“이, 이.”

말문이 막힌 오대식이 더듬거렸을 때 이수동이 말했다.

“넌 이미 쥐약을 먹었다니까.

 

낚시에 주둥이가 단단히 꿰어 있단 말야.

 

반항하면 찢어져.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그러자 오대식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43. 숙청 (4)   (0) 2014.10.05
642. 숙청 (3)   (0) 2014.10.05
640. 숙청 (1)   (0) 2014.10.05
639. 남북동거(13)   (0) 2014.10.05
638. 남북동거(12)   (0) 2014.10.05